영화<무현, 두 도시 이야기>
고작 영화의 제한된 상영관과 시간이 제한된다고 바로 보러가지 못한 주제에 내가 믿는 정의를 응원한다고 말할 자격이 있을까? 라는 자책을 안고 개봉한지 한참 된 <무현, 두 도시 이야기>를 보러 극장에 들어갔다. 찰스 디킨즈의 글과 함께 다큐는 시작되었는데, 노무현의 목소리가 나오자마자 나는 마치 수도꼭지마냥 눈물이 흘러서 스스로도 당황했다.
그래도 나름 내 기준으로 문화생활 지출범위의 앵겔 아니 정의지수는 채우려고 노력중. 세월호 다큐, 변호인, 밀정, 암살, 귀향 등등은 무슨일이 있어도 꼭 봤다. 남다른 자랑거리도 아니지만 내게는 나름 행복한 자부거리다. 내 마음도 해바라기처럼 정의가 바로 서길 바라는 것에 많이 쏠린달까. 아, 또하나의 가족 아니 또하나의 약속을 못봤다. Dvd 사고싶다.
지금 보면 저화질인 영상들이 그의 생애를 담아내고 있었는데, 풀에이치디 화면보다 더 따뜻하게 다가왔다. 그의 인간성마냥. 그곳의 배경은 부산.
또 다른 배경은 여수. 2016년 총선 무렵 또 다른 무현의 선거 유세의 시점이다. 그는 만화가. 노무현의 마지막을 출간하다 못해 현실정치를 향해 발벗고 나선 백무현. 나는 사실 그가 배우인줄 알았다. 백과 노 이 두 무현은 다큐 내내 지면을 나누며 우리를 두 도시로 오가게 한다.
정치하지 마라. 정치는 자금을 모아야하고 그러다보면 소신과 멀어지거나 유혹에 흔들린다. 그만큼 속이 탄다. 그런 과정을 보여주기에 낙선한 그들의 눈망울은 유달리 소처럼 깊고 촉촉했다.
두 무현은 둘이되 같은 가치를 가진 정신이다. 한명은 낙선후 16대 대통령이 되었고 다른이는 낙선했다. 그러나 노무현이 말하지않는가. 원래 정의를 향한 도전은 실패한 경우가 많으며 그 실패가 성공을 낳는다고. 두 무현은 그렇게 같은 뜻을 모은 것. 그들은 건강하게 눈물흘리고 선거캠프 식구들을 위로한다. 내가 마치 위로 받는듯 했다. 고맙달까.
엔딩크래딧을 눈물범벅으로 필사적으로 읽었다. 사느라 바빠 놓쳤건 크라우드펀딩에 이름들을 읽는 것으로라도 예의를 다하고 싶었다.
영화 끝나는 내내 자꾸 자꾸 울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트럼프의 대선 승리가 주는, 불안한 미래에 대한 시그널과 어쩌면 다시 못올 봄날마냥 스쳐버린 2000년대 노대통령시대의 내 학창시절이 야속했을까. 아니면 그런 자유와 풍요의 시대가 그리웠을까.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살다가 얼굴 찌푸릴 새도 없이 눈물이 쏟아지는것이 의아해 스스로를 비춰보았다. 무현 당신이 죽은 날 시청광장에 따라갔을 때 내가 슬펐던 기억이 마음에 출렁거렸군요. 생활에 스트레스가 넘치는 이 불운한 시기가 또 물 한 줄기 보탰겠고 나태한 내가 부끄러워 찼을거군요. 내 마음 이렇게 무거웠는데 이 영화 한편에 물통을 거꾸로 한듯 쏟아지는 눈물이 무척이나 많았습니다. 마저 내 무거운 마음 비우게 한 번 더 극장 갈랍니다.
덧, 현재 내가 사는 시간이 궁금하다
최선의 시간이었고, 최악의 시간이었다. 지혜의 시대였으며,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시절이었고, 불신의 시절이었다. 빛의 계절이었고,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었으며,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이 있었고, 우리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모두 천국으로 가고 있었으며, 우리 모두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 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