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에 대하여

너의 낮은 자존감을 무기삼지 말지니

by 로로Roro

말끝마다 '나는 자존감이 낮아서...' 라고 하는 이가 있었다. 지금은 연락하지 않지만 그때는 교류했다.

그는 그런 말을 습관처럼 했고 그 뒤의 말도 어두웠다.


안타까운 생각에 나는 그 사람에게 더 잘 대해줬는데 문제는 그 친구가 딱히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고 자기가 이모양 이꼴임을 그대로 인정하고 가여우니까 더 잘해줘 라는 태도로 나를 대하는듯했다. 그저 그 친구의 관성이나 습관같이. 본인을 비하하고 남의 시선이 두려워 말도 안될만큼 주눅들어서 안타까웠는데 어느순간 내게도 그런 기준을 적용해서 피곤해졌다. 가령, 자기 기준에서는 너무 눈에 띄는 패션을 (별거 아니다 원색계열 면 티셔츠나, 빨간 백팩) 내가 하고 오면 왜 그걸 했냐고 당황하곤 했다. 나름 그게 잘 어울린다는 소리를 들어서 즐겨하던 아이템이었는지라 상대방의 미의 기준에 휘둘릴 맘은 전혀 없었다.


초치기. 내가 뭔가 한다고 근황을 알리면 그게 어디 잘 되겠냐, 나같으면 못한다라고 일축하는 상대방이 당황스러워졌다. 자기의 한계, 좁은 시야를 가지고 감히 나를 판단하다니. 설령 잘 풀리지않더라도 남의 선택에 비웃을 권리도 없으면서. 찝찝했다. 도전정신 모르나?


같은 내용의 상담. 대화패턴이 점점 기승전'신세한탄'이 되어가 교류가 피곤해졌다. 드라마 이야기를 하다가도 맛집 이야기를 하더라도 '나는 자존감이 낮아서'를 무기삼아 약자의 권리를 마음껏 누리는 그 친구가 이상했다. 그러나 막상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에도 움직일 생각은 없이 늪에 발이 잠겨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를 자꾸 잡아끌고자 하는 불쾌한 중력. 그리고 본질에서 회피하고자 하는 나약함. 게다가 묘한 심술까지.


'지나친 자기비하는 사실은 지나친 자기애의 반작용'이라고 그 친구에게 말했다. 나 포함 본인에 대한 기대치와 의욕이 있는데 맘같지 않아서 그렇지 좀더 화이팅하자고, 너무 스스로를 미워하지 말라고 하자 눈물을 글썽이더니 만족하는듯 했다. 그러나 다른날 만나도 쉽게 나아지긴 힘들어보였다.


막상 내 고민은 털어놔도 자기 문제가 아니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상대방에게 믿음을 줄 필요가 없어졌다. 오직 자기연민뿐.


'말에는 힘이 있다. 그리고 힘들때 상담 받아보니 좋더라. 권한다. 같은 말 하는 나도 지친다'라고 말했다. 기승전신세한탄이 내겐 배려없었다. 걸핏하면 자신의 낮은 자존감에 대하여 이야기하는데 사실 이 친구는 호강에 넘치는군 이라고 차마 말 할 수 없어서 침묵했다. 정말 힘든 이에겐 명함도 못 내밀 사연이지만 그렇다고 마음아픈건 어쩔 수 없는거겠지.


상대방의 마음의 집이 어질러지고 쓰레기 투성이면 나는 기꺼이 고무장갑을 끼고 치워줄 수 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어느덧 내 영역, 내 삶을 재단하며 함께 어두워지고자 했고, 발밑을 보니 내 영역에도 그 구정물이 고여있어서 황급히 닦아냈다. 어느새 붓고 갔을까.



그 친구와 교류를 끊게 된 것은 사소한 말다툼이 계기였다. 무례한 말투가 마음에 안들어 짚고 넘어가니 예민하다고 발끈하더군. 그래서 내 기준에서 싫은것은 싫다고 했더니 미안하다며 본인도 억울하다며 퍼부어댔다. 그 동안 인내심의 물독에 마지막 한 방울이 떨어진듯했고 그 물독은 넘쳤다. 나는 절교를 선언했고 상대방은 계속 내게 야속해 했지만 스스로도 너무하다 싶을정도로 나는 등을 돌렸다. 문제는 그 대화가 아닌 그동안의 피로가 앞으로도 이어질것 같아서 힘에 부친 탓이다. 나는 상대방에게 성인군자가 되고픈 마음도 없고 될 수도 없었다. 더는 교류할 자신이 없었다.


이제는 스스로 낮은 자존감을 가졌다고 하지만 안하무인인... 뭐랄까 약자의 입장을 무기삼으려는 캐릭터가 있다면 섣불리 안타까워하기 힘들 것 같다. 우선 스스로가 건강해지도록 애쓰지 않으면 웃으며 살기 힘든 것이 세상이란 생각 속에서 나는 살고 있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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