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로Roro Mar 20. 2024

43/100 나의 멜랑꼴리아

계단식 다지기.

자만하지 말자. 힘듦이 나아졌다고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은 조금 괜찮아졌다. 샴페인 터뜨리진 않더라도 조각케이크로 작은 축하는 해도 되겠다. 그래야 마음에 산들바람 한줄기정도는 담지 않겠는가? 지하에서 지상으로 오르는 길은 꽤 멀지만, 그래도 한 칸 정도는 만들 수 있는 재료가 겨우 모였다. 나는 이 한 칸을 섣불리 완성하고 싶지 않다. 돌처럼 단단한 밀도가 될 때까지 소소한 기쁨을 받아들이리라. 내일 당장 내 우울감이 나아지리라는 기대는 않는다. 대신에 조금씩 조금씩 내 마음에 폐허를 치우고 그 자리를 다져가는 오랜 대공사를 진행한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바리케이드를 치면 누구나 조심한다. 나도 방심하지 않기 위해 공사 중 표시를 걸고 내 마음의 복원 작업을 성실히 수행하리라. 그러다가 간혹 눈물도 속상함도 찾아오겠지. 그럼 그럴 땐 공사를 중단하면 되겠지. 그럴 때 섣불리 무리하다간 더 다치니까. 그런데 묘하게도 이 노릇도 경력직이 되더라. 타인의 마음 상태나 현재 필요한 단계가 무엇인지 어림짐작이 되곤 한다. 지금 저 사람은 무엇을 말해도 안 들리는 상태구나. 혹은 지금은 그저 들어주기만 해도 충분하구나. 이런 식으로 말이다. 내 앞서 자신의 마음을 수습했던 소중한 지인들은 뒤 이어 비슷한 지경의 나를 그렇게 바라봐 줬겠지? 덕분에 나도 따뜻한 누군가가 될 수 있기를. 오늘도 계단 한 칸 만들고 잠이 들련다.

매거진의 이전글 43/100 나의 멜랑꼴리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