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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Roro May 02. 2024

80/100  나의 멜랑꼴리아

그림으로 풀어가기 2

그 무렵이었겠지? 나는 가시나무가 되었다. 주변 사람이 머물며 쉬기에는 내가 너무 따끔했다. 아이 역시 마찬가지였으리라. 어느 순간 나의 부족함이 아이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아도 화가 나서 얼굴이 굳는 나를 귀신같이 눈치챘을 것이다. 아니라고는 하지만 고개를 푹 숙이거나 한숨을 쉬는 엄마는 육아의 굽이굽이 고개에서 매번 전투에서 패배한다. 오늘은 웃는 하루가 되리라 하는 목표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아이를 등원시키는 과정은 늘 대피였다. 어서 안전한 곳으로 가렴. 혹시나 아이에게 내가 짜증을 낼까 봐, 혹은 더 낼까 봐 두려웠다. 많은 이들이 코로나바이러스 창궐 초기에 이런 부분들이 많이 왔을 것이다. 나는 가뜩이나 서툰 살림 솜씨로 삼시 세 끼를 아이에게 해 주고 설거지 더미와 싸우면서 거대한 감정 기복의 해일과 전투를 벌였다. 갑자기 어디론가로 도망가고 싶은 마음과 이 상황을 지혜롭게 헤쳐나가고자 하는 절박함이 늘 충돌했다. 아이를 지켜주고 싶지만 일상에 짜증을 내고 있는 나로부터 아이의 도피처가 절실했다. 나는 견디다 못해 눈앞에 있는 넓은 달력 종이를 찢어다가 아이 보는 앞에서 마구 크레용을 집어다가 큰 그림을 그리곤 했다. 이런 복잡한 마음을 어디론가 전사시키고자 했을 뿐이지만 효과는 굉장했다. 아이는 신나게 내 캔버스에 개입을 했고 자기의 스키마가 다 반영되었다. 도넛, 사탕, 나비, 엄마, 아빠, 인형 등등을 그렸다. 사실 나니까 알아본 정도지만 여하튼 표현 후 너무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나도 마음이 풀려서 둘이 한동안 누워 있다가 잠이 들었다. 그림은 해방의 수단이었다. 우리는 다른 세계가 필요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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