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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Roro May 10. 2024

88/100 나의 멜랑꼴리아

진흙 넘어 보이는 것 2

최근 이사한 집은 구축 아파트라 야외주차장에 차가 여러 날씨에 실시간에 반응한다. 연초에는 폭설에, 지금은 황사와 꽃가루에 난리 난리다. 예전 같으면 신경도 안 썼을, 아니 못썼을 차의 외관이 요즘 너무 신경 쓰인다. 아예 곱게 물이 분사되는 기구를 사서 쁘띠 세차를 수시로 한다. 비라도 내리면 극세사 걸레로 닦아내고 왁싱제를 바르곤 한다. 집에는 늘 자잘한 육아용품과 옷장에 입지도 않은 옷, 그리고 잡동사니가 무심하게 있었다 하면 지금은 그들의 입지가 불안하다. 수시로 당근에 올리고 나눔이라도 때린다. 50리터짜리 대형 쓰레기봉투를 꽉꽉 채우고자 희번뜩 거린다. 책도 안 본다 싶으면 바로바로 기증한다. 이제 내 삶의 본질과 군더더기가 비로소 이별하기 시작했다. 만물은 하나로 연결되었다는 사실을 좋아한다. 하지만 동시에 나라는 객체가 필요이상의 것을 곁에 둘 필요는 없음을 느낀다. 내 마음이 비워지니 집이 점점 비워진다. 내 마음이 회복되니 딱지가 떨어진다. 그리고 내 시야를 가렸던 진흙이 분리되자 비로소 거기에 손을 대고 주무르며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그냥 샐러드그릇이라도 좋다. 나는 내 마음을 달래는 이 글 쓰는 작업이 그런 작업처럼 느껴진다. 나의 멜랑꼴리아는 혹시 나를 이런 길로 이끌기 위해서 찾아온 것은 아닐지? 마치 노진구의 미래의 후손이 도라에몽을 보냈던 것처럼. 혹은 인터스텔라의 'stay'메시지는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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