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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Roro Feb 01. 2024

1/100 나의 멜랑꼴리아

(10년 주기로 찾아오는 나의 우울감)

1. 나의 행성, 멜랑꼴리아 - 1


  핼리는 참 외로웠겠다. 죽어서야 그가 말해온 것을 믿어줬잖아. 76년 주기로 도는 혜성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지. 물론 그는 훌륭한 천문학자였고, 그 혜성에 대해서만 연구한 것은 아니었지만, 가슴 한편에 아무도 공감하지 못하는 믿음을 품고 있었으니, 외로움이 들기도 했을 거야. 하지만 그가 발견한 사실을 굳게 믿었기 때문에, 그 가설에 대한 증명은 죽어서 밝혀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매우 당당했으리라.


  왜 뜬금없이 핼리 혜성 이야기냐고? 사실 나에게도 혜성이 있어. 약 10년 주기로 돌아오는 것 같아. 그러나 그 시작은 여덟 살 무렵이었을 거야.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나를 찜해왔을지도 모르겠어. 내가 태어날법한 시공간을 맴돌며 나를 지켜봤을 거야. 나는 아직 그 행성에게 뭐라 이름을 붙일지 몰라서, 영화 '멜랑꼴리아'의 멜랑꼴리아 행성 이름을 따서, 별명으로 부르고 있어. 그리고 얼마 전, 나의 멜랑꼴리아는 나를 찾아왔고, 여전히 내 주변을 맴돌고 있어. 멜랑꼴리아는 한번 찾아오면 한두 해는 내 주변을 맴돌다가 또 먼 주로 사라지지.


  나의 멜랑꼴리아는 나를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아. 그랬다면 굳이 굳이 찾아왔겠어? 다만, 달과 지구가 서로 밀고 당기느라 바닷물마저 출렁거릴 정도로 큰 힘을 만들어내듯이, 나와 멜랑꼴리아가 가까이 있으면, 내 마몸과 마음은 바다처럼 요동쳐서 하루하루가 굉장히 고되단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알 수 있어. 지금도 내 마음이 무척 불안정하다는 게 바로 그 증거야. 


나의 멜랑꼴리아는 아주 강한 자석이거나 자기장을 두른 어떤 것일 거야. 실제로 우주에 행성이나 혜성들은 없는 광물과 에너지범벅일 것 아니야?  할 수만 있다면 멜랑꼴리아의 조각을 떼어다가 실험실에서 진득하게 관찰하고 싶어. 슬라이드에 넣어서 현미경으로 바라보고, 여러 약품을 쳐보고, 맛도 보고 발라보고, 여하튼 철저히 해부해 보고 싶어. 물론 그냥 돌가루일 수도 있지. 모래일 수도 있어. 그렇다면 참 허무할지도 몰라. 고작 이런 모래덩어리가 나를 그렇게 괴롭혔다고? 하면서 말이야. 잠시만? 지잉, 방금 또 내 주변에서 소음을 내면서 날고 있는 듯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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