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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Roro Feb 07. 2024

7/100 나의 멜랑꼴리아

(10년 주기로 찾아오는 나의 우울감)

 청소년기의 나에 대한 평을 당시 교류했던 친구들을 통해 들었을 때, 조금 놀랐다. 평소에는 밝고 재미있고 매우 순박하고 순수했다면, 화나 날 때는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 같다고. 급발진하고 내일 따윈 전혀 없는 것처럼 고집의 날을 세우고 버텨댔다고. 그리고 그 대상은 주로 교사였었다. 친구들에게는 한없이 다정하고 아무 문제 없다가도 교사의 지적(뭐 딱히 특별히 나쁠 것도 없었을 것이다)이 들어오면 거의 용수철이 튕겨 나가듯 눈이 뒤집어졌는데, 이후에 나를 괘씸하게 본 교사가 복장 검사를 빌미로 나를 들쑤시곤 했다. 합법적으로 징계라도 먹이고 고집을 꺾기 위해서였으리라. 하지만 화장도, 피어싱도, 교복을 줄이는 일도 (당시 나는 내 허벅지가 뚱뚱하다고 생각하여 치마를 줄일 수 없었다. 불편하기도 했고, 엄청난 맵시꾼은 더더욱 아니었지) 없었기 때문에 교사가 아무리 덫을 놔도 걸리진 않았다. 다만, 수업 시간에 전혀 집중을 못 하는 과목 시간에는 교과서며 공책이며 온갖 그림을 덕지덕지 그리면서 그 시간을 버텼다. 교과서를 더럽혔다는 빌미로 나를 벌주기에는 어쩐지 모호했었으리라. 그럼에도 꾸역꾸역 들어오는 지적에, 나는 고개를 푹 숙일 줄도, 적당히 애교를 부릴 능력도 없어서 '내가 죽을죄를 짓기라도 했냐!' 하면서 대놓고 대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회생활 빵점이다. 창피하다. 다만 당시의 나는 그렇게 생겨먹었고, 그거 말고는 어떤 사고를 할 수도 없는 사고회로 안에서 살았던 것 같다. 교사는 죽을죄를 지었냐는 말에 말문이 막히지만, 이 잃을 것 없어 보이는 청소년이 헤딩하는 걸 정면으로 받아치기에는 애매하고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는지 그저 복도에 나가서 서 있어라, 건방지게 어른한테 큰 소리로 말대꾸했다. 정도였다. 이후에는 이 진전없는 싸움이 피곤했는지, 내가 교과서에 낙서하든 말든 무시해 줬다. 사실 나는 숙제도 꼬박꼬박 제출했고, 학교도 결석하지 않았고, 수업 시간에 앉아있었으며 청소 당번은 빼먹지도 않았다. 다만 그저 고장이 나서 기나긴 하루를 견디기가 힘들었을 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 내내 미성년자일 때 학교에 다녀야 하는 사실 자체가 너무 감옥 같았다.)남들에게도 힘들었을 청소년기의 터널을 나는 그렇게 건넜으리라. 무사히 밝게 건넌 친구들이 있다면 그저 박수를 쳐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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