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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Roro Feb 06. 2024

6/100 나의 멜랑꼴리아

(10년 주기로 찾아오는 나의 우울감)


이후의 내 국민학교(졸업 후 초등학교로 개명되었지) 생활은 게임처럼 이루어졌다. 모두가 무리없이 앞을 향해 달려 나가는 동안. 나는 장애물이나 구덩이를 만나면 빠져서 하트가 충전될때까지 깜빡깜빡 제 자리에서 다시 시작해서 선두로 달리기는 커녕 완주나 할 수 있을지 모를 마라톤 감옥에 갇혀 지내는듯했다. 멜랑꼴리아의 자기장에 놀라 붕 떠오르고 무너진 부분이 폐허가 되었다고 했던가. 그 부분들이 함정이고 장애물이었다. 그래도 어둠 속에 가로등이나 별처럼 다가와줬던 친구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그 고마움을 되돌려주기에는 나는 얼어붙어 있었고 좀 박자가 늦은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중학교를 그 동네에서 제대로 나왔다면 그럭저럭 연락하며 지냈겠지만 전혀 다른 지역으로 이사가면서 편지도 점점 시들해지고 전화를 걸어도 할말이 점점 뜸해지며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당시에 삐삐나 핸드폰은 앞서가는 어른들이나 언니오빠들의 전유물이었으며 이메일도 나중에서야 만들어졌기 때문에, 생활권 밖의 인연들은 그저 멀어지는 것이 순리였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지역에서의 나는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람으로 성장해 나갔다. 국민학교 시절을 보냈던 그 동네가 죄다 리모델링되고 새로운 곳이 되었듯이, 나 역시 전혀 다른 것들로 채워졌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내 삶의 대부분은 내면의 폐허로 인한 장애물과 구덩이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서,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빙판길 위의 초보운전자로서 그저 '오늘은 차가 빙글빙글 돌지 않기를'의 마음으로 살아가곤 했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을지라도 속에서는 언제나 그런 걱정으로 많은 데이타가 소비되고 있다. 어쨌든, 새로운 곳에서 나는 사춘기를 맞이했다. 머리를 들추면 새치가 서너개씩 튀어나왔고, 이빨은 신경치료 하느라고 부분부분 금니로 때웠다. 치과의사 (까칠한 여자 선생님이었는다)는 나한테 내 어두운 표정과 반응을 보면서, 나는 너무 비관적이고 센서티브해서 남들보다 이빨이 더 아픈게 아니냐는 말을 했는데, 신경쓰는 성격과 이빨 신경이 상하는 것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여전히 궁금하다. 내가 어쩐지 치과에서 죽상을 하고 있어서였을까? 아니면 그냥 사춘기 소녀에게 조언이랍시고 아무 말이나 한 것일까? 속으로 왈칵 겁이 났다. 이대로 가다간 해적처럼 앞니까지 금니 투성이가 될라. 억지로라도 웃어야 한다고 했다. 거울을 수시로 보라고 하더라. 대체 나의 표정과 언행이 어땠기에, 그는 그런 말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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