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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Roro Feb 04. 2024

5/100일 일기

(10년 주기로 찾아오는 나의 우울감)

 무지개 클럽 활동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뤄졌다. 엄마가 들려준 작은 선물과 과자를 들고 반장 집에 찾아가 얼굴과 이름만 아는 같은 반 아이들과 저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정말 그저 한 발짝 떨어져서 관찰하고 있었다.  개중에는 나를 알아보고 인사하는 아이가 있었고, 또 어떤 아이는 나를 빤히 보면서 내가 여기 왜 왔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다.  반장이 와서 내게 이런저런 말을 거는 것 말고는 내가 딱히 한 일은 없었다. 어색했고 할 말도 없었고 내가 뭘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빨주노초파와 보라들은 남색과 달리 각자의 색으로 빛나느라 바빴다. 보다 못했는지 반장 아이가 나를 보면서 ' 일본말을 할 줄 안다며? 일본말해줘!' 했다. 그 순간만큼은 몇 년 전 처음에 한국의 교실에 들어섰을 때처럼 그 안에 있던 모두가 나만 바라보며 침묵했다. 간식을 들고 온 반장의 어머니도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나를 향한 신기한 그 시선은 악의가 전혀 없었다. 그저 나로서는 당황스럽고 무섭기도 하고 그랬던 것이다. 여하튼, 학교 안에서 닌자 같던 내가 무려 반장이 주도하는 무지개클럽에 초대된 이유는 일본말을 할 줄 아는 메리트덕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한동안 얼음처럼 굳어있다가, 아마도 '다 잊어먹었다.'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내가 그들을 향해 빈손을 흔들어 보인 직후 나를 향한 관심은 썰물처럼 빠져나나갔다. 아이들은 다시 종알종알 떠들며 놀기 시작했다. 나만 빼고.  딱 한 끗 차이였으리라. 우린 어린아이들이었고  그저 외국어 한두 마디만 자신 있게 했더라면 그 비루한 무기만으로도 나를 무리 안에  기꺼이 집어넣고 모두가 호키포키 강강술래 신나게 놀 준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광장공포증이 있는 사람이 어찌 무지개 광장을 거닐 수 있었으라. 내게는 작은 나무그늘 같은 한둘의 친구와의 교류도 벅찼다. 알 수 없는 허탈함이 들었을까? 나는 집에 돌아와 바닥에 벌러덩 누워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다. 엄마는 그런 나를 향해 간식을 주셨다. 나는 엄마가 묻지도 않았는데 '나는 남색보다는 투명이나 분홍색이 좋다.'라고 했다. 그렇다. 꼭 빨주노초파남보일 필요 없지 않은가? 나름대로 털어내고자 애썼고 털어냈다. 애초에 털어내고 자시고의 교류도 없었고.  안타깝게도.


아마도 꽁꽁 숨어있던 내 폐허는 문득 발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드러나듯이 문득문득 내 삶의 곳곳에서 함정처럼 나의 말과 행동에 브레이크를 걸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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