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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Roro Feb 28. 2024

25/100 나의 멜랑꼴리아

욕망의 자성

 나의 벡터는 흩어져 있다. 한 가지 방향성으로 나아가도 모자랄 판에 관심사가 분산되어 있다. 욕망을 위한 힘이 자꾸만 여러 주소로 배송되니 힘들 수밖에. 뇌는 멀티태스킹을 하고 있다. 그러니 집에는 취미 수집의 흔적으로 물건이 가득하고 내 머릿속도 복잡한 게 아닐까? 그런 흩어진 관심사는 나를 사방군데에서 불러댄다. 그래서 나는 어디도 한걸음 나아가지 못하는 것 같다. 우유부단함과 잔뜩 담아둔 장바구니가 무겁다. 고베 대지진이 있던 당시 교민이었던 어떤 요리 연구가는 지진에 의해 무너진 주방을 보고 만세를 불렀다고 한다. 비싸게 사서 수집한 각종 요리 도구와 그릇들이 너무 많아서 숨이 턱 막혔었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천재지변이 그를 구원해줬다고 한다. 혹시 내려놓지 못하는 내 안에 쌓인 욕망과 버거움이 강력한 자성을 띠고 멀리서 멜랑꼴리아 혜성을 부르는 것은 아닌지? 알고 보면 지극히 단순하고 명쾌한 삶을 지향하면서도 말이다. 포기할 수 없는 부분들조차 고 포기해야 한다. 그러기 쉽지 않아도 그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혜성이며 행성이며 운석이며 내게 쏟아질까 봐 두렵다. 내 잘못으로 멜랑꼴리아가 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후에 내가 살아온 태도와 방향성은 멜랑꼴리아의 궤도를 바꾸지 못했다. 그 또한 뼈아프게 생각하고 분골쇄신하지 않으면 내 머릿속은 영원히 복잡하겠지. 그리고 나의 가족의 삶에도 영향을 미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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