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블랙 11월 12일, 문장채집 no. 244
롱블랙 11월 12일, 문장채집 no. 244
르브론 제임스 : 억만장자가 된 농구선수, 비즈니스 제국을 이룬 방법
본문 https://www.longblack.co/note/475
1. 르브론 제임스가 공식적인 억만장자(자산이 10억 달러_약 1조3820억)가 됐다는 소식. 그의 누적 연봉이 3억 8000만달러(5251억). 나머지는 비즈니스와 광고 수익. 현재 총자산은 12억달러(1조 6380억).
2. 그는 농구선수, 창업자, 에이전트, 비즈니스 거물, 사회 운동가, 자선 사업가, 구단주, 프랜차이즈 운영자, 콘텐츠 제작자 그리고 영화배우. 손대는 것마다 잘 되진 않았고. 몇 번의 성공과 실패를 겪으며 이제까지.
3. "그의 통찰력은 경기뿐만 아니라 삶 전반에 많은 영향. 본인이 알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에 대해 어떤 이에게 어떻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 어떤 사람이 본인에게 필요하고 어떤 이가 자신을 이용하려 하는지 잘 파악하고. 자신의 인기와 명성을 통해 다양한 회사와 새로운 비즈니스를 일으킬 줄 알고, 자선사업 할 때도 본인의 돈 대신 회사들의 후원을 받아 성공시키는 법을 알고 있다." 주식회사 르브론 제임스 저자 브라이언 원드호르스트.
4. 그는 고교 농구를 제패하고 NBA 드래프트 1순위로 뽑힙니다. 스포츠 브랜드들은 그에게 파격적인 제안. 그 중에 리복은 1억1500만달러(1569억), 아디다스는 6000만달러(819억), 나이키는 8700만달러(1187억). 그는 자신의 미래를 상상할때마다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있는 모습을 그려왔고, 나이키 가족이 되고 싶단 생각. 결국 리복을 포기하고 나이키와 계약.
5. 음료회사도 그에게 제안. 비타민워터 제조사 '글라소'도 입찰에 참여. 2003년 당시 설립 3년밖에 안됐지만 연간 1억달러 매출. 르브론에게 주식의 일부를 준다는 조건. 최소 0.5%이상 제시했다는게 업계 추측. 르브론은 글라소를 잘 몰랐고, 코카콜라와 계약. 이것도 틀리지 않았지만 클라소가 래퍼 50센트와 계약. 이후 급성장, 코카콜라에 40억달러에 인수. 주식값도 올랐어요. 50센트가 소유 주식을 매각했더니 1억달러(1365억)의 수익을 낼 정도.
6. 르브론은 이 일을 통해, 기업에 고용되는 것과 브랜드이 소유자가 되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지 배웠다. 규모가 작은 회사가 간절하게 르브론의 브랜드 가치를 얻고자 자신들의 지분을 내주려 할 경우, 계산된 위험을 감수하면 큰 성과를 거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7. 그는 친구 세 명과 사업 도모. 선수들의 광고 계약을 도와주는 에이전시. 하지만 반응이 썩. 결국 회사를 접고 다른 방식(운동선수를 대리하기 보다, 르브론의 명성과 영향력 활용)으로 전환. 결국 글라소 때처럼 르브론의 영향력으로 기업을 키우고 그 지분을 받는 형태로 사업 구상. 한 가지 기준은 본인이 좋아하고 잘 아는 분야에 투자. "그들은 투자할 거래를 찾을 때, 사업에 대한 진정성을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생각하게~"
8. 이런 방식의 투자로 가장 큰 성공 케이스가 '비츠바이드레'. 르브론은 헤드폰을 써 보고 너무 좋아했고, 진심으로 이 제품을 소개하고 싶어짐. 불현듯 NBA 선수들이 헤드폰을 쓴 모습을 상상.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이 헤드폰을 선수들에게 무료로 나눠줘요. 경기장에 도착할 때 체육관에서 퇴장할 때, 인터뷰할 때, 다들 헤드폰 착용. 비츠바이드레는 2014년 애플에 30억달러(4조)에 인수. 회사 지분 25%를 소유하던 닥터드레는 수억달러를 벌었어요. 회사를 도운 르브론 역시 5000만달러(682억)이상.
9. 르브론은 친구 크리스토퍼 밸먼의 학교 과제 '다큐멘터리'에 출연. 4년 후 밸먼은 영상을 재편집해 르브론을 찾아갔어요. 그는 이걸 보고 감동과 향수에. 밸먼에게 다시 한번 다큐를 만들자 제안. 그리고 제작사 설립. 바로 스프링힐 프로덕션. 그는 NBA를 넘어 대중에게 다가가고 싶었어요. 영화로 한계를 돌파하자 생각. 그렇게 개봉한 영화 '모어 댄 어 게임'. 토론토 국제영화제 피플스 초이스상에서 2위, 배급사들이 영화 판권을 얻기 위해 경쟁. 극장에서도 나름 좋은 반응. 그는 기회를 포착. 미디어 사업을 키우자.
10. 그는 컨퍼런스를 찾아다니며 미디어를 배웁니다. 사실 그는 언론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마침 2010년 7월 르브론은 프리에이전트 시기. 고향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를 떠나 마이애미 히트로 이적. 르브론은 이 발표를 직접 해보려 합니다. 기자회견을 하지 않고, 직접 방송을 만들어 대중에게. 7월8일 '더 디시즌'을 생방송. 하지만 반응이 좋지 않았어요. 엄청난 조롱. 르브론은 충격. 찍고 있던 영화도 모두 파기. 경기에 집중하며 난관을 돌파. 4년 뒤 다시 클리블랜드. 이번엔 방송을 안 만들고 한 디지털 매체로 본인이 그간 느낀 감정과 왜 돌아오는지 등을 상세히. 반응은 아주 좋았어요. 그는 여기에서 또 사업 기획 포착. 느끼는 바를 솔직하게 전달해 호감을 다시 샀잖아요. 다른 선수들도 비슷한 경험을 하길 바랐는데, 플랫폼이 없었어요. 그래서 운동선수가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그대로 전달하고 팬들과 소통하는 '언인터럽티드' 플랫폼을 만들었어요.
11. 그는 돈을 버는 만큼, 더 좋은 사회를 만들고 싶어 해요. 그의 시선은 언제나 어려운 환경에 놓은 학생들에게 향해. 2004년 르브론 제임스 가족 재단을 설립해 학생들에게 자전거 기부하는 자전거 마라톤 시작. 학교 중퇴하는 학생들에게 동기 부여를 하고 기부하는 '약속합니다' 프로그램 런칭. 2018년에는 약속합니다 학교 설립.
12. 저에게는 꿈과 멘토가 있었어요. 그들이 지금의 제가 될 수 있도록 해줬죠. 저도 아이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어요. 그게 저에겐 무엇보다 중요. 농구를 정말 사랑하고 즐기지만, 다른 사람들을 위해 보답하고 학교를 여는 것은 제 농구 인생과 무관하게 지속될 겁니다.
르브론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lebr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