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세계문화유산 부석사와 봉정사의 인스타가 흥하길

세계문화유산인의 인스타가 이게 뭐야?


이번 설연휴에 고향 영주에 내려갔다. 연휴에 고향에 내려 간 건 정말 오랜만이다. 그래서 이곳저곳 다녀 볼 요량으로 차를 가져갔다. 토요일부터 시작된 연휴인데 밤 시간을 택해 내려가니 막힘이 없었다. 첫날은 그냥 집에 도착해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둘째날은 설날이었다. 오전에 부모님과 성당에 다녀왔고, 오후에 외할머니가 계신 요양원과 할머니가 계신 산소에 들렀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저녁으로 안동 찜닭을 먹기 위해 안동으로 향했다(안동엔 찜닭거리가 있다. 혹시나 휴무일까 싶어 연락을 하니 설기간인데도 문을 연다고 했다). 그런데 저녁을 먹기에 너무 이른 시간같아 가는 길에 어딜가볼까? 고민하다. 영주 무섬마을이 멀지 않아 그곳으로 가려던 찰라, 부모님은 그닥 흥미로워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어디 가고 싶은데, 있으신지 여쭤보니. 몇 개 후보를 제안해 주셨다. 그 중에 하나가 안동 봉정사였다. 아, 나도 아직 거길 가보지 못했고 내일은 부석사에 가려고 했던 터라 뭔가 좋은 비교가 될 거 같아 콜!을 외쳤다.


다행히 길을 우회하지 않고, 안동으로 가는 길목에 봉정사가 있었다. 살짝 검색을 해 보니, 이곳에 국보가 2개나 있었다. 뭔가 기대가 컸다. 나라의 보물이 있다는 건, 그만큼 역사가 깊고 공간이 잘 보존이 되었다는 얘기다. 


봉정사에 대한 문화재청의 소개다

봉정사(鳳停寺)는 672년(신라 문무왕 12) 능인대사(能仁大師)에 의하여 창건되었다는 전설이 전하는데, <극락전 중수상량문>등 발견된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보면 7세기 후반 능인대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극락전은 원래 대장전이라고 불렀으나 뒤에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1972년 보수공사때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지붕을 크게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담긴 상량문을 발견하였는데, 우리 전통 목조건물은 신축후 지붕을 크게 수리하기까지 통상적으로 100~150년이 지나야 하므로 건립연대를 1200년대 초로 추정할 수 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보고 있다.


위 소개에 나오는 극락전(15호)과 극락전 옆 대웅전(311호)이 봉정사에 있는 국보다.



봉정사에서 알게 된 건 우리나라 산사 7개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단 소식(2018년)이었다. 다음날 가게 될 부석사도 그 중 하나였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록된 한국의 산사 7곳]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


와. 이런 일이 있었다는게 뜻밖이었고 뭔가 뭉클했다(동네에 자랑거리가 생기면 이리 반갑다. 하물며 나라의 자랑거리이기도 하니!). 이렇게 멋진 곳이 유네스코도 알아주었으니, 얼마나 기쁜가. 뭔가 외국인 관광객이 이곳을 드나들며 엄지척! 감탄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봉정사를 둘러보고, 바로 안동 시내로 안 들어가고 경상북도 도청으로 향했다. 아버지가 그곳을 보고 싶어 하셨다. 안동과 예천 사이에 위치한 도청. 2016년 2월에 대구에서 옮겨왔다. 워낙 화려하게 지어 호화청사(4000억 이상의 건설비)라는 비판이 있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고향(예천)에 이런 건물(청와대를 닮았다)이 들어선 것에 자랑스러운듯 보였다. 그곳에 도착하니 많이 어두워졌다. 건물의 윤곽은 보이는데, 건물의 위용을 느끼기 어려웠다. 밤이 되어 차 밖은 더 추웠지만, 그래도 아버지는 온 걸 기념이라도 하듯 청사 앞 마당을 산책하셨다(나와 엄마는 차에서 기다렸다).


배가 고팠다. 달리고 달려 찜닭거리에 도착. 도시는 한산했는데, 그 거리는 꾀나 시끌벅적했다. 어지간한 가게는 자리가 다 찼다. 한 차례 손님들이 휩쓸고 가, 자리가 난 가게로 들어가 대자를 주문했다. 아, 이 본토의 맛! 양념도 양념인데, 굵은 당면이 수북했다(부대찌게에서 제일 맛있는게 라면이듯, 찜닭에서도 이게 최고지)


출발지는 부석사 / 도착지는 봉정사다. 이 두 곳의 위치가 어디즘인지 가늠하기 위해 지도 캡쳐


다음날은 예정대로 부석사로 향했다.

가는 길에 '일월식당'이란 곳에 들러 짜장면 짬뽕 그리고 물만두를 먹었다. 방송에 많이 나온 곳이고, 오래전 지인이 이곳을 다녀가며 극칭찬을 했던 기억(아래 기사)이 나서 들렀다. 자그만 동네는 하염없이 조용했지만, 이 가게는 엄청 붐볐다. 


https://v.daum.net/v/20171221030621160


그곳에서 부석사까진 10분 정도. 주차장에서 무량수전까지는 도보로 약 10여분. 계속 오르막이 이어졌다. 가파른 계단이 많아, 엄마는 우회길을 택해 오르셨다(다행히 그런 길이 있었다).


헉헉 거리며, 무량수전에 다다라 국보0(제로)를 먼저 찾았다.

한국에서 무수한 사찰이 있고, 그 사찰 중 오래된 것들에는 국보나 보물이 한 두 개씩은 있다. 부석사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부석사는 좀 특별하다. 그 많은 사찰 중 가장 많은 국보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사람들은 유명한 절에 국보가 많을 거라 생각하지만, 아니다. 해인사, 불국사 보다 부석사에 국보가 많다). 무려 5개의 국보가 있다.


1) 부석사 무량수전(국보 18호)

2) 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17호)

3) 조사당(국보 19호)

4) 조사당 벽화(국보 46호)

5) 소조여래좌상(국보 45호)


유홍준은 문화유산답사기 부석사 편에서 이 국보 라인업에 국보 0(제로)가 더해진다 얘기했다. 바로 무량수전에서 바라다 보는 풍경이 그것이다라고. 마치 스님들이 부석사를 향해 독경하는 모습이 한국의 대표적인 풍경이라 했고 그것을 국보0라 칭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부석사에는 무려 6개의 국보가 있다!했다.




아래는 사진을 못찍어 나무위키에서 빌려온 이미지다.

[왼쪽부터 소조여래좌상, 조사당벽화(지금은 박물관에 있음), 조사당]


부석사에서 영주로 갈 때, 풍기로 가는 길을 택했다.

그 길에 얼마전 오픈한 선비테마파크(선비세상)를 가기로 했다. 이전에 소수서원과 선비촌은 가 봤고, 최근에 오픈한 곳이라 관심이 갔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입장료가 15,000원. 망설였다. 들어 갈 것인가 말 것인가. 결론은 포기(설날 당일엔 무료입장 이벤트가 있었다고 한다). 국보가 있는 봉정사, 부석사를 2000원에 입장했는데, 이곳을 그 비싼 돈 들여 입장한다니. 뭔가 아깝단 생각(바깥에서 봤을 때 보여지는 풍경, 그리고 기대감)이 들었다. 바로 옆 선비촌과 소수서원(이 두  곳의 입장료를 각 3,000원)과 다르면 얼마나 다를까?도 의심을 더했다(돌아와 기사와 블로그 검색을 해 보니, 역시나. 너무 별로 아닌가)


아래는 작년에 오픈한 선비세상에 대한 소개기사다. 그래도 어떤 곳인지, 한 번 보시길.

https://v.daum.net/v/20220825090202170


영주에 도착해, 동생은 랜떡(랜드로버 떡볶이)을 사러 갔다. 언젠가부터 영주의 명물이 된 떡볶이다. 랜드로버(신발) 매장 앞 포장마차에서 판매하는 떡볶이인데, 떡볶이를 자주 먹는 게 아니다보니 뭐라 맛을 비교하기엔 그렇지만 쫄깃하고 얼큰하다. 기회가 되면, 맛보시라. 


이렇게 설연휴가 끝났다. 집에 와 다닌 곳을 정리하며, 인스타에 포스팅을 하려는데. 이들 사찰이 인스타 관리를 안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봉정사는 템플스테이란 이름으로 계정 하나가 있었고

https://www.instagram.com/bongjeongsa_templestay/ 

부석사는 부석사유네스코란 이름의 계정이 보였다.

https://www.instagram.com/buseoksaunesco/ 




이게 공식이 맞는지, 알 수는 없지만 포스팅의 분위기를 봤을 때는 일반인이 절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워 운영하는 거 같지는 않았다. 도무지 태그를 걸어 이들 인스타를 알리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국보가 있는 곳이고,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 아닌가. 그렇다면 이곳은 외국인들에게도 자랑스럽게 보여줘야 하는 곳 아닌가? 그리고 20대 친구들에게도 더더욱 알려야 하는 곳이 아닌가? 그런데 그들과 가장 쉽게 연결되는 채널이 전혀 관리가 안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고민으로 유명한 곳(유적지)의 인스타를 살피니, 안타깝게도 이들만의 이슈가 아니었다. 거의가 없거나 방치되어 있었다. 심지어 홈페이지도 제대로 없고(국보는 대개 문화재청에서 일괄적으로 모아서 관리) 콘텐츠 관리가 부실해 보였다. 사람의 발길은 유산과 유물에게 위험한 일이기도 하지만, 발길이 없으면 관리가 안되고 관리가 안되면 사라지기 쉽다. 나이든 한국 사람들(이런 곳을 찾는 대다수가 그들이다)의 관심 뿐만 아니라, 이 공간이 오래도록 관심을 받고 유지가 되려면 20대(10대)에게 그리고 외국사람들에게도 더 알려져야 한다. 그러려면 찾아 오기를 기다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곳의 메시지를 알려야 한다. 관광객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알 수 없는, 느낄 수 없는 것들이 만하. 그런 것을 찾아 알려야 한다.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한다.

 

(이걸 내가 챙해야하나...하는 생각이 수십번 들었다. 그런데 이걸 하려면 누구의 도움을 받아야 하나)




매거진의 이전글 롱블랙 300잔을 마셨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