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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업이 가능하다고요?

주 3일 일하는 풍경은 계속되어야 한다.

일본 3대 은행그룹인 미즈호 은행그룹의 직원수는 6만 명이라 한다. 6천 명이 아니다.

얼마 전 이 은행은 '사내외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인재를 키우고 새로운 금융 서비스를 개발하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전 직원 겸업 허용을 발표했다.  


한국에서 겸업은 금칙어다. 계약과 그에 따른 월급은 딴짓 말고 딴생각도 하지 말라는 힘으로 작용한다.


지난 3월 3일 카카오를 퇴사하고, 4일부터 카카오임팩트로 출근했다. 카카오임팩트는 카카오가 만든 공익 재단이고, 카카오페이 카카오모빌리티와 같이 카카오 공동체 중 하나다. 그곳으로 옮긴 이유는 '주3일 근무'가 가능했기 때문이다.(카카오임팩트에 해당 제도가 있었던게 아니라, 업무형태를 협의하면서 주3일 근무를 실험해 보는 걸 합의한 것) 나머지 이틀은 쉬고 싶었다기보다(물론 그런 것도 있었다. 특히 건강을 챙겨야 했다) 다른 일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 언젠가 퇴사를 할텐데, 준비가 필요했다.


카카오 정규직을 포기하고, 카카오임팩트 주 3일 출근 '계약직'으로 사인을 했다. 주 3일 출근이다 보니 기존 연봉도 포기했다. (이 일로 와입은 육아휴직을 신청했다가 번복했다. ㅠ) 그리고 카카오가 주는 꿀 같은 복지도 포기해야만 했다. 많은 걸 포기하면서 얻고 싶었던 건 2가지. '건강'과 '(새로운 시도를 가능한) 겸업 가능 조항'이었다.


어떤 일을 하고자 작정한 건 아니다. 내게 맞는 것을 찾아보고, 도전해 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작년까진 탐색과 도전을 위해 저녁시간과 가끔 주말 시간을 쏟아부었다. 여러모로 부족했다(특히 체력과 시간). 내겐 벌건 낮시간이 필요했다.


주 3일(월화수 출근)이 되면서 목금은 내가 컨트롤할 수 있게 되었다. 제일 먼저 아이들 등교(첫째)와 등원(둘째)을 챙겼다. 전날 밤 쌀을 씻어둔다.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밥을 안친다. 국과 반찬은 외할머니가 미리 준비해 주신 걸 데우기만 한다. 한 숟갈 먹이고, 입을 오물거릴 때 옷을 입힌다. 한 놈이 마지막 밥을 물었을 때 한 놈의 입엔 칫솔을 물린다.(그렇게 해야 지각을 면한다.) 그야말로 전투다. 그렇게 밖으로 보낸다. 아이가 품을 떠나 '또래' 무리에 들어가는 순간, 정말 뿌듯하다.


두 번째 루틴은 운동이었다. 마흔이 넘어서니 몸 곳곳이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지들이 깃발인 줄 안다. 운동 욕심은 워낙 오래됐지만 감히 시도를 못했는데, 회사에 안 나가는 목금과 토요일, 그렇게 주 3일은 땀 흘리고 온다. 다들 살 빠졌냐 묻는데, 그럴 때마다 운동 동기가 부쩍 상승한다. 잘 안 보이는 건강보다, 잘 보이는 살 빼기가 운동의 첫 번째 목표가 됐다. 살이 빠지면 성인병 상당이 좋아진다고 들었다. 그게 어딘가.


여행도 갔다. 만나통신사를 통해 '상하이' 비즈니스 트립에 참여했고, 리뷰빙자리뷰 섭외를 위해 부여 자온길도 다녀왔다. 제주 플레이스 캠프에서 진행된 낯선컨퍼런스에도 참여했다. 가족들과 전주/군산 여행도 다녀왔다. 이렇게 집 떠나 멀리도 갔지만 대개는 서울 여행이다. 인천에서 가려면 어디던 2시간 안팎이다. 왕복 4시간. 여행이 아니고 뭐겠나.

트래블코드 이동진 대표님을 만나러 간 날. 위워크 종각 타워(위)와 그곳에서 본 서울 풍경(아래)

오가는 시간이 아까워 약속을 많이 잡았다. 오후부터 저녁까지 보통 3~4개다. 페북에 퇴사와 임팩트 입사 소식을 알리며, 커피 사 달란 얘길 했는데 고맙게도 많은 지인님들이 반응했다.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분들도 커피 한 잔을 쏘겠다며 진심 어린 응원을 보냈다.  



커피와 술은 이야길 만든다. 낯선 이들과 대화를 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듣고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면서 앞으로 뭘 먹고살면 좋을지 여러 생각들이 두더지 게임 두더지 마냥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그야말로 아이들처럼 아이디어 만발. 책상에 쭈그려 앉아, 검색만 하고 있었다면 뭐 하나 진척이 없었을 거다.


지난 4개월. 주 3일 일하고 나머지 이틀을 이제까지 하지 못했던 것들에 시간을 쏟으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아이들과 실내 야구도 하고(첫째 던지고 둘째가 치고 난 포수를 한다), 우주선도 타고(주로 내가 빙글빙글 돌며 태워준다. 어지럽다 ㅠ), 격한 공룡 싸움도 하면서(곳곳에 흉터다. 난 매번 초식 공룡이고 그들은 제왕 티라노가 된다. 공격을 못하도록 원천봉쇄당한다) 몸이 가까워졌다. 주 3일 운동은 의사가 권한 몸무게 가까이 숫자를 줄였다(사실 운동 탓이기보다, 덜 먹어서 그렇다. 안다).


무엇보다 '겸업 가능'이란 조건을 활용해 소소한 아르바이트도 눈치 안 보고(돈보다 이게 중요) 열심히 했다. 그리고 다양한 작당모의를 만들었고 또 참여했다. 그러면서 2013년부터 시도한 퇴사를 이번에 진짜 하게 됐다. 그간 주 3일 근무를 하며, 좋은 걸 많이 봤다. 무엇보다 내 시간을 내가 관리한다는 게 얼마나 큰 매력인지 알았고, 회사를 떠나서도 '돈'을 벌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 게 컸다. 이것저것 노력하면 한 달에 200만 원은 벌 수 있겠단 계산이 나왔다. 물론 아이들 학원비와 생활비를 충당하려면 터무니없지만(카카오 수입을 기준으로 세팅된 라이프 ㅠ)  그렇게 6개월을 버티면 더 많은 수입을 가질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생각이라기 보다 '용기'겠다). 나의 퇴사 시도는 계속 흐지부지됐다. 이유는 먹고 살 대안(작더라도 안정적인 수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달랐다. 그간 해 온 사이드 프로젝트들이 실마릴 제공했다. 


7월 중순까지 회사를 다닌다. 그리고 안식휴가 2달을 보낸다. 최종 퇴사는 9월 중순이다. 주 3일 근무인데 계속 다니면 어떻겠냐란 조언을 많이 받았다. 물론 그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주3일이란 시간이 월급 받고 '버티는' 시간이 아닌 내가 즐기고, 주도할 수 있는 시간이면 더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요 몇달 주2일을 나를 위해 쓴 경험과 결과가 좋았다. 주 3일도 그렇게 쓰고 싶다. 뭐 수입은 줄지만, 돈벌이가 끊이지 않을 거란 확신이 그 결정을 만들었다. 겸업 가능(회사 입장에선 허용)조건을 통해 테스팅한 결과다.


미즈호 은행그룹의 실험은 그야말로 파격이다. 지금의 문제(시대의 변화, 일과 삶의 변화, 직원의 변화 등)를 그들만의 방식으로 돌파하려는 의도다. 직원들은 겸업을 하면 회사를 떠나지 않을까? 물론 모를 일이다. 집 떠나면 집이 더 그리운 것처럼, 오히려 로열티가 더 올라갈 것이다(난 집이 좋았지만, 갈등도 많았다. 대안이 없어 고민만하다 최근에 하나 둘 대안이 만들어 지면서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똑똑한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지 않고, 회사의 성장에 계속해서 기여하게 만들기 위해 회사는 점점 좋아져야 한다. 그렇게 해서 다다른 것이 직원에게도 좋은 것, 회사에도 좋은 것. 바로 겸업 가능.


한국에도 주 3일, 겸업 가능이 좀 더 보편화되길 바란다. 카카오임팩트에서 주 3일 근무와 겸업 실험은 멈추지만 앞으로 계속해 이걸 해 보려한다. 이게 하나의 풍경이 되면 좋겠다(그러니 혼자만 할 게 아니다). 다행힌 건 좋은 레퍼런스가 생겼다. 이런 이야기와 사례는 점점 많아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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