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블랙 2024년 10월19일 no. 870
롱블랙 2024년 10월19일 no. 870
한강 : 아픈 이들들을 호명할 때, 비로소 역사는 문학이 된다
본문 https://www.longblack.co/note/1229
1. 입 없는 자들의 고통을 자기 안에 데려와 입술을 빌려줄 때, 인간은 작가가 돼요. 권력이 침묵을 강요하고 사회가 망각을 재촉할 때, 한강은 기꺼이 기억하는 사람이 되려고 했죠.
2. 샘터에서 기자로 일하던 한강은 1993년 겨울 '얼음꽃' 등 5편을 발표하며 시인으로 데뷔.
"내가 네 호흡이 되어주지, 네 먹장 입술에
벅찬 숨결이 되어주지, 네가 온다면 사랑아,
올 수만 있다면"
- 서울의 겨울 12
이 슬픈애가는 그의 문학적 소명이 항상 죽은 자의 얼어붙은 언어에 숨결이 되는 일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샤먼의 언어가 그 문학의 한 기둥인 셈이죠.
3. 가부장적 폭력이 강요하는 비극적 삶이 여성에게 흐느끼는 울음의 언어를 강요하죠. 이 비통과 좌절을 기쁨과 부활로 바꾸는 걸 한강은 끈질기게 추구해 왔어요.
"삶 쪽으로 바람이 분다, 가라, 기어가라, 기어가라, 어떻게든지 가라"
4.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붉은 닻'을 발표하면서 한강은 소설가가 돼요. 데뷔작의 세계를 지배하는 건 "두려운 사람" 즉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도 "경멸하거나 저항할 수 없는 이상스러운 존재"인 아버지. 한강은 그 폭력에 시달리다 마음과 몸의 병을 앓는 존재의 절망적 연약함을 그려내요.
세계 3대 문학상인 부커상을 수상한 『채식주의자』. 한강은 이 작품을 “인간의 폭력성과 인간이 과연 완전히 결백한 존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본 작품”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창비
5. 타인의 고통을 감지해서 자신의 고통으로 삼을 수 있다는 건 인간의 고귀함을 증언하는 최후의 방어선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 소년이 온다 중에서
타인의 폭력적인 세계에 공감하고, 공동의 고통을 끌어안는 건 인간의 고귀함을 증언한다. 한강 작가는 아픈 역사와 사회의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해, 공동체의 아픔을 끌어안는 용기를 말한다.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