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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 한다, 퍼셉션 최소현

ㅅ스타그램 프로젝트 no.72

1. 사람 이야기만 하는 ㅅ스타그램 프로젝트입니다. (인스타가 메인, 브런치는 거들뿐)
2. 카카오 100일 프로젝트에 맞춰, 100일 동안 사람 이야길 합니다. 오늘이 72일째.
3. 우리는 대개 누군가 만든 길을 따라갑니다.
4. 그 길이 '대로' 일수도 있고, 인적 드문 '골목길' 일수도 있습니다.
5. 그러다 내가 길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꼭 그러하길 바랍니다.
6. 이 프로젝트는 내가 길을 만들기 전, 다른 이의 길을 살펴봅니다.
7. 그들 역시 웃고, 울고, 가라앉고, 상승하길 여러 번. 당신만 그런 건 아닌가 봅니다.
8. 힘내세요, 당신.

[ㅅ스타그램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thankumyfriends/  ]


1. 이름과 사회(일) 몇 년차인가요?

최소현 25년 차


2. 어떤 일을 해 오셨고, 지금 일터에서 당신의 역할을 소개해 주세요.

대학시절 내내 삼성디자인멤버십에서 제품과 그래픽, 인포그래픽 등 디자인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학교에서는 교지편집실의 기자로, 멤버십에서도 뉴스레터의 기자이자 디자이너로 총대 메고 여러 권의 책들을 만들었어요. 


삼성전자 소프트웨어센터에서 인턴으로 일 년 동안 UI(User Interface) 디자인을 했고, 입사 직전에 벤처의 꿈을 안고 프리챌 초기 멤버로 참여해 3년 조금 넘게 디자인팀장으로 오만가지 디자인을 했습니다. 벤처이다 보니 웹서비스 디자인은 물론이고 광고에 등장하는 열쇠고리부터 Internal branding을 위한 goods, 외부 홍보물까지 안 해 본 일이 없는 것 같아요. 거의 매일 야식 담당이기도 가끔은 대리기사이기도 했구요. 그러나 회사는 어려워졌어요. ㅠㅠ 인수되기 전 시점으로 보면 디자인팀에서 마지막까지 남아있다가 정말 ‘먹고사는 이슈’ 때문에 퇴사하게 되었습니다. 



2002년 ‘퍼셉션’을 창업해 기업의 디자인 전략을 세우거나 브랜드를 만들고, 다양한 고객 경험 접점의 브랜드 디자인을 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작고 큰 장소와 공간의 기획과 브랜딩, 기업의 신사업과제를 디자인 싱킹으로 해결하는 일을 많이 하고 있고 강연과 교육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공유 오피스 ‘플레이스 캠프 성수’의 대표를 맡아 직접 투자/개발하고 운영을 하고 있기도 하구요. 할리스커피의 브랜드 및 SI 리뉴얼을 맡아 수년 동안 파트너로 일해왔고, 플레이스 캠프 제주의 론칭을 돕고 현재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역할로 4년째 함께 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조금은 더 괜찮은 변화를 만들고 싶은 동료들과 함께 기획을 하고 디자인을 하며 다양한 워크숍에서 퍼실리테이터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3. 지난 3년, 가장 잘 한 일과 그 이유는?

주변이 빨리 변하면서 다양한 기업들의 신규 과제 문의가 굉장히 많이 들어왔어요. 그런데 마냥 다 받을 수는 없더라고요. 좋은 의도와 목표를 가졌는지, 우리가 정말 잘할 수 있는지, 클라이언트 쪽에 프로젝트 오너십을 가진 멤버들이 있는지 없는지, 특히 브랜딩 영역에서는 내부 조직이 함께 몰입해서 진행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초기에 프로젝트 논의를 하면서 과하다 싶을 정도로 검증을 많이 했어요. 뭘 그리 심각하게 일을 받느냐 돈은 언제 벌 거냐 등 주변의 애정 어린 잔소리들도 많이 들었지요. 십수 년을 회사를 운영해 오면서 사업가다운 역량은 늘지 않고 매 번 일에 대한 완성도에 몰입하다 보니 자책도 많이 했어요. 오지랖이 넓어 프로젝트 수주를 안 해도 힘이 닿는 데까지 돕게 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무조건 열심히’가 아니라 ‘to do’와 ‘not to do’를 정의하고 우리가 정말 잘할 수 있는 일에 몰입해야겠다 마음먹기 시작한 것이 가장 잘 한 일인 것 같아요. 일을 더 잘하기 위한 방법론과 시스템 개발에도 힘을 쏟았고 그래서 특허도 몇 개 가진 회사가 되었어요. 본질에 집중하려 노력했고, 한번 인연을 맺은 팀들의 성장에 함께 하는 일에도 더 몰입할 수 있었지요. 



4. 삶에 있어 아쉬웠던/안타까웠던(실수, 실패 등) 일이 있었을 텐데요, 어떤 것이고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안 좋은 상황이나 나쁜 일이 생겨도 모두 ‘내 탓’이라 생각하는 편이에요. 누구를 원망하거나 어떤 일에 대해 외부의 탓으로 돌리는 상황은 거의 없었지요. 맏딸로 자랐고 나름의 우여곡절이 꽤 있었기 때문에 내성이 강하게 단련되어 웬만한 외부 자극에는 끄떡 하지 않는다고 착각했었는데요. 그러다 탈이 났어요. 


서른이 조금 넘었을 때. 결혼도 일찍 했고, 아이도 일찍 낳았고 그래서 어른도 빨리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스스로가 마치 공갈빵(중국 호떡) 같다는 느낌이 들고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는 제 모습들에 괴리감도 느껴지고 처음으로 자기 멘털을 자기가 컨트롤하기 어렵다는 걸 느끼게 되었죠. 마음의 감기라고 하는 우울증이 극심한 상태였는데 전혀 몰랐어요. 아주 이상한 징후를 가족들이 느낄 때까지는요. 논리와 이성의 화신이었던 남편은 바로 병원을 예약하는 강력한 솔루션을 제시했는데 당시에는 정말 도망가고 싶었어요. ‘내가 왜? 도대체 왜?’라는 생각 때문이었지요. 아무튼 온갖 검사를 다 하고 처방전을 받아 약을 한동안 먹다가 굉장히 우연한 순간에 ‘나도 그럴 수 있지. 사람이니 그럴 수 있지. 괜찮아 괜찮아’라며 스스로를 다독거리는 저를 발견하게 되었어요. 


나의 회복탄력성을 과신하거나 마치 온 세상 일을 이해한다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된 계기가 되었죠. 매일의 일상에는 작고 큰 실수도 실패도 혹은 잘한 일들도 있기 마련인데 그때부터는 좋은 일이 51%, 나쁜 일이 49% 였으면 기특하고 장한 하루를 보냈다고 저를 칭찬해 주었어요. 그래야 또 다른 내일을 맞이할 수 있으니까요.




5. 슬럼프에 빠진 친구/지인을 보면, 어떤 조언을 해 주고 싶나요?

슬럼프에 빠진 친구들이 많이 찾아오는 편이에요. 예전엔 무조건 위로를 해주거나 어떤 이야기라도 건네려고 노력했는데 요즘은 상황에 따라서 조금 다른 이야기를 나누어요. 슬럼프 초기에 어쩔 줄 모르고 상심에 빠져있는 경우에는 그냥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줘요.  “괜찮아. 그럴 수 있어. 그럴 만도 해…”라고 말하지요. 비 맞고 있는 친구에게 우산보다 같이 비를 맞는 게 더 나을 때도 있다고 하잖아요.  어떻게든 슬럼프를 극복해보려고 찾아오는 경우에는 쭉 들어보고 몇 가지 질문을 던져요. 마치 인터뷰를 하듯이 그 혹은 그녀가 제 질문에 대답을 하면 메모를 하고 그림을 그려가며 정리를 하기도 하지요. 자기 자신의 문제를 객관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걸 돕고 대안의 가닥들을 같이 이야기해요



가끔 혼내달라고 오는 친구들도 있어요. ㅎㅎㅎ 함부로 판단해서 답을 내리려고 한다거나 정확히 알지 못하는 일에 설레발을 치며 거들거나 하지 않으려고 해요. 많이 들어주고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게 질문하는 역할이 제 역할이지요. 조언이라 할 것 까지는 없고, 제가 자주 쓰는 방법인데요. 사안을 객관화시키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묻는 거예요. ‘거울아 거울아…’ 할 수 없으니 

1) 나와 나를 분리시켜
2) 슬럼프에 빠진 나(A)에게
3) 또 다른 내(B)가 질문지를 작성해 이메일로 보내고(이때, 이메일 계정은 서로 다른 것이 좋아요)
4) A는 답을 작성해 B에게 보내고
5) B는 그 답을 확인하며 상황을 이해하고 솔루션을 상상해 보는 방법이에요.  

질문의 내용은, 어떤 상황인지 무엇이 힘든지 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는지 등이 포함되는데요 신기하게도 진짜 많은 도움이 된답니다. 


6. 삶에 흔들리는 지인들에게. 드라마, 책, 영화, 음악, 뮤지컬, 연극, 미술, 사진 등 이건 꼭 (들어)봐~ 하며. 추천하고 싶은 건? 왜요?

영화  

1) 죽은시인의사회 - “그 누구도 아닌 자기 걸음을 걸어라. 나는 독특하다는 것을 믿어라. 누구나 몰려가는 줄에 설 필요는 없다. 자신만의 걸음으로 자기 길을 가거라. 바보 같은 사람들이 무어라 비웃든 간에.”라 이야기하는 키팅 선생님. 그는 흔들리는 우리 모두에게 스승이다.  


2) Perfect Sense - 바이러스로 인간은 감각을 하나씩 잃어간다. 폐허가 된 세상에서 인간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그 안에서 또 어떻게 자기중심을 잡고 묵묵히 일어서는지… 극한의 상황들을 바라보다 보면 지금의 나와 주변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3) 머니볼 - 아론소킨의 각본을 좋아한다. 특히나 머니볼은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삶을 살아가는 방법, 조직과 경영, 전략, 자기중심 잡기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주옥과 같은 명언들이 한가득 


4) The Conductor -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지만 무엇이라도 하겠다는, 그래서 스스로 존재의 의미를 찾는 안토니아브리코. 현타도 또렷하게 그에 맞서는 꿋꿋한 노력도 미사여구 없이 보여준다. 과거의 이야기지만 여전히 지금도 존재하는 이야기 



 

1) 나를 바꾸는 심리학의 지혜, 프레임 (최인철) - ‘내가 행복한가 그렇지 않은가’, ‘나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는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인 나의 ‘프레임’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2)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제현주) - 우리에게 일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일하고 싶은지에 대해 두루뭉술함이 아닌 또렷한 질문과 구체적 대안을 제시한다. 같은 저자의 ‘일하는 마음’과 함께 읽기를 추천 


3) 고독의 발견 (헨리 데이비드 소로) - 외로움이 아닌 고독을 즐기며 스스로를 단단히 할 수 있는 단초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1) 길 (윤동주) - 잃어버린 무엇들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마음에 구멍이 뚫린 것 같을 때, 그래도 묵묵히 내 잃은 것을 찾아가는 용기가 필요함을 느끼게 된다. 


2) 가지 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 - 마주한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보다 내가 택한 길이 필연일 수도 있겠다는 자기 믿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전시  

1) 어둠 속의 대화 - ‘당신은 어둠 속에서 무엇을 보셨나요?’ 빛이 차단된 공간에서 시각이 제한된 채 다른 감각들을 세밀하게 느끼며 각자의 상황에 따라 평소에 하지 못했던 몸과 마음의 경험을 하게 된다. 감각의 리셋을 통해 나와 주변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7. 당신의 생각과 행동에 영감/영향력을 주는 사람들 중 다른 분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1명을 생각해 보세요. 

1) 임팩트 벤처캐피털 ‘옐로우독’의 제현주 대표 - 기존의 시스템과 비즈니스가 해결하지 못하는 사회적 문제에 혁신적인 방법으로 새롭게 접근하는 스타트업에 투자(옐로우독 사이트에서 발췌), 책을 쓰고 번역을 하며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가치있는 일’과 ‘일하는 마음’에 대해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2) 어른이 되어 만난 진짜 친구입니다. 제현주 대표와 저를 포함한 네 명의 친구들은 서로를 ‘alter ego’라고 부릅니다. 서로 아끼고 존경하는 사이지요.  


3) 따뜻하고 선한 에너지와 냉철하고 전략적인 사고를 함께 가지고 있는, 유쾌하기까지 하니 저에게는 ‘완벽한 사람’입니다. 굉장히 창의적인 발상을 논리적으로 이야기하고, 분명 머리아픈 이슈였는데 쉽게 풀어낼 때에는 받아 적고 싶을 정도지요. 매일 자기 단련을 위해 달리기를 하는 루틴 또한 제게는 큰 자극이 됩니다. 사회적 가치에 투자하는 일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든든한 친구로서 제현주 대표는 그 존재의 의미가 분명하여 제 일에서도 일상에서도 늘 도움을 받습니다. 


8. 당신이 지향하는 삶의 가치는?

‘관계’에 있어 주체적이며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여기에서 ‘관계’란 나와 나와의 관계에서부터 가족, 동료, 사회, 지구환경과의 관계까지도 포함하지요.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그렇게 살기 위해 조금씩 조금씩 실천하고 있습니다. 저는 거대하고 원대한 포부 같은걸 가져본 기억이 거의 없어요. 내가 옳다고 믿는 가치에 위배되지 않게 매일을 열심히 살고 주변에 아주 작은 긍정적 에너지를 미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인생이라는 항해에 작은 배에 혼자 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남편과 세 아이, 동료들과 함께 하는 조금은 큰 배에 타고 있으니 때로는 키를 잡고 때로는 닻을 올리며 그렇게 균형감을 가지고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누군가 내릴 수도 있고 더 탈 수도 있고, 암초를 만날 수도 있지만 각자의 최선과 작은 루틴이 모이면 괜찮을 거라고 믿어요.  


매해 초 새로운 다짐을 할 때마다 반복해 상기하는 것이 있는데요, 논어에 나오는 ‘君子三變’이에요. 군자에게는 세 가지 변하는 모습이 있는데 ‘멀리서 바라보면 엄숙하고 가까이 가면 온화하고 말을 들어보면 논리적이고 명확하다’라는 뜻이에요. 이런 사람이라면 제가 지향하는 삶을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매년 되새기고 있답니다.



9. 만약 지금 하는 '일'과 '다른' 일을 하고 있다면,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요? 왜 그일 인가요?

‘기자’가 되었을 수도 있겠어요. 어릴 적 한동안 꿈이 ‘기자’였어요. 호기심이 많은 편이었는데 늘 주변을 관찰하고 궁금한 질문들을 적고 답을 찾는 과정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어요. 내용을 잘 정리해서 누군가에게 글이나 말로 전달하는 것에도 신이 났구요.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때 내내 방송반이나 교지편집실에서 일했던 걸 보면 아마 직업이 되었을 수도 있었겠죠? 좀 생뚱맞지만 기자를 열심히 하다 보면 라디오 DJ도 가능하지 않을까 꿈도 꿨었던 기억이 나네요. 글을 엮어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많았었구요. 한참 어른이 돼서야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아져서 가끔 스스로 ‘워~ 워~’ 하기도 해요. 요리사였으면 어땠을까, 건축가였으면 어땠을까, 작곡가였으면 어땠을까 별별 상상을 다 하거든요. 아직 철이 안 들었나 봐요. 



10. 당신이 가진 여러 힘들 가운데, 어떤 힘이 센가요 (장점, 고유성 등)?  

안될 거다 보다는 될 거라는 마음을 가진 것이 중요한 힘 같아요. 그냥 ‘긍정적인 마인드’와는 조금 다른데요, 될 거라는 마음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빠르게 시뮬레이션할 필요가 있는데 이 힘은 때때로 매우 유용한 힘이라고 생각해요. 경계인의 특성도 제게는 장점인 것 같아요. 디자인과 커뮤니케이션 전공, 다양한 조직 경험, 소위 ‘중성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성격 등 어찌 보면 이도 저도 아닐 수 있지만 제가 하는 일에서 저의 역할은 경계인으로 전체를 바라보고 퍼실리테이팅 하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어떤 메시지를 청중에게 전달하는 일, 커뮤니케이션하는 일에 조금 강점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11. 20대(사회 초년생) 당신과 지금의 당신, 생각(가치관 등)의 어떤 부분이 (크게)달라졌나요?

게 달라진 점은 없는 것 같아요. 8번에서 이야기했던 제가 지향하는 삶은 고등학생 때부터가 시작이었거든요. ‘균형감이 있는 사람이 되려면 한쪽만 보아서는 안된다’라고 말씀하셨던 선생님이 계셨어요. 그 말씀이 제게 큰 영향을 미쳤는데 어떤 상황이든 여러 방향으로 보려고 노력하다 보니 눈에 띄게 달라진 부분이 없지 않았을까 합니다. 굳이 달라진 걸 찾자면 20대에는 ‘내가 노력하면 다 될 거다.’라는 생각이 조금 있었다면 지금은 ‘내 노력과 관계없이 불가항력의 일들도 있는 게 세상이다.’라는 걸 깨달은 것 같아요. 


12. 당신은 무엇에(or 언제) 보람을 느끼나요?

생각한 대로 결과가 나왔을 때, 몸으로 하는 일의 경우 반복 연습에 의해 나아질 때, 아이들이나 동료들이 성장했다고 느껴질 때. 예전에 비해 집에 머무는 시간이 조금 길어지고 해 먹는 빈도도 늘어났는데, 식구들의 오더에 여러 가지 제약을 극복하고 생각했던 메뉴를 잘 만들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참 뿌듯합니다. 



13. 인생 후반전(50세 전후)이 있다면, 당신은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요?

자연 가까운 곳에서 어떤 공간을 만들고 운영하고 있을 것 같아요. 예전부터 꿈꾸던 일인데요, 매일 새로운 사람들이 잠깐 왔다 가는 공간이 아니라 그곳이 좋아 찾아오는 사람들이 꽤 오래 혹은 자주 머무르다 갈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어요. 꽃과 나무를 가꿀 수 있는 작은 정원, 그림을 그리거나 바느질을 하거나 무언가 만들 수 있는 작업실, 영화를 보거나 작은 공연을 하거나 만담을 나눌 수 있는 미디어룸, 커다란 팬트리와 공유주방, 아무거나 가능한 라운지, 요가와 명상을 하고 차담을 할 수 있는 고요한 공간, 노래를 부르거나 연주를 하거나 마음껏 말할 수 있는 연습실, 지금 가진 재산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책들이 있는 라이브러리, 그리고 오롯이 개인의 공간에서 편히 쉴 수 있는 침실과 욕실이 있을 것 같아요. 


십여 년 전 석사과정 때 상상 속 콘텐츠로 책을 만드는 과제가 있었는데 그때 ‘9 my favorite rooms’라는 제목으로 기획하면서부터 이런저런 꿈들을 만들어가는 중이었던 것 같아요. 호텔보다 하숙집 느낌이 제게는 더 매력적이에요. 얼마 전 한 친구와 ‘사는 공간’에 대해 아무리 멋져도 ‘home’이 아니라 ‘house’의 느낌인 곳들이 많은데 거기에서는 오래 편안하게 머무르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나눴어요. 적정온도의 따뜻함이 있는 사람들이 머무는 공간을 만들고 운영하는 일, 도심 한복판보다는 약간 떨어진 곳에서 그렇게 살고 있을 것 같습니다. 



14. 13)번 질문에 이어, 그것을 위해. 지금 준비하고 있는 게 있나요?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모두 관련된 일들일 것 같아요. 사람에 대한 관심, 공간 개발과 운영, 무엇을 기획하고 만들어내는 지금의 일들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합니다. 트레바리 클럽장으로 독서모임을 운영한 지 1년 반이 되어가는데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아야 보이는 것을 만들 수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디자인, 브랜드, 공간, 사람, 경험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인비-Invi (Invisible/Visible)’라는 이름의 클럽이에요. 모임에서 함께 책을 읽고 발제문을 뽑고 다양한 의견과 서로의 인사이트를 나누는 경험들의 누적이 제게 엄청난 자양분이 됩니다. 여러 모임에 참여하기 힘드니 한두 개의 관련 커뮤니티 활동을 하면서 조금씩 공부하는 중이에요. 실제 장소를 발굴하고 입지를 개발하는 부분은 가까운 분들이 준비하고 있구요. 



15. (좋은, 작은)습관이 있다면? (없다면, 어떤 습관을 가지고 싶나요?)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포스트잇을 꺼내 이슈들을 적고 구조화를 하며 벌어진 일을 객관화시키는 습관이 있어요. 거기에 매몰되지 않고 빠져나와 일을 일로 보게 하는 좋은 습관이라고 생각합니다. 머리가 복잡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몸을 움직이는데요. 되도록 나무가 있는 곳을 찾아 두세 시간 걷기를 하는데 그러고 나면 고요하고 차분한 상태가 돼요. 복잡한 강도가 조금 세다고 느껴지면 생각 버튼을 잠시 pause 상태로 옮겨 두는데요, 빵을 만들거나 뜨개질을 하거나 바느질을 하면서 손을 꼼지락거리는데 이때 딴생각하다 자칫 잘못하면 여러 괴로운 일들이 발생하기 때문에 오로지 손과 손에 닿는 것들에만 집중하게 돼요. 명상의 다양한 실천 중 하나로도 볼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16. 누군가에게 강의를 '해야' 한다면, 어떤 노하우(or 인사이트 / 경험)를 전달하고 싶나요?

디자인적인 관점으로 사고하고 다양한 영역의 브랜드를 만들고 브랜딩을 해 온 기간이 있으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이들에게 그들이 듣고 싶은 메시지로 치환해 잘 전달하는 방식’에 대해 강의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바라보는 ‘브랜드’는 개인, 조직, 상품, 서비스, 도시와 국가 등 모든 ‘존재’를 의미하는데요, 프로세스와 방법론을 비롯해 실제 경험한 사례들을 공유하면 무언가 기획하고 만들고 운영하는 데 있어 기본을 다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해요. ‘브랜드 전문가’이기보다 ‘관찰하고 새롭게 발상해 대안을 찾아내며 생각을 가시화시키는 디자이너’로서의 경험을 더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17. 당신은 지금 어떤 키워드로 기억되고 싶나요?

1) 디자이너 2) value creator 3) 질문을 던지는 사람 4) 따뜻하고 섬세하며 분명한


18. (신이 지금 나에게) 1년의 시간을 '보너스'로 준다면, 무얼 가장 하고 싶나요? 왜 그걸 하고 싶나요?

1년의 시간이 보너스라니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요? 하나만 꼽으라면… 죽은 사람을 떠나보내는 방식, 즉 ‘장례문화’를 바꾸어 보고 싶어요. 죽는 이 스스로도 자신의 죽음과 그 이후를 생각한다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게 달라질 수 있을 것 같고, 남아있는 이들도 그와 이별하고 추억하고 기억하는 방식을 저마다의 상황에 맞게 선택할 수 있을 텐데, 우린 각자 그렇게 매일을 치열하게 살다가 죽는 순간에는 참 허무하게도 다 똑같은 형식으로 세상과 이별하잖아요.


아직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죽음을 준비하는 삶의 방식, 죽음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당사자와 그와 관계된 이들이 할 수 있는 일들, 물리적 공간과 콘텐츠 등 해 볼 수 있는 일들이 많을 것 같아요. 



19. (자문자답) 스스로 질문하고, 답해 주세요. 이 질문을 듣고 싶고, 그에 대한 답은?

Q.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으로 태어나고 싶은가? 

A. 혼자 사는 큰 새 - 복작복작 관계 속에 소심한 마음을 가지고는 안 그런 척하고 사느라 댕댕거리며 사느라 안쓰러울 때가 가끔 있어요. 괜찮다 괜찮다 하지만 그래도 매일매일을 살아내야 하는 거니까 다음 생애는 좀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면 좋을 것 같아요. 무리 지어 살지 않으며 파닥파닥 하지 않아도 멀리 날아갈 수 있고 저만큼 떨어져 관망을 해도 그게 자연스러운 존재. ‘혼자 사는 큰 새’ 정도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20. 요즘 당신이 몰입하고 있는 건 무엇인가요? 그것이 잘 되면 어떤 결과를 기대하시나요?

사람은 얼마나 자기 감각에 예민하게 집중하는가, 오감을 비롯해 마음에 얼마나 귀 기울이는가에 관심이 많아요. 인간에 대한 탐구라고나 할까요? 브랜드 경험 디자인이며 공간기획이며 결국 사람이 주체이자 대상이 되는 일을 하는 거잖아요. 과연 ‘본질’이 뭘까, moment를 memory로 만들려면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 보니 ‘사람’에 대한 관심과 관찰이 제일 중요하겠더라고요. 저 자신부터도 어떤 상황에 내 감각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 상황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기록해 놓고, 일상이나 새로운 상황에서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전체와 부분을 밀고 당기며 세밀하게 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어렵기도 하고 또 단기간에 뭔가 이루기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누군가를 위한 어떤 것’을 디자인할 때 조금은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요?


21. (마지막) 당신의 이야길 읽는 분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우리 모두 각자의 최선을 다하며 살아요. 나를 제일 존중하지만 가끔 옆을 살피면서요. 그렇게 지내다 우연히 만나면 반갑게 인사 나눠요 우리!



이상입니다. 인터뷰에 응답해 준 최소현 님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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