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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이 중심인 삶, 연극 프로듀서 정재은

ㅅ스타그램 프로젝트 no.88

1. 사람 이야기만 하는 ㅅ스타그램 프로젝트입니다. (인스타가 메인, 브런치는 거들뿐)
2. 카카오 100일 프로젝트에 맞춰, 100일 동안 사람 이야길 합니다. 오늘이 88일째.
3. 우리는 대개 누군가 만든 길을 따라갑니다.
4. 그 길이 '대로' 일수도 있고, 인적 드문 '골목길' 일수도 있습니다.
5. 그러다 내가 길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꼭 그러하길 바랍니다.
6. 이 프로젝트는 내가 길을 만들기 전, 다른 이의 길을 살펴봅니다.
7. 그들 역시 웃고, 울고, 가라앉고, 상승하길 여러 번. 당신만 그런 건 아닌가 봅니다.
8. 힘내세요, 당신.

[ㅅ스타그램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thankumyfriends/  ]


1. 이름과 사회(일) 몇 년차인가요?

정재은, 20년 차

[재은 님의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jaeeunjung/


2. 어떤 일을 해 오셨고, 지금 일터에서 당신의 역할을 소개해 주세요.

대학로에서 연극을 만듭니다. 글 쓰는 것이 좋아 극작을 전공했고, 무대에서 내가 쓴 희곡이 공연되었던 단 한 번의 희열을 잊지 못해 공연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공연예술 월간지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고, 여러 번 이직을 하면서 주로 공연장에서 홍보 업무를 맡았습니다. 지금은 대학로에 위치한 아르코 대학로예술극장에서 연극 담당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공연을 기획하고 연출가를 만나고, 배우와 스태프를 찾아 연극을 만들고 많은 이들이 볼 수 있도록 여러 일을 합니다.



3. 지난 3년, 가장 잘 한 일과 그 이유는?

6년째 필라테스를 계속하고 있는 거요! 한쪽 어깨가 너무 아파 시작했는데 몸의 균형을 잡고 근육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게 된 것이 정말 다행입니다. 처음에는 움직여야 하는 근육에 대해 인지조차 하지 못했어요. 반복된 훈련을 통해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가끔은 물리치료나 재활 훈련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을 정도로요. 여전히 생활하면서 균형이 깨질 때도 있지만 제 한계에 도전하려고 집중하는 짧은 시간이 성취감을 줍니다. 


4. 삶에 있어 아쉬웠던/안타까웠던(실수, 실패 등) 일이 있었을 텐데요, 어떤 것이고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나와 생각이 많이 다른, 안 맞는 사람과 같이 일을 해야 했던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뒤집혔습니다. 제대로 설 수조차 없고 계속 세상이 빙빙 돌아가더라고요. 달팽이관에 문제가 생겼는데 원인은 스트레스라고 했습니다. 나이가 들면 너그러워지고 모든 것을 포용하게 될 줄 알았는데 싫은 건 계속 싫고, 타협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더라고요. (아직 극복을 못한 것 같아요.) 그렇지만 한 편으로는 나와 인연이 아닌가 보다, 잘 마무리하고 너무 속 태우지 않으려고 합니다.



5. 슬럼프에 빠진 친구/지인을 보면, 어떤 조언을 해 주고 싶나요?

흠뻑 힘들어하고, 바닥을 탁 차고 올라오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누군가 아무리 끌어올려주려 해도 안될 때가 있잖아요. 우연한 기회로 100일 동안 명상을 하게 되었는데, 출퇴근길 버스 안에서 조용한 위로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의 감정과 상태에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미숙하지만, 나를 가장 잘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이더라고요. 어디에선가 읽었는데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흘러 좀 더 자란 당신이 해결해 줄 거래요.


6. 삶에 흔들리는 지인들에게. 드라마, 책, 영화, 음악, 뮤지컬, 연극, 미술, 사진 등 이건 꼭 (들어)봐~ 하며. 추천하고 싶은건? 왜요?

사진 찍는 것도, 보는 것도 좋아해요. 현실을 그대로 담아내는 시선도 좋지만, 이런 환상적인 사진들을 보면서 잠시나마 도피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아바의 노래들이 뮤지컬과 영화로 다양하게 변주된 [맘마미아]를 좋아합니다. 그중에서도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영화에서 부른 ‘Thank You For The Music’을 즐겨 듣는데요, 얼마 전 맘마미아 초연 배우들이 이 곡을 각자의 공간에서 한 소절씩 불러, 코로나로 입원한 한 배우에게 선물했습니다.


[그 영상을 한 번 보실까요?]


배우들이 꾸밈없는 모습으로 각자의 공간에서 부른 노래들이 모여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냅니다. 아만다 사이프리드의 노래는 매끈하게 다듬어진 아름다움이었다면 이 영상은 이어 붙인 진심의 조각들이 들쭉날쭉한 그대로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모일 수 없는 이 시기가 지나면, 꼭 공연장에 직접 오셔서 공연을 보시라는 당부를 드리고 싶어요. 영상으로는 담을 수 없는 배우들의 반짝이는 눈빛이, 객석에 앉아 있는 당신을 휘감아 도는 소리로 다른 세상과 다른 시간을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당신이 좋아하실만한 공연을 추천해드리고 싶네요! 



7. 당신의 생각과 행동에 영감/영향력을 주는 사람들 중 다른 분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1명을 생각해 보세요.

즈이 아버지요. 이름은 말씀 안 드릴래요. 문화예술 쪽 기자생활을 오래 하신 언론인이었고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아버지의 그늘에 가려 사는 게 싫었던 적이 있었어요. 어딜 가도 제가 아닌 누구 딸, 그러니까 너는 낙하산이네 하는 시선이 불편했어요. 지금은 감사한 마음이 훨씬 큽니다. 아버지는 퇴직 후에도 아코디언을 배워 연주하시고, 연극 무대에 서 보시기도 하는, 끊임없이 도전하는 분이에요. 공연을 보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빠짐없이 기록하시고, 그걸 모아서 책을 내기도 하셨어요. 또 어떤 도전을 하실지 기대가 됩니다.


8. 당신이 지향하는 삶의 가치는(어떤 삶을 살고 싶나요)?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나눌 수 있고,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고 싶어요. 주변을 따뜻한 사람들로 채우고 싶고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싶네요.



9. 만약 지금 하는 '일'과 '다른' 일을 하고 있다면,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요? 왜 그일 인가요?

20년 차 회사원이 아니라면, 작가이고 싶어요. 글을 쓰면서 표현을 달리 해보고, 말을 고르는 일이 재미있어요. OSMU 원 소스 멀티 유즈라는 말을 한 동안 많이 했었죠. 제 이야기가 다양한 장르의 천재적 창작자들에 의해 표현되는 것을 죽기 전에는 꼭 보고 싶습니다.


10. 당신이 가진 여러 힘들 가운데, 어떤 힘이 센가요 (장점, 고유성 등)?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다가 너무 감정을 이입한 나머지 제가 더 우울해질 때도 있을 정도로 공감 능력이 솟구칠 때가 있습니다. 사람을 좋아해요. 특히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는 것을 좋아합니다. 


11. 20대(사회 초년생) 당신과 지금의 당신, 생각(가치관 등)의 어떤 부분이 (크게)달라졌나요?

그 시기를 생각하면 너무 부끄러워져요.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왜 그런 오만한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완벽하려고 노력했고 할 수 없는 일도 놓지 않고 혼자 다 해내려고 끙끙댔던 때가 있었어요. 그리고 주변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썼고, 미움받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모든 사람이 날 좋아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그냥 제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죠.



12. 당신은 무엇에(or 언제) 보람을 느끼나요?

제가 공연 본 느낌을 적은 글을 보고, 누군가가 정말로 그 공연을 보러 가면 기분이 참 좋더라고요.  내가 진심을 담아 쓴 글이 그 공연을 보고 싶게 만든다는 지점, 내가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점.


13. 인생 후반전(50세 전후)이 있다면, 당신은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요?

애정 어린 평을 하는 연극평론가, 연극을 만드는데 여러 도움을 주는 드라마터그, 혹은 연극을 보라고 권유하는 선생님? 극장에 자주 가거나 머무는, 연극 언저리에 있고 싶습니다. 저는 '극장'이라는 공간이 다른 모습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정말 즐겁고 좋고, '희곡'이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되어 무대에 올라가고, 그걸 보는 사람들도 다르게 받아들인다는 점도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있는 '배우'들이 표현하고 전달하는 부분에 전율을 느낍니다. 공연이 끝나고 박수를 제일 열심히 치고 오래 치는 사람이 있다면 저예요. 



14. 13)번 질문에 이어, 그것을 위해. 지금 준비하고 있는 게 있나요?

작년에 일주일 동안 런던에 갈 기회가 있었어요. 촘촘히 일정을 짜서 낮 공연 저녁 공연 하루에 두 편씩 7일 동안 11개의 공연을 봤습니다. 내셔널 시어터와 바비칸, 글로브 시어터를 돌아보는 백스테이지 투어도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애정 어린 영혼으로 공연을 보고 있는 관객들이었습니다. 그래요 셰익스피어의 후손들. 구태의연하지만 어느 극작가를 좋아하냐고 물으면 전 항상 셰익스피어거든요! 런던에서 연극을 배우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15. (좋은, 작은)습관이 있다면? (없다면, 어떤 습관을 가지고 싶나요?)

사람을 만났을 때 좋은 점부터 봅니다. 사기당하기 딱 좋은 캐릭터죠.


16. 누군가에게 강의를 '해야' 한다면, 어떤 노하우(or 인사이트 / 경험)를 전달하고 싶나요?

혼밥 강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주에서 흑돼지 너무 먹고 싶어서 2인분 구워 먹은 경지.



17. 당신은 지금 어떤 키워드로 기억되고 싶나요?

#연극 #글쓰는사람 #맥주파 #가끔막걸리


18. (신이 지금 나에게) 1년의 시간을 '보너스'로 준다면, 무얼 가장 하고 싶나요? 왜 그걸 하고 싶나요?

책을 많이 읽고 싶어요. 깊이가 없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전 사실 생일이 빨라서 1년의 시간이 보너스로 주어졌다는 생각을 하고 삽니다 ㅎㅎ


19. (자문자답) 스스로 질문하고, 답해 주세요. 이 질문을 듣고 싶고, 그에 대한 답은?

Q - 어떤 질문이 가장 어려웠나요?

A - 저 근데 정말 답을 쓰면서 많이 좌절했어요. 전 아직도 저를 잘 모르겠더라고요. 저는 저의 단점에 집중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그걸 고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이었달까. 우리 부모님은 학교 선생님을 만나도 늘 '부족한 딸'을 잘 부탁한다고 하셨거든요. 자존감이 엄청 낮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자존감이 엄청 높은 남편을 만나서 세상을 보는 시선부터, 많은 것들이 바뀌었어요.



20. 요즘 당신이 몰입하고 있는 건 무엇인가요? 그것이 잘 되면 어떤 결과를 기대하시나요?

9월에 대학로예술극장 무대에 올릴 폴라 보걸의 연극 <Indecent인디선트>요! 창작자들, 연극하는 사람들을 말하고 혐오, 차별로 인한 폭력과 동성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라이브 연주와 춤, 일인 다역과 연극적인 무대 활용이 주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 될 거예요! 얼마 전 여러 단계의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을 확정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보시고 감동을 받아가시면 좋겠네요.


21. (마지막) 당신의 이야길 읽는 분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려요.  

저는 인연을 무척 신기하게 생각합니다. 특히 길 가다가 우연히 아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놀라워요! 몇 초만 먼저 혹은 후에, 다른 길로 갔다면 만나지 못했을, 이런 것이 '인연'인가 보다 싶은 생각이 들거든요.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저와 어떤 깊은 연이 있기에 여기까지 긴 글을 읽어주신 걸까요. 고맙습니다.


이상입니다. 인터뷰에 응해 준 정재은 님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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