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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 김규진

읽은 책 문장채집 no.97

2021년. 카카오프로젝트 100. [문장채집] 100일 간 진행합니다.
1) 새로운 책이 아닌, 읽은 책 중에서 한 권을 뽑습니다.
2) 밑줄이나 모서리를 접은 부분을 중심을 읽고, 그 대목을 채집합니다.
3) 1일 / 읽은 책 1권 / 1개의 문장이 목표입니다(만 하다보면 조금은 바뀔 수 있겠죠).


이슬아 작가를 좋아한다. 그는 너무 만화 같다. 이렇게 쓰니 첫 문장을 다시 써야겠다. 이슬아 작가는 재미있다. 그래서 좋아한다. 최근 그는 인터뷰 책 2권을 냈다. 그중 하나가 창작 동료 인터뷰 [창작과 농담]이다. 이 책을 열심히 읽고 있는데, 김규진 작가와 인터뷰가 나오는 게 아닌다. 이슬아는 그에 대해 이렇게 풀었다.


그의 책을 읽으며 세 가지를 생각했다. 일의 천재가 사랑을 하면 이렇게 되는구나. 사랑의 천재가 일을 하면 이렇게 되는구나. 아무튼 그는 천재구나. 마지막 장을 덮고 확신했다. 이 책은 올해(2020)의 에세이라고. 

이러니, 김규진 작가의 책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를 안 읽을수가 있나.



1.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작은 싸움을 이겨내고 승리했다는 걸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다. 이렇게 해보니 되더라고, 동성애자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고. 그리고 언젠가 성미산학교의 남학생과 웃으며, 세상이 변하긴 변하더라, 살다 보니 달라지더라는 얘기를 나누고 싶다.(p. 10)


2. 내가 만약 자식을 낳게 된다면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잘은 모르겠지만, 아빠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자식의 손을 꼭 잡아주고 싶다.(p. 41)


3. 옆에 있던 다른 행인들도 같이 맞장구를 치거나 따스한 눈빛을 보내왔다. 더 부끄러워졌지만, 낯선 사람들의 응원과 호의에 힘이 나기도 했다. 한강 다리에서 찍었다면 받지 못했을 반응이니까.(p. 110)


4. 김규진 작가님의 혼인서약서(p. 134)

사랑하는 언니에게


결혼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지금 웨딩드레스를 입고 하객들 앞에 서 있지만

내일 같이 구청에 가서 혼인신고서를 제출하면 거절당할 거야.

마일리지 합산도, 신혼부부 대출도, 수술 시 동의도, 사망 시 상속도 안 되겠지.

함께하다 보면 분명 힘든 일이 많을 거야.


하지만 원래 인생이 그런 거 아닌가?


마일리지 합산이 안 된다면 내가 언니 카드로 적립을 할게.

신혼부부 대출이 안 되지만 1주택 세금으로 2주택을 보유할 수 있어.

수술 시 동의를 못 하게 하면 아는 사람이 있는 병원으로 가자.

사망 시 상속 순위가 밀린다면 미리 공동 명의로 법인을 설립할게.

힘든 일이 많겠지만 함께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을 거야.


우리는 지금 서로가 골라준 웨딩드레스를 입고

우리를 축하해주는 하객들 앞에 서 있어.

결혼은 이런 게 아닐까?


우리의 결혼은 행복할거야.

나랑 즐겁게 살아보자.

사랑해.   


2019년 11월 10일 

신부 김규진


5. 서명을 하고 집에 가려 발걸음을 떼는데 뒤에 계시던 중년의 공무원이 말을 걸어왔습니다.

"저기, 국회에서 법제화를 위해 많이 노력하는 중이니까 조금만 기다리세요"

예상치 못한 따뜻한 한마디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p. 213)


6. 저희 집에서는 언니가 병뚜껑 열기 담당입니다. 항상 제가 먼저 열겠다고 덤비지만, 생각보다 사지에 힘이 없는 스타일인지라 결국에는 실패하고 넘기게 되더라구요. 그럴 때마다 언니는 대신 병을 열며 "자기가 다 돌려놓은 건데 내가 마무리만 한 거야"라고 저를 북돋아주곤 합니다. 오늘 구청에 가며 왠지 저 생각이 났습니다. 굳게 닫혀 있는 병을 한 명씩 돌려도 보고, 뜨거운 물도 붓고, 그 모습을 보고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시도하다 보면, 제가 열지 못하더라도 결국에 병은 열리게 되어 있지 않을까요? 분명 그럴 것입니다.(p.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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