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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빼기의 기술 / 김하나

읽은 책 문장채집 no.98

2021년. 카카오프로젝트 100. [문장채집] 100일 간 진행합니다.
1) 새로운 책이 아닌, 읽은 책 중에서 한 권을 뽑습니다.
2) 밑줄이나 모서리를 접은 부분을 중심을 읽고, 그 대목을 채집합니다.
3) 1일 / 읽은 책 1권 / 1개의 문장이 목표입니다(만 하다보면 조금은 바뀔 수 있겠죠).


어제 황선우 작가의 책을 했으니, 오늘은 김하나 작가의 책으로. 올해 읽은 에세이 중에서 단연 기억에 남는 책이다. 힘 빼기의 기술을 익혔다기 보다, 삶에 대한 태도를 생각하게 되었다(황선우 작가의 책은 일에 대한 태도를 생각하게 했다). 카피라이터 출신이다 보니, 비유의 솜씨도 좋고 글이 가진 가볍고도 무거운 느낌이 좋았다(적당한 무게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힘 빼기의 기술은 삶에 적당한 힘이 필요하단 역설이지 않을까 싶다). 힘 빼기의 기술로 들어가 보자.


1. 계속 힘을 내려다간 결국 가라앉는다. 힘이 부치는 사람에겐 힘내라고 하기보단 손을 내밀어 나의 힘을 보태고 우리의 힘을 합칠 일이다.(p. 7)


2. 앞으로의 인생은 또 예측 못 한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무슨 일이 생겨 이 친구들과 멀어지게 될지도 모르지. 하지만 우리에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인생은 누군가와 조금씩 기대어 살 때 더 살 만해 진다는 것.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p. 24)


3. 충고를 안 해야 돼. 입이 근질근질해 죽겠어도 충고를 안 해 야 되는 거라예. 그런데 살다가 아, 이거는 내가 저 사람을 위해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은 꼭 한 번은 얘기를 해줘야 되겠다...싶을 때도 충고를 안 해야 돼요.(30년 넘게 같이 살면서 부부싸움을 한 번도 안한 분의 이야기)(p. 33)


4. 그 깃발(장수풍뎅이연구회)의 위력은 일파만파로 이어졌다. 전국양배추취식연합회, 국경없는어항회, 회살련(화분안죽이기실천시민연합), 민주묘총, 범야옹연대, 범깡총연대, 전견련, 전국집순이연합 등. 전국집순이연합 회원들은 수면 바지를 입고 광장에 나왔다.. 장수풍뎅이연구회가 지닌 힘의 비밀은 뭘까? 그것은 싱거운 맛 정도가 아닐까. 그들은 재미조차 그리 열심히 추구하지 않는 것이다. (p. 42-43)


5. 사랑은 인간에게 닥치는 가장 근사한 이벤트이자 동시에 가장 크게 배울 수 있는 기회다. '사랑은 개체에서 전체를 발견하는 것'이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한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해본 자만이 인류를, 나아가서는 전 존재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라고 여기는 바로 그 마음이 결국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을 불러오는 신비라니.(p. 52)


6. 지치지 않는 구애자인 나는 상처투성이인 손을 또 조심스럽게 내밀어 하쿠를 쓰다듬어보려 했다... 하쿠의 무게감은 가슴이 아플 정도로 미미했다. 그 작디작은 존재가 내게 몸을 대고 체온을 나눠주고 있다. 나는 평생토록 그때의 두근거림을 잊지 못할 것이다. 한 마리의 고양이가 한 사람의 세계를 얼마나 변화시키는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내 집은 살아 움직이는 아름다운 액자를 갖게 되었고, 그 액자는 바쁜 세상 속에서도 아랑곳 않는 속도를 유지했다. 고양이는 인간의 시간을 지배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p. 69-70)


7. 그 청년의 기품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가장 기품 없을 곳에서 스스로 길러낸 것이어서 더욱 눈부셨다.. 무슨 일을 하든, 어떤 처지에서든, 나도 나의 일에 눈이 아닌 정신을 다하여 기품을 기르는 생활을 하고 싶다.(p. 74)


9. 에밀리 디킨스의 시(p. 90)

지상에서 천국을 찾지 못한 자는

하늘에서도 천국을 찾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어디로 가든 간에,

천사들이 우리 옆집을 빌리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천사들에게, 이렇게만 말하면 되는 것이다.

유 고, 위 해브 어 카.


10. 영화<리빙하바나>. 트럼펫이 든 가죽케이스 달랑 하나 들고 망명을 한다. 한 사람의 직업적 인생이 가죽 케이스 안에 가뿐하게 다 들어가는 데에 큰 감명을 받았다. 나의 직업적 정체성을 담을 만한 도구는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p. 96)


11. 하늘 같은 후배. 내게는 하늘처럼 까마득하게 느껴지고 존경심이 절로 샘솟게 하는 선배가 있지만 또한 그렇게 느껴지는 후배도 있다. 나이는 가만히 있어도 먹게 된다. 나이가 많다는 사실은 존경심과 무관하다. 물론 나이가 많은 사람을 존중할 필요는 있다. 존경과 존중은 다르다. 


흔히 가르침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른다고 한다. 많은 사람은 높고 낮음을 나이의 많고 적음으로 해석한다. 세상은 늘 변하고 요즘은 그 속도가 더욱 빠르다. 어째서 나이 많은 사람이 항상 뭘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 걸까? 배움을 청하지 않았는데도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뭔가를 가르치려 들 때, 꼰대가 탄생한다. 세상에는 하늘 같은 선배만큼이나 하늘 같은 후배도 많은 법이다. 진실로 배우려는 사람은 후배뿐 아니라 말 못하는 아기나 반려동물의 행동에서도 깨달음을 얻는다. 배움은 지금도 온갖 방향으로 흐른다.(p. 102-105)


12. 생텍쥐베리 "조난당한 것은 파리에 있는 그들이다"(P. 158)


13. 줄리언 반스 <플로베르의 앵무새>에서 그물을 2가지 방법으로 정의한다.

1) 물고기를 잡기 위하여 실 따위를 엮어 만든 기구

2) 끈으로 엮은 구멍들의 집합체


전기 작가들은 1)을 사용해 한 인물의 실체를 건져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2)의 구멍들을 통해 대부분의 진실을 흘려버리고 자신이 취하고 싶은 것만 그물코 위에 남겨두는 것이다. 진실을 반영한다는 건 실로 이와 같다. 수전 손택을 인용하자면 '사진을 찍는 것은 구도를 잡는 것이며, 구도를 잡는 것은 뭔가를 배제하는 것이다'(p. 194-195)


14. 한때 그리스가 우연이 겹치고 겹쳐서 유럽 리그 우승을 한 적이 있는데, 정말 웃긴 일이라고 했다. 기록이나 타이틀은 객관적 사실이지만 그게 항상 진실을 정확히 반영하는 게 아니다... 증거 수집에만 열을 올리는 여행객들이 많다. 모두가 춤추는 공연에서 dslr로 우직하게 무대를 찍고 있는 사람들. 그는 해상도 높은 사진을 증거물로 제시하며 공연이 참 신나고 좋았다고 말하겠지. 미쳐서 춤추라고 하는 공연 속에 발 한 번 까딱이지 않았음에도. 그건 진실일까? 나라면, 어떤 풍광에 어떤 음악에 어떤 감정에 푸욱 뛰어들었다 나와 아무런 그럴듯한 증거물도 없이 그냥 맥주 한 잔 놓고 침을 튀기며 말하겠다. 그 느낌이 어땠는지, 그 경험이 나를 어떻게 바꾸어놓았는지.. 사진은 인터넷에 수천장씩 나오잖아. 내가 빠져 허우적대는 이 바닷물은 아무래도 전할 길이 없다. 당신이 여기로 와 나와 함께 빠지는 수밖에는(p. 196 - 198)


15. 여행에서 싫은 점 중 하나는 생활의 디테일이 너무 떨어진다는 것. 일상에서 나는 전문가다. 아주 디테일한 것까지 내가 원하는 대로 내 삶을 조직할 수 있다... 당신은 점점 '전문화 과정'을 거쳐, 당신만의 지도를 갖게된다. 당신의 취향과 감정의 축척에 따라 왜곡된 지도를. 재조립된 도시나 마을을 갖게 된다. 당신이 전문가가 되면 될수록 왜곡은 더 커진다... 예쁜 화분을 발견해도 사와 키울 수 없는, 한낱 여행자인 것이다. 길눈이 어두운.(p. 206-209)


16. 마추픽추의 모든 것엔 목적이 있고 아이디어가 있고 노동이 있다. 석양과 눈송이엔 없는 것들이다. 또한 마추픽추엔 석양이나 눈손이와는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그것은 인간이 손으로 하나하나 쌓아 올린 것이다. .. 우리 인간들의 이야기다. 덧없고 낭만적이며, 그래서 눈물겨운. 나는 아직은, 신이 만든 것보다 인간이 만든 것들을 더 보고 싶다.(p. 217)


17. 이구아수는 신이 만든 것도, 인간이 만든 것도 아니에요. 그건 악마가 만든 것이죠. 악마는 언제나 더 쿨해요.(p. 232)


18. 신은 엿새 동안 세상을 만드셨다. 그리고 일곱 번째 날은 리우에 전념하셨다...란 말이 있다... 이 도시는 전체적으로 이지고잉 그 자체. 잘 입는 것보다 잘 벗는 것이 중요하므로 몸만들기에 열심이다. 온통 달리는 사람들이 넘쳐난다.(p. 238, 240)


19. 너를 보고는 도저히 그냥 갈 수가 없었어. 그건 나도, 먼 곳에 혼자 서 있어보았기 때문이야.(p.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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