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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쪽같은 내 새끼'가 자기 생각을 잘 표현하지 못할때

어쩌다글쓰기-글쓰는한량

‘국민 육아 멘토’라 불러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오은영 박사가 진행하는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프로그램을 애청한다. 이제는 ‘밥만 잘 주면 되는 양육’ 단계의 ‘육아’를 하고 있는 시기지만 자식의 나이를 불문하고, 아이의 심리를 이해하고, 양육자의 마음을 헤아리는데 이만큼 좋은 프로그램이 또 있을까 싶다.
 
한번은 이런 사연자가 방송됐다. 갑작스러운 투병 후 세상을 떠난 조카의 아이를 키우는 고모할머니의 사연이다. 금쪽이(<금쪽같은 내 새끼>에서는 아이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호명하지 않는다. 모두 금쪽이라 통칭한다. 제작진의 아이를 향한 따뜻한 배려심이 돋보인다)는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며 진한 우정을 나누는 멋진 친구들도 가진 아이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큰 문제가 없는 아이지만 자신의 생각을 묻는 질문 앞에서는 말보다는 ‘소리 없이 우는’ 방식을 택해 엄마이자 고모할머니의 가슴을 매번 아프게 했다. 고모할머니이자 엄마는 자신이 혹시 ‘친엄마’가 아니라서 아이가 속 깊은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자세히 11년간의 금쪽이의 삶을 돌아보았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투병생활, 그 와중에 자신을 떠난 엄마,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 고모할머니를 엄마로 받아들이는 과정, 이 모든 것은 11살 아이가 겪고 감내하기에는 힘든 과정이었다. 아이는 고작 11살이다. 또래의 아이들이 부모에게 수많은 어리광과 말도 안 되는 고집을 부릴 그런 나이다. 속마음 인터뷰에서 아이는 감정과 자신의 생각을 묻는 질문에 왜 유독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는지 그 이유를 물었다. 아이는 이 질문에 대해서도 말하기 어려워해 인형을 이용해서 인터뷰를 이어갔다. (여기서 또 한 번 <금쪽같은 내 새끼>의 제작진의 예쁜 배려가 돋보인다) 아이는 두 가지 인형으로 자신의 감정과 말하기 힘든 생각들을 조용히 털어놓았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이다. 아이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서툴 뿐만 아니라 그 감정의 실체조차 아직은 잘 모르는 나이다. 가벼운 기쁨도, 조금 어색한 자신의 마음 상태도 말로 표현하는 것이 힘겨울 고작 11살 아이다.


 프로그램을 보는 내내 울었다. 남의 집 자식 이야기에 목 놓아 울기까지 하다니 조금은 민망하지만 어린아이가 감당해야 했을, 표현할 수 없는, 숱한 감정과 헝클어진 생각이 보이는 듯해서 그냥 나도 울어버렸다.


요즘 아이들은 극과 극이다. 양극화라는 말이 아이들의 표현방식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자기표현이 강한 아이들은 거침없이 그때그때 자기감정과 생각을 그야말로 쏟아낸다. 반면  자기표현에 한없이 주저하는 금쪽이 같은 아이들도 상당히 많다. 오히려 금쪽이는 울음으로 그것을 표현했지만 그마저도 힘들어하는 아이들도 아주 많다.
 
 자기의 생각과 감정을 잘 표현하는 것은 시대를 불문하고 인류의 과제 중 하나다.
 
 얼마 전 30년 차 초등교사와 인터뷰를 했다.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요즘 아이들 중에서 이전 초등학생들에 비해 서로 소통하는 방식을 잘 몰라 크고 작은 어려움이 학교생활에서 많이 발생한다고 했다. 그래서 글쓰기 교육을 학교 교육과정에 상당 부분 채택하고 있다는 말도 전했다. 글쓰기는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최고의 도구이다. 말은 한번 뱉어버리면 주워 담을 수 없지만 글은 수정과 퇴고라는 과정을 거치며 모호했던 생각도 또렷해지고 불분명했던 자신의 마음 상태도 더욱더 분명하게 만들 수 있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금쪽이 엄마와 금쪽이는 글을 쓰고 말을 하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만한 단어를 찾고 이를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오은영 박사에게 설루션으로 받고, 이를 잘 실천해 나가는 과정이 프로그램 말미에 방영되었다.


감정의 표현도 이제는 배워야 하는 시대다. 이전 시대보다 남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졌다. 일부러 히키코모리가 되고 싶지 않아도 시대와 상황이 점점 인간을 외부로부터 차단시키고 있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잘 표현하는 것은 자신 스스로 돌보는 일이기도 하다. 하루 한 줄이라도 나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면서 나의 감정에 집중해보는 것, 그것부터 하나하나 실천해나가면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고 특히 우리의 아이들에게 이런 작업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또 한 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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