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표현은 소통하는 삶을 만듭니다

침묵하지 않고 나를 표현하는 '자기 표현력'


경남 함양에 사시는 올해 나이 여든네 살의 김춘택 할머니는 초등학교 1학년입니다. 동화나 소설에서만 나올 법한 이 이야기는 실제 이야기입니다.


손주뻘도 한참 지난 어린아이들과 할머니는 초등학교 동창인 셈입니다. 늦은 나이에 학교까지 다니면서 배우는 이유를 묻는 인터뷰 질문에 김춘택 할머니는 비록 나이는 많지만 학교 땅이라도 밟아보고 싶었고, 손주들에게 편지라도 써보고 싶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즘에는 전화로 수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영상통화가 개발되고 나서는 멀리 떨어져서도 얼굴을 보면 서 서로의 감정과 생각을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김춘택 할머니는 손주들에게 하필이면 왜 편지, 즉 ‘글’로 표현하고 싶으셨던 걸까요?



어느 드라마에서 평생 글을 모르고 지내온 엄마와 아들이 오랜 오해를 풀며 화해하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아들은 의붓형에게 맞고 사는 자신을 단 한 번도 위로해주지 않았던 어머니를 원망했습니다. 일부러 사람들이 많은 시장에서 엄마를 아는 척도 하지 않았고, ‘엄마’라고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주변에서는 이런 아들을 질책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말기 암으로 생의 마지막 순간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두 사람은 마침내 한 공간에 나란히 앉아 지나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한참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어가던 중 아들은 엄마에게 평소 써보고 싶었던 단어들을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글을 모르는 엄마의 마음을 아들이 읽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엄마는 써보고 싶었던 아들의 이름과 죽은 가족의 이름, 살가운 이웃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렀고 아들은 그 이름들을 꽁꽁 언 유리창에 호호 김을 불어가며 적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은 평생의 응어리를 풀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 엄청난 필력으로 대단한 글을 쓰거나, 듣기만 해도 눈물이 쏟아지는 감정을 표현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평생 글을 모르던 엄마에게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대신 써주었을 뿐입니다. 단순한 몇 글자가 두 사람 사이를 단단하게 가로막고 있던 소통과 이해의 장벽을 허물었습니다.

자음과 모음이 만나 ‘글자’가 되고, 그 글자들이 모여 단어가 됩니다. 단어들이 만나 문장이 되는 순간, 그것은 새로운 ‘의미’로 바뀌게 됩니다. ‘o’ 네 개와 몇몇 개의 자음과 모음이 만났을 뿐인데 ‘이윤영’이라는 이름이 되는 순간, 이 단어는 한 사람을 만들고 한 사람을 새기게 합니다. 사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몇 개의 자모가 만나는 순간, 그 소리는 ‘나에게 의미 있는’ 소리가 됩니다. 사람들은 그 말과 글을 통해 만나고 소통합니다. 그리고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알아가게 됩니다. 아마 김춘택 할머니와 드라마 속 ‘엄마’ 역시 그 순간의 짜릿함을 위해 글을 배우고 싶어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타인과 자신의 감정을 말과 글로 소통하는 그 순간의 경험 때문에 말입니다. 그런 소통이 이루어질 때가 인간이 살아있음을 진정으로 느끼게 되는 순간입니다.



이윤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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