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무라카미 하루키|문학사상|
유튜브에서 전지현 씨의 인터뷰 영상을 보았다.
하루 루틴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아침엔 무조건 운동을 한다. 운동만 하면 아무거나 해도 된다. 그 정도로 매일 운동을 하고 시작한다.'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었다.
충격이었다. 이미 몸매, 외모, 인기를 충분히 가졌다 생각한 배우였기에 어느 정도 자만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여겼다. 그런 그녀가 매일 아침 운동을 한다니...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하지 않고, 하루하루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태도 덕분에 오랜 기간 사랑받는 배우가 된 게 아닐까 싶었다.
작가가 되고 싶단 내 이야기에 '뭘 쓰는데?', '어디 올린 게 있어?'라고 묻는 언니를 만났다. '쓴 게 있긴 한데...' 어물거리며 제대로 답변 못하는 나에게 언니는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지, 어떻게 쓰고 싶은지, 왜 쓰고 싶은지를 물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작가가 되고 싶단 말은 한 번씩 했지만 그렇게까지 구체적으로 물어본 사람은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당혹스러움에 얼굴이 일그러졌을 것이다.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에 자신 없어하는 걸 알았을 것이다. 이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언니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웹소설을 쓰고 싶다고. 아주 야한 웹소설을. 웹소설로 또 다른 파이프라인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다. 혼자 쓰는 건 어려워 문화센터 수업을 알아보고 있다고... 나에게 자세히 물어봤던 건 글을 쓸 사람으로서의 호기심이었음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언니와의 만남은 큰 인상을 남겼다. 일단 언니처럼 함께 글을 쓸 수 있는 모임을 찾기 시작했다. 이왕이면 진행하시는 분이 쓰고 싶은 글의 출판 경력이 있으면 좋다는 언니의 의견을 반영했다. 동네 문화센터 강의를 찾았지만 글쓰기 수업은 없었다. 글쓰기 수업이 있는 시내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이래서 다들 서울로 이사 가려고 하는 거구나. 새삼스레 설움이 북받쳤다.
뜻이 있으면 통한다고, 좌절도 잠시.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도서 리뷰 쓰기 강좌를 발견했다. 멀지 않은 거리였고, 아이들은 학교에 있을 오전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진행하시는 분이 책을 몇십 권이나 출판하신 분이었다. 원하던 소설 쓰기나 에세이 쓰기는 아니었지만 이것저것 따질 형편이 아니었다. 당장 수강신청을 했다.
블로그 활동으로 도서 협찬을 받아본 적도 있던 터라 도서 리뷰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신감을 넘어 자만심으로 발전한 나의 생각은 첫 수업부터 무너져 내렸다. 과연 나는 글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긴 했던 걸까? 문학과 비문학을 서평과 리뷰의 차이를 알고 있긴 했었나? 무엇보다 읽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나? 혼자 만족하기 위한 일기 쓰기나 독후감은 아니었었나?
근거 없이 하늘을 찔렀던 자만심을 내려놓으니 현재 내 글의 위치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책의 리뷰를 쓸 때 지치고 힘들게 썼는데도 쓴 것 같지 않았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생각 없이 줄거리만 요약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첫 수업 후 다 함께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을 유리 작가의 시선으로 옮긴 그림책 '대추 한 알' 리뷰를 썼다. 짧은 시와 그림을 삼십 번 넘게 보고, 읽고, 또 봤다. 거기서 알게 됐다. 나는 내 생각을 쓰는 에세이 형식의 리뷰를 써야 되는구나. 책을 가지고 와서 내 생각을 적을 때 기분이 좋았다. 쓰고 난 뒤 뿌듯함도 느껴졌다. 이렇게 쓰다 보면 긴 이야기가 담긴 소설도 쓸 수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선 매일 써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질보단 양을 늘리는 게 우선이었다.
에세이를 쓰겠다고 생각한 뒤 제일 처음 생각난 책은 역시나 문화강좌를 추천한 언니가 얘기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천재적인 소설가의 에세이니 앞으로 내가 쓸 에세이의 방향도 알려주지 않을까? 란 생각이 들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생각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경우 소설이 먼저였다. bar를 운영하며 남는 시간 짬짬이 쓴 소설로 이미 상을 받은 재능 있는 작가였다. 나의 경우 상은커녕 제대로 완성시킨 글도 없었다. 무엇보다 한 가지를 꾸준히 해 본 적이 없었다. 성격 자체가 꾸준히 오래 하는 것보단 빨리 시작하고 빨리 포기하는 식이었다.
너무나 다른 상황이지만 이왕 읽기 시작한 책이라 계속 읽어 나갔다. 그리고, 전지현 씨와 동일한 생각을 가진 문장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평소 하루에 3시간이나 4시간 아침나절에 집중해서 일을 한다. 책상에 앉아서 내가 쓰고 있는 일에만 의식을 집중한다. 다른 일은 아무것도 생각하지도, 보지도 않는다.
이 부분을 읽으며 '실패하는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성공하는 이유는 모두 같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탑 여배우의 아침은 운동으로 시작된다. 베스트셀러 소설가의 아침은 글쓰기로 시작한다.
나의 아침을 생각해 본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평일은 1시간쯤 전에 일어나 일기를 쓰고, 간단히 할 일을 정리한 뒤 아침을 만든다. 남편이 쉬는 주말은 밤늦게까지 영화를 본 뒤 늦잠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금보다 귀한 아침 시간을 왜 이렇게 보냈을까?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무얼 이루고 싶은지 생각한 뒤 오늘 아침엔 노트를 펼쳐 글을 썼다. 아이들 방학 후 기상 시간이 늦어진 터라 일찍 일어난 나를 보며 아들이 '엄마,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라며 놀란다. 대답대신 미소를 지었다.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 내게 제일 중요한 건 역시나 쓰기다. 이제부턴 나도 매일 아침마다 쓰겠다고 다짐해 본다. 뜻이 있으면 통한다고 이렇게 쓰다 보면 길이 생길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