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틈새』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이금이 (지은이)|사계절|2025
유튜브에서 김우빈과 신민아의 결혼소식을 들었다. 연예인에 크게 관심 없는터라 10년이나 연애를 했다는데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둘의 결혼 소식보다 놀라웠던 건 결혼식 날 '3억 원을 기부'했다는 말이었다.
일각에서는 돈을 많이 버는 연예인이나 부자들이 세금내기 싫어서 기부를 한다는 말도 있지만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세금 때문에 기부를 할 수도 있겠지만 기부를 해보면 안다. 주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과 기쁨인지. 그런 의미에서 선남선녀 결혼 소식과 함께 전해진 기부 소식이 훈훈했다. 얼굴만큼 마음씨도 좋은 커플이다.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기부 소식을 들으니 최근 읽은 이금이 작가의 신작 『슬픔의 틈새』의 한 대목이 생각났다.
나중에 돈 주고도 쌀을 구하기 어렵게 됐을 때 싸게 판 걸 아까워하는 단옥에게 덕춘이 말했다.
"니 오라비 굶을 때도 누가 그렇게 도와주겠지."
이금이 작가의 9년 만의 신작 『슬픔의 틈새』는 역사적 사건 속(일제강점기, 강제 이주) 고향을 떠나 타국에 살면서 겪는 여성들의 삶을 재조명한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의 완결 편이다.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탓에 남자에 대한 순종 의식이 남아있는 나로서는 소설 속 단옥의 선택과 삶이 놀라웠다. 그리고 단옥의 어머니 '덕춘'의 모습에 진짜 놀라게 되었다. 글을 모를 뿐만 아니라 타국에서 살아가면서도 일어, 러시아어를 말할 줄 모르는 덕춘. 남편과 함께 살기 위해 사할린으로 떠났지만 그녀는 끝내 일어를 배우지 못했다.
남편 밑에서 모국어인 한국어만 고집하며 일자무식 똥고집일 것 같았던 덕춘. 남편이 강제 징용으로 또다시 다른 탄광촌으로 끌려갔을 때 단옥처럼 나 또한 원래 살던 탄광촌 집에 남아 남편을 기다릴 줄 알았다.
이런 생각을 보기 좋게 비웃듯 덕춘은 가만히 앉아 남편을 기다리는 대신 탄광촌을 떠나 세 아이를 잘 키워낸다. 뱃속에 있는 새 식구까지 포함해.
덕춘은 생활력만 강한 게 아니었다. 지혜로웠고, 타인에게 너그러웠다. 배급받은 식량에서 나중에 올 가족을 위해 쌀을 한 됫박씩 빼놨었는데, 탄광촌을 떠날 때 돈을 마련하게 위해 그 쌀들을 팔았다. 시세의 반값으로. 그마저도 못 받기도 했다. 못 받은 돈을 아까워하는 단옥에게 함께하지 못하는 다른 가족을 생각하며 자신이 그랬듯 어려워하는 가족을 누군가가 도와줄 것이라 생각했다.
아이 때문에 기부를 시작했다. 아이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을 때 아쿠아리움에 놀러 갔다. 물고기 구경에 신나 하던 아이가 팔찌를 갖고 싶다며 내 손을 끌었다. 유니세프에서 아이들에게 미아방지팔찌를 만들어주고 있었다. 이미 미아방지 목걸이가 있는 상태라 그냥 가자고 했지만 아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첫 기부가 시작됐다.
삶이 녹록하진 않지만, 매월 적은 금액이라도 기부를 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먹고살만한 것도 다른 누군가의 도움 때문이었으니까.'라는 생각이었다. 책을 읽으며 알게 됐다. 아이 때문이었다는 것을. 꽃길만 걸었으면 좋겠지만 세상은 한 치 앞을 모르는 거니까. 아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내가 행한 선한 일들로 도움을 받게 되면 좋겠다.
단옥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었던 건 덕춘의 선한 행위 때문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