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학교가 마음에 들었다』|최현희|위고|2025-10-20
'선생님 무서워. 학교 가기 싫어.'
착하고 순둥 하게만 생각한 큰 아이가 울면서 말했다.
아침 식사로 햄을 볶고 있던 나는 손을 멈춘 채 그대로 얼어버렸다.
학기 초 상담 때 마주한 담임 선생님의 단호하고 낮은 목소리가 떠올랐다.
'거봐, 역시 좀 차가운 분이었어.'
하이톡으로 조심스럽게 메시지를 남겼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이가 힘들어한다고.
돌아온 건 건조한 답변뿐이었다.
"아이가 왜 학교 가기 싫다고 하는지 구체적으로 물어봐 주세요."
답장을 읽으며 마음이 불편했다.
'무슨 일인 줄 알았으면 연락을 안 했겠지. 너무 안일하게 대처하는 거 아니야?'
솔직히 말하면, 나는 교사라는 직업을 가볍게 여겼다.
점심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5시간,
고작 20명 남짓한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
아이 둘만 데리고도 전쟁터가 되는 집안 상황은 잊은 채
교사라는 직업은 '꿀 빠는 직장'이라고
'학부모'라는 입장에서 선생님을 쉽게 생각했다.
친구가 선물로 보내준 책을 펼쳤다.
『오늘의 학교가 마음에 들었다』
선생님이 직접 아이들과 함께하며 써 내려간 기록이었다.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감정과 보이지 않는 고민, 아이들과 함께 겪어내는 시간들이 담겨있었다.
20명 남짓한 아이들 중 부적응 아이가 있을 거라는 생각, 단 한 명의 아이가 얼마나 학급 분위기를 흐릴 수 있는지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다. 책을 읽으며 교사를 스승이 아닌 보호자로 본 나의 오만한 시선을 반성했다.
그중 한 문장이 오래 남았다.
우리 삶을 한 가지 기준으로 평가할 수 없듯, 수업이란 것도 잘함과 못함으로 나누는 기준이 한 가지일 수 없다.(중략)
교사가 학생들과 문제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당장 해결하지는 못해도 문제를 함께 겪어내는 시간 자체가 교육이다. 삶도 교육도 과정이다. 우리는 모두 과정 중에 있다. (p.299)
나는 극단적으로 모든 상황을 '잘함'과 '못함'으로 나누고 있었다.
교사도 하나의 삶의 과정을 살아가는 사람인데,
'선생님이니깐'이란 잣대로 완성된 존재여야 된다고 생각했다.
교사도 삶이라는 과정 속에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아이가 힘들어하는 이유를 자세히 물어보지 않았던 것도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 단호한 교사의 잘못으로 정리해야
내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었다.
"왜 학교에 가기 싫은 걸까?"
무조건 모르겠다 말하던 아이가 늘어난 과목과 선생님이 무섭다는 말을 했다. 새 학년이 된 아이는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느라 벅찼던 거였다. 적응하느라 숨이 찼던 거였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속도에 맞춰 묵묵히 애쓰고 계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수십 명의 아이를 안전하고 건강하게 지키기 위해
때로는 단호하고,
때로는 냉정하게
무서운 선생님이 된 거였다.
삶을 한 가지 기준으로 평가할 수 없듯
선생님도 한 가지 기준으로 평가할 수 없다.
그런데도 나는
'좋은' 선생님과 '나쁜' 선생님이란 기준에
선생님을 평가하고 있었다.
아이는 여전히 학교 가기 싫어하고, 힘들다고 투덜거린다.
나는 선생님을 원망하는 대신 '신뢰'와 '감사'를 보내기로 했다.
누군가를 평가하는 눈으로 세상을 보면
끝없이 불만이 생긴다.
하지만 누군가를 믿는 눈으로 바라보면
같은 상황도 다르게 보인다.
그 안에 담긴 노력과 과정이 보이기 시작한다.
삶은 누군가에게 증명하는 평가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시간이다.
아이도,
선생님도,
그리고 나도.
각자의 자리에서 잘 살아가기 위해 애쓰고 있다.
삶을 겪어나가는 과정 중에 있는 사람으로서
나는 조금 멀리 떨어져 바라보기로 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잘 살아보려고 애쓰는 과정 중에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