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톨스토이 지음, 진형준 옮김|살림|2020
“당신은 사랑해서 사는가, 아니면 대안이 없어서 사는가?”
150년 전 러시아의 귀족 오블론스키는 아내를 두고 바람을 피웠다. 그의 아내 돌리는 일곱 아이의 엄마였다. 죽은 두 아이를 포함해 몸이 망가질 만큼 아이를 낳았고, 집안과 아이들에 묶여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았다.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된 순간 돌리는 분노 한다. 하지만 끝내 짐을 싸지 못한다. 그녀의 발목을 잡은 것은 배신감의 크기가 아니라 다섯 아이를 데리고 혼자 살아남아야 할 현실이었다.
우리는 톨스토이를 위대한 문장가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 그는 훨씬 더 잔인한 작가다. 그는 사랑 이야기를 쓴 것이 아니라 사랑 없이도 가정이 유지되는 구조를 폭로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어떻게 저런 대우를 받고도 참고 살지?”
하지만 어느 밤 도어록 번호를 누르고 집에 들어오는 순간 질문은 달라진다. 거실 바닥에 흩어진 아이들 장난감, 다음 달 카드값, 그리고 내가 사라졌을 때 무너질 생활들과 마주하는 순간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나는 정말 이 문을 나갈 수 있을까.”
사랑은 유통기한이 지나면 증발한다. 하지만 생활은 끈적하게 발바닥에 달라붙는다. 그래서 150년 전 돌리의 절망은 지금도 아파트 거실에서 반복된다. 고전이 무서운 이유는 낡아서가 아니다. 인간의 비겁함과 한계를
너무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나는 컴퓨터를 켠다.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길 바라지 않는다. 다만 외면하고 싶었던
당신 자신의 얼굴을 잠깐이라도 마주하게 하는 서늘한 한 문장이 되기를 바란다.
[The ROSA의 인사이트]
우리는 사랑이 식어서 헤어지는 게 아니라, 생활을 감당할 용기가 없어서 머무른다. 비겁함이 아니라 그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오늘 당신이 문을 나서지 못했다면, 그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 당신이 지켜온 '생활'의 무게 때문이다.
� The ROSA의 [고전에서 만난 나의 진짜 얼굴] 시리즈는 매주 화요일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