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진의 일은 불안하리만큼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가 말한 대로 일이 진행되고
거액의 투자금이 통장에 입금이 되었다.
우진은 자신을 이렇게 만들어 준,
이 길로 안내해 준 사람들에게 감사할 뿐이었다.
처음으로 누군가가 자신을 인정해 준다고 느꼈다.
회사는 빠르게 커져갔고
출장도 잦아지고
영업으로 만나야 할 사람들도 많아졌다.
누나는 걱정스러웠지만
우진이 싫어하는 것을 알기에
더 이상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우진역시 언제부터인가 누나와 통화하기가 싫어졌다.
너만 잘되면 된다는 격려의 말도 싫었고
건강 잘 챙기고 길 조심해야 한다는
아직도 어린애 취급하는 걱정의 목소리도 싫었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화면 속 '누나'의 전화번호만 뚫어지게 쳐다보다
다시 폰을 닫아 자켓 안주머니에 넣었다.
역시 우진의 꿈은 오래가지 않았다.
자신을 인정해 주던 그 사람들이
갑자기 연락이 되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확인해 본 회사 통장에는
잔고가 없었다.
그 많은 돈을 인출하여 도망간 것이다.
결국 이렇게 또 버려지는구나..
고소장을 받아 든 우진은
오랜만에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나, 우리 찜질방 갈까?"
우진은 목욕을 하고 나와
찜질방 큰 바닥에 앉아 누나와 계란을 까먹고
시원한 식혜 한 잔을 마셨다.
"누나.. 나 일이 잘못된 것 같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내일 경찰서에 가게 되면 바로 들어가게 될 것 같아. 금액이 커서 금방 나올 것 같진 않아. 변호사는 국선변호사를 선임할 거야.."
누나는 가슴을 내리쳤다.
명치에 턱 하고 걸려있는 것이
손으로 아무리 내리쳐도 내려가지를 않았다.
염려하던 것이 결국 이렇게 되어버리는 구나..
"우진아.. 우진아.. 내가 어떻게 해야 하니.."
누나는 자신이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다는 사실에
동생을 보며 눈물만 흘렸다.
우진이 공무원을 그만두고
사업을 한답시고 밖으로 나돌았을 때
그를 찾아다니며 말리던 아버지는
급성 간경화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경미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전화기 너머 엄마의 차가운 목소리는
절대 잊을 수가 없었다.
미안하다.. 갈 수 없다..
그리고 돈 오백만 원이 경미의 계좌로 입금이 되었다.
친척들도 부르지 않고 지인들도 없었다.
그렇게 아버지의 장례를 서둘러 끝내버렸다.
아이들 둘은 허탈하게 화장터 대기실에 기대어 앉았다.
참 세상은.. 이렇게도 우리에게만 잔인한 것일까..
아마도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우진이 어떻게든
보란 듯이 살아보고 싶었던 마음이 들었던 때가.
우진은 2년을 구형받고 법정구속이 되었다.
구치소의 차가운 공기는 왠지 익숙했다.
어린 시절 혼자 남겨졌던 차가운 동굴 같던 그 공기.
그를 찾아주는 사람은 누나 밖에 없는 이 상황.
슬프도록 익숙한 환경이었다.
누나가 면회를 왔다.
창살 너머로 눈물만 흘렸다.
하얗게 새치가 올라온 동생의 머리카락을 보고
더 크게 울음을 터트리고
유리벽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우진아.."
누나의 눈물 한 방울 한 방울들이
우진의 살갗 밑으로 파고드는 것 같았다.
통증이었다.
창살너머로 보이는 누나의 몸부림은
우진에게는 손톱밑이 찢기는 듯한 통증이었다.
미안해.. 미안해 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