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보로빵 가루처럼 잘게 부서지는 기억들에 대하여
양치를 하거나 거울을 보다, 문득 좋은 문장이 떠오르면 당장 잡고 있는 칫솔이나 거슬리는 앞머리 모양이 신경 쓰여 지나가는 문장에 소홀하게 된다. '이것까지 마무리하고 조금 있다가 메모해야지, 진짜 괜찮은 생각이다!' 하는 순간부터 내 기억은 막 집어 든 소보로처럼 가루가 되어 흩어진다.
1분 안에 얼마나 많은 생각들을 떠올릴 수 있는지 세어본 적은 없지만 나는 1분 만에 자주 화장실 타일 무늬 생각에서 출발해 우주의 은하계까지 구경하고 돌아온다.
아이디어는 두 손에 가득 모래를 담아 올렸을 때처럼 충만하게 나에게 담긴다. 그러나 곧바로 폐쇄된 어딘가에 옮겨 담지 않고 섣부르게 다른 짓을 시도하는 순간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가 더 이상 남아있지 않게 되어버린다. 그걸 잘 알면서도 손에 잡힌 칫솔이나 구부러진 앞머리 따위가 우선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멀리서 봤을 때 인생에서 정답인 것을 골라내는 일은 어렵지 않다.
객관적으로 좋은 습관, 가치 있는 행동, 미래의 성공을 위한 오늘 하루의 루틴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유달리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지금 현재의 내가 다른 것에 집중하느라 보다 멋지고 확실한 우선순위를 까맣게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알면서 왜 잊냐고 누가 나무랄 수 있을까! 우리 모두 다 같이 현재를 그렇게 살고 있는데.
하루하루를 기록하며 사는 삶은 옳다. 꾸준히 그러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일기 쓰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어릴 때 누군가 읽고 검사까지 했던 일기를, 하물며 나 혼자 기록하기 위해 쓴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기에 대부분의 날은 결심을 잊는다. 올해 들어 5년짜리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했다. 김신지 작가의 [기록하기로 했습니다]를 읽은 후 시작한 루틴이다. 일기를 쓰기 위해 책상에 앉는 것조차 귀찮을까 봐 아예 침대 머리맡에 두었는데 평소보다 조금만 더 졸리거나 피곤하면 금세 일기장의 존재에 대해 잊게 된다. 하지만 내년에도 이 일기장을 붙잡고 있을 나를 생각하며 이틀, 삼일 치 일기를 꾸역꾸역 밀려 쓴다. 내년의 내가 과거의 일기를 읽을 때 빈칸보다는 뭐라도 적혀있는 것이 재미날 것 같아서.
밀린 3일 치 일기를 몰아서 채워 적던 날, 날짜를 하루씩 당겨 쓴 걸 알고 얼마나 웃겼는지 모른다. 깨달은 뒤에는 이미 내일의 일기까지 몰아 쓴 후였다. 밀리다 못해 당겨쓰다니. 앞으로 5년 동안 쓸 일기장에 3일 치 밀려 쓰다 날짜를 틀린 게으름의 기록이 남게 되다니. OMG!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뒤섞인 시공간을 담은 내 일기장. 오늘도 나는 소보로 기억법을 활용해서 어제 일기부터 몰아 써야 한다.
소보로 기억법
1. 소보로빵 덩어리를 집는다. 2. 맛있게 먹는다. 3. 뒷정리를 하지 않는다. 4. 남은 가루는 생각날 때 치운다. (그럴듯한 덩어리가 있으면 집어먹기도 한다)
오늘 밤, 어제의 부스러기를 더듬을 때 부디 큰 덩어리가 집혔으면 좋겠다. 냠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