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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 기간, 고양이로부터 배운 것

코로나 확진 후 격리 6일 차 일기

by 로사 Rosa

코로나 확진으로 격리 중인지 6일이 지났다.


SNS, 블로그에 코로나 확진 후기나 격리 기간 동안의 일기들이 많이 올라오는데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고통을 겪고 비슷한 배달음식을 시켜 먹고 갇혀서 잠만 자고 또 일어났으니, 굳이 얼마나 아팠고 뭘 먹었는지를 기록하고 싶진 않다.

다만 지금 침대에서 잠든 나의 둘째 고양이를 바라보다 저 쪼그만 녀석에게 배운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격리 첫날, 갑작스러운 코로나 확진으로 그제야 동거인이 있는 코로나 확진자의 실내 격리 방법 및 양성 판정 이후 대처 방안을 급히 서치 했다. 부모님 두 분과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살아서 이미 확진된 나보다 동거 중인 다른 목숨들이 훨씬 중요했으므로 주요 키워드는 '코로나 양성', '재택 치료', '동거인', '가족 확진', '반려동물'이었다.

사람 일은 닥치기 전까진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그간 뉴스나 신문에서 지겹도록 접해서 처음이지만 술술 대처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건 큰 오산이었다.

하필 퇴근 시간이 임박한 때 양성 판정을 받아 충실하게 근무량을 채우고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

운동이니 산책이니 오후 7시 이전에 집에 곧장 들어가는 일이 없었는데 아직 해가 떠 있을 때 마주친 고양이들의 반짝이는 눈이 현관 앞의 나를 향했다. 고양이가 코로나가 걸렸단 얘긴 들어본 적이 없지만 쟤들을 만지면 털에 옮아 붙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가족들에게 피해를 줄까 두려웠다.

여느 때처럼 애교 부리는 둘째 고양이가 당황한 채 방문 앞에서 서럽게 울든 말든 냅다 방문을 걸어 잠갔다.

한참을 울던 둘째가 조용해져서 방 문에 시선을 두자 작은 덩어리 그림자가 문 틈새로 보였다. 들은 척도 안 하니 목 아프게 울진 않겠지만 기다리기는 해 보겠다는 거였다.

방 문을 잠시 열었을 때 평소와 달리 자신을 쓰다듬어주지 않는 게 의아한지 다리에 마구 얼굴을 비벼왔다. 하지만 섣불리 터치할 순 없어서 놀아주는 척 방 밖으로 내보냈다. 그림자마저 귀여운 생물체를 문 하나 사이에 두고 만지지도 못한다니. 확진 당일은 코로나 양성의 아픔보다 억울함이 앞섰다.

격리가 이어지는 다음날, 그다음 날도 그림자는 문 앞을 계속 서성였다. 물론 화장실도 가고 밥도 차려 먹느라 마스크로 무장하고 방문 밖을 나서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론 늘 닫힌 문이었다. 잠시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면 그 새 쏜살같이 방 안에 튀어 들어와서 혼자 뭘 했는지 샅샅이 검사라도 하듯 냄새를 맡고 구석구석 탐색하다 평소와 달리 자기를 보듬는 두 손이 없으니 눈치 보듯 조용히 내 방을 떠났다.

첫째는 사람보다 사람 같아서 혼자서도 잘 자고 만져달라 보채지 않는다.

첫째와 눈이 마주치면 눈을 깜빡하며 인사를 건네서 나도 따라 하거나 먼저 눈인사를 한다. 언제부턴가 첫째랑은 눈만 마주 봐도 말이 통하게 되었다. 첫째라면 내가 코로나에 확진된 것도 알지 모르겠다.

하지만 둘째의 성격은 정 반대라 만져달라 놀아달라 간식 달라 보채는 게 하루의 절반, 잠자는 게 나머지 반이다. 잠도 꼭 내 침대에서 자는데, 곧 잠들 분위기가 연출되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먼저 침대에 자리를 잡고 눕는다. 만져주지도, 간식을 주거나 놀아주지도 않고 심지어 잠도 같이 못 자게 문을 닫아버려서 고양이 입장에서는 하루아침에 소박맞은 기분이 들었을 거다. 사람도 거절 몇 번이면 상처받고 마음에 응어리가 생기기 마련인데, 내 상황을 이해할리 없는 조그만 녀석은 부탁이나 사과 없이도 적당히 거리를 둔 채 좋아하는 상대에게 한결같은 애정을 표현할 줄 알았다. 다툰 커플처럼 별안간 거리를 둔지 사흘 정도 지나자 녀석도 익숙해졌는지 더 이상 만져달라는 표현이 없어졌다. 말 많은 울보인데 더는 울지도 않는다. 대신 방 문이 조금 열렸을 때 꼭 안으로 들어와 안부를 묻듯이 한 바퀴 탐색을 돌고 떠난다. 오늘이 지나면 격리는 하루가 남는다. 오늘은 유달리 답답해서 방문을 조금 열어두었는데 역시나 둘째가 들어왔다. 밤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라 자려고 펼쳐놓은 이불에 자리를 잡고 누워있다가 곤히 잠들어버렸다.

6일 전처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같은 자리에 누워 잠든 둘째를 보니 신기하다. 며칠간 달라진 태도와 잠을 자는 장소, 같이 자는 사람이 달라졌지만 결국 똑같은 위치에서 비슷한 시간에 잠들어있다. 너 따위가 귀여운 날 싫어하게 되었을 리 없다는 확신이 있는 걸까. 아니면 누가 자길 무슨 이유에서 멀리하는지 납득되지 않아도 본인의 내키는 대로 행동하면 되니 상관없는 걸까. 설마 저 철없는 녀석이 상황이 여의치 않아 자길 쓰다듬지 못하는 내 마음을 헤아렸을 것 같진 않다.

매우 귀여운 건 당연하고 문득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6일간 방에 있으면서 먹고 자는 일상을 보내서 직전까지도 운동도 못하고, 체중 관리도 못했고, 일상 루틴도 망가져서 '망했다'라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이불속에 파고들어 가 잠든 둘째를 마주하니 고작 일주일이었는데 망하긴 뭐가 망했나 싶다.


격리 기간이 끝나면 그저 하던 대로 해야겠다. 퇴사하면 이런저런 거 하고 싶다고 쓰는 은밀한 버킷리스트가 있는데, 당장 격리 해제부터 하면 좋을 일들도 적어봐야겠다.

식단 관리도 다시 시작하고 운동도 부지런히 하고 제시간에 잠도 자고 아침에 눈뜨면서 되찾은 일상을 살아야지. 반드시 고양이들이랑 놀아주고 마음껏 안아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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