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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의 물결

LP를 모으다

by 로사 Rosa


간발의 차이로 작년이 되어버린 2020년 연말에 마침내 턴테이블을 구매했다.


턴테이블을 향한 열망은 좋아하는 가수가 발매한 한 앨범의 CD와 LP(바이닐 혹은 레코드판)를 괜히 둘 다 사버린 날로부터 비롯되었다.
이왕 구매할 거 예쁜 디자인, 편리한 기능과 뛰어난 소리까지 욕심내다 예상보다 큰돈을 썼다.
꿈꾸던 턴테이블이 내 것이 되니 무척 뿌듯해서 맥시멀리스트로서의 소비 욕구가 당분간 싹 가실 정도였다.
비닐에 싸인 바이닐 커버만 들여다보던 인내의 시간이 지난 뒤, 비로소 때가 왔다.
지친 하루의 끝에 바이닐 소리골 틈새에 바늘 끝을 올려두는 어른이 되었다!

바이닐을 재생하기 전에 판에 묻은 먼지를 훑어낸 뒤 헤드 쉘을 바이닐에 얹는다.
바늘이 미세한 소리골을 따라 지나며 아주 작은 소리를 낸다.
음악은 케이블로 연결한 스피커에서 볼륨 높이에 따라 재생되지만, 턴테이블에 귀를 가까이 대면 자체 내장된 앰프가 만드는 아주 작은 소리가 들린다.
작은 지글지글 소리를 들으면 음악의 요정이 열심히 돌며 음악을 연주하는 것 같아서 귀엽다.
바이닐은 종종 플래터 위에서 진동을 따라 파도처럼 일렁이는데, 이런 현상은 주로 평평하지 않고 휘어진 불량 판에서 발생하는 문제다. 하나 그 또한 큰 매력이다.

한강의 잔잔한 물결을 바라보듯 차분한 감상에 빠져들곤 한다.
카트리지 사이로 빼꼼 보이는 바늘은 생선의 잔가시보다 작아서 매번 신경 써서 조심히 다루고 있다.
작은 돌기가 소리골을 따라 진동하며 바이닐에 기록된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 매번 신기하다.


이토록 편리한 시대에 귀찮은 턴테이블로 음악을 감상하는 목적은 주로 음악 본연을 즐기기 위함이겠지만, 난 음악을 잘 알지 못한다.

말 그대로 잡식성 취향이라 K-POP부터 클래식 바이닐까지 뭐든 모은다.

음악 취향이 깎이고 형성되는 것에는 꽤 많은 시간과 돈이 들겠지. 다만 일상을 보듬는 충분한 분량의 위로는 지금 당장 발견할 수 있다.

흐르는 음악과 섬세한 위로가 방 안의 턴테이블 위에서 물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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