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양이에게
내 고양이는 꽃을 좋아한다. 아주 잘 먹는다.
모모는 아기 고양이만큼 귀엽지만, 벌써 여덟 살이 훌쩍 넘었다.
여덟 살이 된 고양이는 노묘로 분류되어 매년 건강 검진을 받아야 한다.
나이가 있으니 선호하는 간식이 생겼을 법 한데, 어제 맛있게 먹은 과자를 오늘은 입도 대지 않는다.
약을 먹이거나 싫어하는 목욕, 발톱 깎기를 칭찬하기 위해 간식 취향을 파악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뚜렷하게 선호하는 간식이 없다는 건 종종 난감하다.
사실, 전혀 없진 않다.
나의 고양이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은 금단의 꽃이다. 화훼장식 기능사 자격증 실기 시험을 대비하기 위해 우리 집에 만개한 생화가 가득하던 시기, 모모의 경이로운 점프와 재빠른 발, 작은 입을 단속하는 일이 퍽 난감했었다.
꽃을 먹는 고양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은 안개꽃이다. 가느다란 줄기에 작고 바삭한 꽃이 빼곡하게 달려있다. 안개꽃은 입 작은 고양이가 한 입에 삼키기 딱 좋은 크기다. 다채로운 식감도 최고다.
물먹은 생화는 촉촉하고, 시들어가며 점차 바삭해진다. 꽃병의 안개꽃이 서서히 말라가면, 모모가 선호하는 최적의 식감을 가진 숙성 안개꽃이 된다.
숙성된 안개꽃에서 맛있는 냄새라도 나는 걸까. 화병을 높은 곳에 올려놔도 귀신같이 찾아낸다. 선반 위로 뛰어올라 눈치도 안 보고 대뜸 입부터 벌리고 본다. 사람이 좋아하는 과자를 먹듯 바삭바삭 맛있게도 먹는다.
귀여운 간식 타임을 위해 꽃을 잔뜩 말려서 실컷 퍼 먹이고 싶지만, 건강에 좋을 리 만무하다.
와구와구 꽃을 먹는 녀석을 발견하는 즉시 이놈, 하고 혼을 내면 흘끔 눈치를 본다. 눈치와는 별개로 뜯어말리지 않으면 식사를 멈추지 않는다. 통통한 배를 잡고 들어 올려 멀찍이 꽃과 떼어놓으면 서운한 울음소리를 낸다.
모모의 특식, 흰 안개꽃의 꽃말은 맑고 순수한 마음, 영원한 사랑, 행복, 기쁨.
반면 죽음과 슬픔이라는 꽃말도 가지고 있다.
흰 안개꽃은 유독 꽃말이 많다. 게다가 무척 고양이답다.
사람의 뜻 모를 미소보다 고양이의 무심한 눈 맞춤이 위로로 다가오는 날이 있다.
나는 쉽게 상처받고 멀어지는 사람이므로, 대부분의 날이 그러했다.
막막하고 두려운 감정이 들 때면 마음에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고 답답하다.
세상에 치여 두 발로 버티고 설 힘을 잃을 때, 방바닥에 녹아내린 고양이 옆에 오른팔을 베고 눕는다.
잠을 자던 모모가 살짝 눈을 뜬다. 귀찮은 인간이 누군지 확인하곤 기지개를 쭉 켠다. 귀찮은 인간은 배시시 웃는다. 눈 깜빡임으로 나의 뿌연 안개를 물리치다니. 대단히 용감하고 기특하다.
안개꽃을 즐겨 먹는 내 고양이는, 나의 안개를 먹어치우는 유일무이한 존재다.
너는 내게 사랑의 실체이자 삶에 피어난 귀여운 꽃이야.
부드럽고 말랑하고 따뜻한 꽃.
너는 고양이라는 존재 이상의 기쁨이고 행복이야.
우리가 사랑했던 모든 기억들이, 문득 네가 없는 세상 속에서 날 구원하는 순간이 오겠지.
너는 내게 상상조차 두려운 큰 슬픔을 주겠지만,
네 온기는 영원불멸의 사랑으로 남아 나의 일부가 될거야.
좋아하는 안개꽃을 실컷 주지 못해 미안해. 대신 거실에서 바삭한 소리가 날 때, 잠시 모르는 척할게.
네가 나에게 준 것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지만, 그렇게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