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SUMMER
여름날, 가슴팍 땀이 흐르는 느낌에 순식간에 기분이 더럽다.
뾰족한 햇볕이 정수리와 목덜미를 찔러댄다.
실낱처럼 가느다란 바람이 간절한 대여섯 번의 순간을 맞이한 뒤, 휴대용 선풍기를 장만했다.
얼굴 아래 쇄골 방향으로 정밀하게 바람의 위치를 조준하면, 땀이 증발하면서 시원해진다.
선풍기를 소중히 껴안고 승객으로 빼곡히 메워진 버스에 올랐다.
모르는 사람과 끈적한 팔이 맞붙었다 떨어지자 그 자리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피크 시간대에 대중교통을 타면서 할 생각은 아니지만, 혼자 있고 싶어요. 자리 좀 비켜주세요.
몸도 정신도 지친 날은 누가 말을 걸어도 대꾸하고 싶지 않다.
부모님이 말을 걸어도 같은 마음인데, 하물며 남인 경우엔 더 그렇다.
아무도 만나지 않을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는 주말에 비해, 반강제 노역에 시달리는 평일엔 사회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기에 매 순간이 고역이다.
여름을 싫어하는 내게 이 계절을 지나는 시간은 무척 힘이 든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따가운 햇빛, 축축한 장마철의 끈적임, 매미의 선 넘은 목청 자랑부터 가소로운 날벌레가 달려들기까지.
야속한 세상은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여름에 가장 원하는 것은 당당히 멍 때릴 자격이다.
멍을 때리면 툭툭 치이거나, 정신 차리라는 말을 듣곤 한다.
잠시 정신을 쉬고 싶은데 왜 차려야만 하는 걸까.
생각을 멈춘 동안 얻을 수 있는 것이 분명 있다.
지구에 중력으로 붙들린 우주 먼지들의 정신을 급속 충전할 수 있다. 지친 마음에 잠시 쉼표를 찍는 시간은 보장받아야 마땅하다.
실제로, 멍을 때리면 'DMN(Default Mode Network)'이라는 뇌의 특정 부위가 활성화되면서 뇌가 초기화되고, 더 생산적으로 일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는 연구 결과가 존재한다.
멍 때리기는 산림욕과 비슷한 효과가 있다고 하니, 오히려 시간 대비 효율적이다.
굳이 정신을 차릴 필요가 없는 것이 맞다.
멍 때리는 사람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 시선들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멍 때림 면허증'이 발급되면 좋겠다.
혼자 있고 싶으니 나가 달라고 말할 수 없는 모든 상황에서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멍을 때리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발급되어야 마땅하므로 나이 제한은 없어야 한다.
지금 뭐 하고 있냐고 물으면, '멍'이라는 글자가 쓰인 면허증을 내밀고 당당히 마저 멍 때릴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 일일 할당량이 있어도 괜찮다. 직장인이라면 사무실에서 전부 쓰게 될 테지만.
면허증이 실제로 발급된다면 여느 교통안전표지가 그러하듯 노란색 배경에 빨간 테두리, '멍'은 굵은 고딕체의 검은 글자로 썼으면 좋겠다. 면허증을 내밀면 누구든 멈칫, 할 수 있도록 말이다.
올여름도 무덥다. 날 세운 감각들이 긴장되며 잔뜩 예민해진다.
여전히 여름은 싫은 계절이다.
여름의 색, 먹을거리, 폭발하는 생명력과 같은 몇 가지의 매력을 제외한 대부분이 버겁다.
여름은 멍을 때려야 옳다.
정신줄을 붙잡고 매일을 채찍질하며 내달리기보다, 이따금 놓아주기도 하며 무사히 지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