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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사 Oct 29. 2022

제주 없음 가족 여행도 없다고

'서울여자가 제주여자'에게 보내는 일곱 번째 편지 - 제주도

로사야. 내가 엄마가 된다고 했을 때 네가 젤 아쉬워했던 게 뭔지 기억나? 바로 여행친구를 잃었다는 거였어. 소소하게 서울 나들이부터, 제주, 라오스, 방콕, 대만까지. 네가 “언니, 나 표 샀어.”라는 유혹의 말을 흘리고 같이 가자며 조금만 졸라주면 너무 쉽게 넘어가던 사람이 나였다. 실은 네가 조르기 전부터 이미 떠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해. 히히


아마 그동안 내가 가장 많은 돈과 시간을 쓴 것을 꼽으라면 여행이지 싶다. 쌓이지 않던 월급과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싶었던 걱정은 출산과, 육아로 자연스럽게 일시정지 되었어. 게다가 코로나까지 터지니 출산+코로나 콜라보는 언제든 떠날 수 있던 여행을 언제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초고난이도 미션으로 바꿔버렸지. 설령 갈 수 있다 해도 선뜻 떠날 자신감은 없음에 한표 던진다. 왜 이렇게 마음에 걸리는 게 많은지... 에잇!


코로나 시국에 아기를 낳으니 여행은커녕 외출조차 쉽지 않더라고. 초반엔 거리두기도 심했고 신생아가 있어서 살얼음 걷듯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정말 1년간 집콕 방콕 원 없이 했다. 아이가 3살이 될 때까지 함께 여행이란 것을 가본 적이 없었어.


너 혹시 제주도가 없는 우리나라 또는
제주도가 없는 우리나라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 있어?

난 아이를 낳고 저런 생각이 들더라. 왜냐면 이젠 아이랑 함께 여행을 해봐야겠다 결심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이 제주였어. 내가 제일가고 싶던 나라도, 물가가 저렴해서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곳도 아니더라고. 제주도는 가족여행의 로망이자, 실현 가능한 유일한 목적지처럼 느껴지는 거야. 같이 한 번 제주도를 다녀온다면 이후 우린 어디라도 갈 수 있을 것 같더라고.


작은 섬 제주지만 제주도 없는 우리나라를 상상하니 정말 밋밋하게 느껴지더라. 제주도 없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떻고? 육지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속에 제주도를 품고 있는 것 같아. 뭐랄까 제주는 '닿을 수 있는 오아시스' 같거든. 마음먹으면 혼자서도 냅다 도망칠 수 있는 섬, 지치면 쉴 수 있고, 친구와 연인과 들뜬 마음으로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여행지, 나이 든 부모님을 모시고 갈 수 있는 효도 코스부터 나같이 아기를 둔 엄마들도 용기 낼 수 있는 곳이 제주인 것 같아. 제주도가 없었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추억 지분이 조금씩 사라질 것 같아. 맑은 공기와 푸른 바다, 숲과 오름 같은 파아란~ 기억들도 샤라락 지워질 것이고.


아기가 있어서인지, 코로나 때문인지 외국은 정말 엄두가 안 났어.


미혼 친구들은 인스타 셀럽 엄마들의 사진을 보내며 너도 할 수 있다. 도전해봐라 말했지만… 파리에서 유모차를 끌고 있는 엄마들의 모습이나, LA 디즈니랜드에 있는 가족의 모습에도 전혀 의지가 생기지 않더라. 저 사진 뒤로 어떤 풍경들이 펼쳐질지 예상 가능하기도 했고 무서워 피하고 싶었던 것인지 자신이 없던 것인지 모르겠어. 그동안 수없이 비행기를 타고 이나라 저나라 겁도 없이 여행했었는데 도무지 불가능할 것 같았어. 어마어마한 짐을 쌀 자신도, 아이를 데리고 힘들게 영어로 머리 아파할 기운도 없었다. 그런데 제주도에 가면 된다는 생각을 하면 크게 아쉽지 않더라고. 아니 오히려 첫 여행으로는 무조건 제주를 선택해야 한다는 확신에 가까웠어.


누가 보면 이민 가는 줄


너도 알겠지만 결국 우리 가족은 그렇게 제주로 첫 여행을 떠났지. 지온이는 태어나 처음으로 바다를 보았어. 처음 난 딸에게 바다를 보여주면 막 다다다 뛰어가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생에 첫 바다를 본 아이는 파도와 모래가 무서워 까치발을 들고 안겨드는 거야. 퍼뜩 요즘엔 바다보다 수영장을 좋아하는 아이가 많다는 말이 생각나더라. 바닷속에 아이를 세워두니 그대로 얼음이 되어 움직이지 못하고 가만히 있다가 조금 지나니 살짝 파도를 타고 온 바닷물을 장난감에 담기 시작했지. 하르방 아저씨를 알게 되었고, 숲 속에서 달리기를 했고, 아침엔 같이 오분자기죽과 고등어구이로 식사를 했어. 아기가 낮잠을 잘 때 가고 싶던 청수리 쪽을 드라이브하고 이 동네 저 동네 처음 보는 제주 마을을 구경하는 소소한 재미도 있더라.


솔직히 너도 알겠지만 난 수도 없이 제주를 갔었거든. 출장 가서도 너와 저녁에 만나 식사를 했었고, 워크숍도 종종, 혼자서도, 또 친구들과도 수 없이 여행을 왔던 섬이었지. 남편이랑 떨어지는 별똥별을 봤었고, 너와도 아침 해수욕을 하며 같이 하도리에서 지냈었고 말이야. 눈 감으면 제주 지도가 촥 펼쳐지고 동서남북 어디에 뭐가 있는지 정도 쓱쓱 기억해 낼 수 있는 프로 관광객이라 생각했었는데… 요번처럼 새롭고 절실하면서도 감사한 제주는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냥 우리 가족을 받아 준 그 자체로 감동이었달까? 날씨며, 바다며, 목장이며 식당까지 모두.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오게 되니 왜 이렇게 제주에게 고마운지 몰라.


정말 제주는 제주였다는 것을 이번 가족 여행만큼 강렬히 느낀 적이 없던 것 같다 싶었거든. 근데 잘 생각해보니 아니더라. 곰곰이 마음을 들여다보니 실은 늘 아쉬웠어. 제주도는 이제 너무 익숙해서 안 와도 될 만큼 많이 왔다고 말하면서도 공항으로 돌아가는 렌터카 안에서, 뒤로하는 서쪽의 노을도, 동쪽의 해안도로도 아쉬웠던 것 같아. 떠나면 다시 가고 싶었고, 하루만 더 있고 싶다고 생각한 곳이 제주였어. 설령 미련 없이 돌아왔던 출장 다음날이나, 워크숍 끝난 뒤에도 결국 육지에 닿으면 다시 가려고 결심하는 곳이 제주였어.


너무 오랜만에 여행을 가서인지. 새로 태어난 딸과 첫 여행을 간 곳이 제주여서인지. 나 요즘은 제주도가 더 많이 생각나고 그리워. 제주 가옥을 빌려서 지내며 셋이서 손을 잡고 아침 8시에 문 연 식당에 전복죽과 고등어구이를 사러 가던 기억도 나고, 집 앞마당에서 물놀이를 하며 호스로 산방산을 배경으로 무지개를 만들던 기억도 나. 딸을 재우고 남편과 너무 피곤해 만신창이 상태로 시간이 아쉬워 야식 딱새우 회를 호로록하고, 컵라면을 먹으며 제주 막걸리를 한 잔 하던 시간도, 너를 불러 모기에 뜯겨가며 흑돼지와 새우를 바비큐 하던 기억도, 처음으로 갔던 바다 뒤로 지던 노을과 평범했던 제주의 길들, 표지판 하나까지도 생생하게 그립다.



사진만 봐도 그리운 제주 풍경


여행에서 돌아온 딸은 아직까지도 TV에서 바다만 나오면 이렇게 외쳐.
“제주도다!”


비행기를 타면 모두 제주에 가는 줄 알고, 큰 트렁크 가방만 봐도 제주도에 가져가는 거라고 기억하고 있어. 세 살 지온이에겐 비행기를 타고 가는 유일한 목적지이자, 모든 바다의 이름이 바로 제주야. 지금 나도 지온이와 다르지 않은 것 같아.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있는 유일무이한 곳은 말이 통하고, 아이에게 밥을 먹일 수 있고, 아파도 갈 수 있는 병원이 있는 제주인 것 같아. 내가 딸에게 보여주고 싶은 아직 다 보여주지 못한 바다와, 숲과, 언덕과, 섬이 있는 곳도 제주야. 제주 없으면 가족 여행도 없다구!!!


닿을 수 있는 오아시스에 살고 있는 로사야. 로망도 내 현실이 되면 다르다 하지만 아니지? 정말 너에게도 현실 속에서 종종 오아시스 맞지? 먼듯하지만 가깝고, 가까운듯해도 마음을 먹기에 조금 먼 곳. 당장이라도 달려갈 수 있을 것 같지만 조금의 용기가 필요하고, 막상 가면 걱정했던 마음들을 무너트리며 우리를 안아주는 곳이 제주가 아닐까 싶다. 제주도 정도는 뭐 언제든 쉽게 갈 수 있지라고 만만하게 생각했었는데… 나 요번에 정말 제주 다시 보고 무한 감사하게 되었어. 네가 살고 있는 그 아름다운 섬에게 내 깊은 감사를 전해주련 네가 한없이 부럽다! 오아시스에 살 고 있다는 그 자체로 말이야.  그나저나 로사야. 나도 언젠가 제주에서 한 번 살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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