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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내음 Nov 11. 2024

검은 벌레는 어디서 왔을까

비문증

맑은 유리창에 몇 마리의 검은 벌레를 키운다. 어디서 온 건지 알 수 없지만 어느 순간 내 안에 불쑥 들어와 자리를 잡은 녀석들이다. 눈을 뜨기만 하면 아는 척이라도 하듯 어김없이 나를 맞이한다.


“파르르르.”

갑자기 날아오르기도 한다.

“요놈 봐라”

나는 시선을 이리저리 굴려본다.      


밤이면 사라진 듯하지만, 아침이면 어김없이 돌아와 내 시야를 가득 채운다. 마치 나를 조롱하듯 시야 끝자락에서 날아다니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며칠이 지나도 떠나지 않는 이 불청객들은 내 몸과 마음을 불안으로 채운다.     


문득 친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한 번은 외국에서 휴가 중 식당에서 하얀 접시에 검은 점들을 보고 당황했던 그녀. 접시를 바꿔 달라 요청했으나 새 접시에도 점들은 그대로였다. 동행한 친구에게 문제를 얘기하자 친구는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접시가 깨끗한데?"

그제야 그녀는 자신의 눈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불안에 휩싸여 병원으로 달려갔다고 했다. 그 순간의 긴박함이 그대로 내게 전이된 듯, 나 역시 불안해졌다. 혹시 나도 그녀처럼 눈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그날 밤, 온갖 걱정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눈앞에서 날아다니는 벌레들처럼 내 불안도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다음 날 안과를 찾았다. 진료실에 들어가기 전부터 심장은 두근거렸고, 나쁜 소식을 들을까 두려웠다.     


검사가 시작되었다. 눈에 약을 넣자 동공이 점점 확장되며 시야가 흐려졌다. 차가운 금속 기계에 이마를 대고 흐릿한 시야 속에서 초점을 맞추기 위해 애쓴다. 마치 멀리서 날아다니는 벌레들을 잡으려는 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본다.     


결과를 기다리며 뿌연 시선 속에서 눈을 감는다. 주변의 소음은 희미해지고, 마음속에는 고요한 정적이 스며든다. 그 순간, 어린 시절의 장면들이 흐릿하게 떠오른다. 마치 안갯속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오래된 사진들처럼.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엄마 손을 잡고 대학병원 안과에 갔던 날이 기억난다. 길고 긴 병원의 복도, 차갑게 발을 스치는 타일 바닥의 무늬, 흰 가운을 입은 의사들의 무표정한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희미하지만, 며칠 동안 눈앞이 흐릿해 세상이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졌던 때였다. 학교에 가기 싫다며 울던 기억도 난다. 받아쓰기는 삐뚤빼뚤했고, 글자들은 종이 위에서 선을 넘어 흩어졌다. 그런 날이면 엄마는 조용히 종합장에 굵은 선을 하나 더 그어주며 숙제를 도와주곤 했다.     



그 기억은 흐릿한 시선 속에서도 선명히 남아 있다. 지금, 다시 흐릿해진 시야를 마주하며 그때의 불안했던 마음과 엄마의 다정한 손길이 떠오른다. 모든 불안한 순간에도 나를 감싸 안아 주던 그 따뜻함이, 오늘의 기다림 속에서도 조용히 나를 지켜보고 있다.      


“000 씨,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오랜 기다림 끝에 내 이름이 불렸다. 의사는 사진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심장이 서늘해졌다.

“정밀 검사 결과, 큰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비문증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노화로 생긴 증상이에요.”

“언제쯤 이 증상이 사라질까요?”

희미한 안도감을 느끼며 의사에게 물었다.

“시간이 조금 걸릴 수 있습니다. 너무 신경 쓰지 말고, 그냥 평소처럼 생활하세요.”  

   



아침에 눈을 떠 주변을 둘러본다. 오늘도 검은 벌레가 조용히 날아올라 나에게 아침 인사를 건넨다. 하나, 둘, 셋, 넷… 오늘은 한 마리가 보이지 않네?


어쩌면 이 만남은 오래전, 내가 기억조차 못할 순간부터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그 작은 존재는 더 이상 외면해야 할 불청객이 아니라. 함께 달래고 어루만지며 살아갈 내 운명의 한 조각이 되었다. 세월이 흐르며 쌓여온 연륜의 흔적이며, 매일 새롭게 찾아오는 아침을 열어주는 내 삶의 작은 동반자다.


작은 날갯짓 속에 담긴 시간의 무게를 느끼며, 오늘도 나는 이 작은 손님과 함께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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