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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벌레는 어디서 왔을까

비문증

투명한 유리창 위에 검은 벌레 몇 마리가 앉아 있다. 어디서 왔는지도,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문득, 내 안으로 들어와 은밀히 자리를 틀어버린 녀석들이다. 밤이면 자취를 감추고, 아침이면 슬그머니 나타나 속삭인다.


“나 여기 있어.”


가끔은 놀란 듯 힘껏 날아올라 허공을 가른다.


“요놈 봐라.”


나는 눈동자를 굴려 그 작은 그림자를 좇는다. 손을 뻗어도 닿지 않고, 쫓아도 잡히지 않는다. 오직 나만 감지할 수 있는 존재. 투명한 막 속에 갇힌 듯, 오롯이 나만의 공간에서 떠다닌다.


몸과 마음이 지칠수록, 녀석들은 더 자주, 더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불안이 뱀처럼 고개를 들고, 조급함에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할 때마다, 어김없이 시야를 가로질렀다. 마치 내면 깊숙이 가라앉아 있던 감정이 검은 날갯짓을 빌려 수면 위로 떠오르는 듯했다.


연주회를 앞두고 있던 시기였다. 날짜가 다가올수록 몸과 마음이 팽팽히 조여들었다. 하루 종일 피아노 앞에 매달렸지만, 손끝은 자꾸 엇박자를 냈고, 음표는 무게를 잃은 채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자신을 다그쳤다.

‘더 잘해야 해. 실수는 절대 안 돼.’

그럴수록 숨은 거칠어지고, 시야는 흐릿해졌으며, 눈은 모래알이 스민 듯 따가웠다.

그러던 어느 날, 악보 위로 검은 벌레 한 마리가 불쑥 날아들었다.

“뭐야, 이게….”

손으로 허공을 휘저었지만, 녀석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그림자들이 몰려와 내 앞을 유영했다. 마치 오래 전의 트라우마처럼, 잊을 만하면 불쑥 다가와 시야의 가장자리를 흔들었다.


며칠을 버티다 병원을 찾았다. 시린 약물이 눈 속으로 스며들자, 모든 풍경은 유리창 너머처럼 뿌옇게 번졌다. 사물의 윤곽은 물결 아래 그림자처럼 흐리게 일렁였다. 그 순간, 오래전의 시간들이 뿌연 현재 속으로 고요히 스며들었다.



강건하여 감기 한 번 앓지 않던 어머니가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들은 건, 미국에 간 지 네 해가 되던 겨울이었다. 현실이라 믿기지 않았다. 불안은 깊은 밤까지 잠을 밀어냈고, 나는 날이 밝도록 창밖만 바라보았다. 귀국을 결심하고 서둘러 준비하던 중, 새벽을 알리는 전화벨 소리에 후다닥 몸을 일으켰다.


“나… 간다.”

수화기를 타고 흐르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또렷했다.

“엄마! 어딜 가요?”

“어딘 어디야… 외국이지.”

그토록 무심했던 말이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은, 그때는 몰랐다.




이제 나는 어머니가 멈춘 나이를 훌쩍 넘어, 긴 세월의 강을 건너왔다. 돌아보면 어린 시절의 나는 몸도 마음도 유난히 약했다. 씩씩하던 언니와 동생 사이에서 언제나 뒤에 머물렀고, 쉽게 흔들리고 자주 지쳐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를 감싸준 건 어머니의 품이었다. 그 품은 따뜻한 빛처럼, 잔잔한 노래처럼 불안에 떨던 나를 조용히 품어주었다. 세상의 바람에 꺼질 듯 흔들리던 작은 촛불 같던 나를 지켜준 불빛이었고, 소란한 세상 속에서도 숨을 고르게 해 주던 고요한 음악이었다.


나는 회색 건물을 나선다. 늦은 오후의 빛이 창밖으로 스며들고, 강물 위엔 금빛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다. 바람에 흔들리던 잔 물빛은 파편처럼 반짝이다가, 이내 고요히 가라앉는다. 이별의 예식도 없이 보내야 했던 어머니의 목소리는, 여전히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온다. 그 음성이 남긴, 붙잡지 못한 순간의 잔향은 사라진 뒤에도 오래도록 내 안을 맴돈다.


삶은 어쩌면 저 빛처럼, 흩어졌다 다시 모이고, 사라졌다가 돌아오는 리듬인지도 모른다. 눈앞에서 검은 벌레가 일렁일 때마다, 나는 조용히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른다. 어쩌면,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과 상처가 형체 없는 슬픔의 조각이 되어 내 시야 끝에서 떠도는 것만 같다. 그들이 스쳐간 자리마다 잊고 지냈던 기억의 파편들이 별처럼 반짝이며 흩어진다. 손을 뻗으면 허공 속으로 멀어지고, 애써 쫓아낼수록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오는 그 존재들. 이제 그들은 내 삶의 지울 수 없는 얼룩이자, 가장 애틋한 흔적이 되었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검은 벌레들이 인사를 건넨다. 그들의 가볍고 미세한 날갯짓은 내 안의 고요한 울림이 되어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잊힌 줄 알았던 마음의 조각들이, 음악이 되고 글이 되어 천천히 피어난다. 잠시 머물다 떠나는 그 작은 그림자들이, 상쾌한 아침 공기를 가르며 유리창 너머로 서서히 멀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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