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 닿지 않아도 아름다운 것들에 대하여

신경숙의 소설 <부석사>

by 솔내음

신경숙의 소설 『부석사』 속 주인공들은 여행을 함께 떠나지만, 결코 서로에게 온전히 가닿지 못한다. 그들은 나란히 앉아 있으면서도 각자가 가진 사랑의 흉터만을 더듬으며 겉돌 뿐이다. 마치 이름처럼 공중에 떠 있는 바위, '부석'처럼 말이다.


소설의 끝에서 그들은 부석사의 종소리와 쏟아지는 함박눈 속에 갇혀 길을 잃는다. 그 애틋하고도 서늘한 문장들을 가슴에 품고, 단풍이 서서히 물들던 시월의 어느 날 나는 영주 부석사로 향했다.


노랗게 일렁이는 은행나무 터널을 지나 108개의 번뇌를 상징하는 가파른 계단을 올랐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쯤, 비로소 한국 목조 건축의 정수인 무량수전과 소백산맥의 능선이 한 폭의 수묵화처럼 펼쳐졌다. 그 장엄한 풍경 속에서 나는 소설 속 두 사람을 떠올렸다. 그들은 왜 그토록 가까이 있으면서도 서로를 안아주지 못했을까.



무량수전 뒤편, 거대한 두 바위가 겹쳐진 채 공중에 떠 있다는 '부석' 앞에 서서 한참을 머물렀다. 바늘귀에 꿴 실이 통과할 만큼 미세한 틈을 두고 떠 있다는 그 바위는, 어쩌면 우리네 삶과 참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나의 일상도 다르지 않았다. 가족, 친구, 동료... 수많은 관계 속에서 우리는 늘 밀착되어 살아가는 듯하지만, 사실은 저 바위처럼 아주 미세한 틈을 둔 채 각자의 고독을 견디며 떠 있는 존재들 인지도 모른다.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나 역시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고 싶으면서도, 상처받기 두려워 적당한 거리를 두며 겉돌던 날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 '틈'이 꼭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부석사의 석양을 보며 깨달았다. 바위와 바위 사이의 그 작은 틈 덕분에 '부석'이라는 신비로운 이름이 붙었듯,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또한 서로의 존재를 온전히 지켜주기 위한 최소한의 예의일지도 모르겠다고. 억지로 밀착되어 부서지기보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나란히 서서 같은 석양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위로가 발끝에서부터 차올랐다.



해 질 녘, 안양루 너머로 붉게 타오르는 노을을 바라보며 나는 비로소 다가올 계절을 버틸 용기를 얻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눈 속에 갇혀 길을 잃었지만, 나는 이 고즈넉한 풍경 속에서 나만의 길을 찾은 기분이었다. 가을 석양을 등지고 내려오는 길, 다시 한번 이곳을 찾으리라는 작은 미련을 마음속에 소중히 심어 두었다.


그땐 지금보다 조금 더 가벼워진 마음으로, 내 곁의 사람들과 기꺼이 '따로 또 같이' 떠 있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