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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내음 Mar 17. 2021

기억을 되살리다

<너를 만났다>를 보다가 생긴 일

세상을 떠나 만날 수 없는 사람을 디지털 기술을 빌려 만나게 되는 프로그램, <너를 만났다>를 TV에서 보게 되었다. 비록 허상이지만 현실에서 만날 수 없는 그리운 가족을 다시 만난다는 사실은 감동이었고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문득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진품명품!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었다. 아버지는 일요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진품명품>을 빠지지 않고 챙겨보셨다. 의뢰인이 가지고 나간 자신의 소장품을 전문가들이 그 가치를 감정해 주고 금액을 구체적으로 평가해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골동품, 고미술 등에 관심이 많았던 아버지는 집에 있는 물건들을 한번 가지고 나가서 평가받아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곤 했다.


아버지가 어느 날 빙그레 미소를 띠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곧 유명인사가 될 것 같다.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네? “

”정말요? “     


직접 방송국에 참가 신청을 하고 프로그램에 출연하시게 된 아버지를 방송국에 모시고 가서 신기한 마음으로 녹화를 지켜보던 기억이 떠오르며, 그 영상을 찾고 싶은 열망과 희망이 생겼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십여 년이 흐른 지금, 조금씩 아득하고 흐릿해져 가는 기억 속의 아버지를 현재로 소환하고 싶었을까. <너를 만났다>를 보면서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그 기억이 느닷없이 떠오른 것이 신기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다행히도 그 프로는 몇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건재하고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방송국 프로그램 번호를 찾아서 다이얼을 돌렸다.      


“0000 프로그램이죠? 혹시 지난 녹화분을 구할 수 있을까 해서요.”

“몇 년도, 몇 회 차 방송인 가요?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해요. 출연자 이름으로는 검색이 안 되나요?. “

”이름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확실한 년도, 출연한 회차가 있어야 합니다. “     


사무적이고 냉랭한 답변에 기운이 쭉 빠졌지만 절박하고 간절한 마음이 통했는지, 편집팀과 어렵게 연락을 한 끝에 아버지의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는 2회의 영상을 찾을 수 있었다.      


며칠 후 외출에서 돌아와 보니 자그마한 택배 상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던 K 방송국에서 보낸 프로그램 영상의 usb 가 담긴 소포였다. 당장 보고 싶은 마음과 달리 웬일인지 책상 위에 올려두고 쉽게 개봉을 하지 못한 채 며칠을 보냈다.      




용기를 내어 usb를 컴퓨터에 꽂는다.   


“오늘의 마지막 의뢰인을 소개합니다.”     


재생 버튼을 클릭하니 아득한 과거 속에서 아버지가 걸어 나오신다. 아버지를 되살릴 수는 없지만 이렇게라도 기억 속의 아버지의 모습과 목소리를 되살릴 수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다.

         

지나가 버린 시간과 존재를 기억하는 일이 한편으로는 쓸쓸한 일이지만, 슬프지는 않다.

단지 눈에 보이지 않고 잠시 잊혔을 뿐, 과거는 사라지지 않고 기억 속에 켜켜이 저장되어 있다는 것을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에야 깨닫는다.    

내가 경험하고 느끼는 지금 이 순간도 미래의 어느 날, 아름다운 기억으로 간직되기를 바라며 소중한 오늘의  재생 버튼을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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