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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내음 Jun 16. 2021

입 막은 자들의 도시

마스크를 쓰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

기이한 모습들이었다. 무심히 맞은편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쳐다보다가 느낀 감정이었다. 모두 한결같이 마스크를 하고 앉아 있었다. 저들이 바라보는 내 모습도 그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 왠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슬그머니 마스크를 다시 추켜 올렸다.


막 사당역을 지났을 때였다. 내 옆자리가 비자 빨간색 티셔츠를 입은 중년의 남자가 비집고 들어와 옆자리에 앉았다. 바로 그때. 맞은편에 앉아 있던 젊은 여자가 불쾌한 듯한 표정으로 말없이 일어나서 다른 칸으로 가버렸다. 곧이어 내 오른쪽 옆에 앉은 승객도 얼른 다른 자리로 옮겨가는 것이었다. 무슨 일 일까. 불안해지며 슬쩍 옆의 사람을 모습을 훔쳐보았다.    

  

'앗...'     


그 남자는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은 채 물끄러미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는 지하철에서 입과 코를 당당하게 드러내 놓은 그의 모습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문득, 이전에 읽었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의 한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차를 운전하던 남자가 신호를 기다리던 중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게 되고, 그를 구하려고 온 사람들도 하나씩 전염병으로 눈이 멀게 되어 도시 전체가 눈먼 자들로 가득 차게 된다는 내용의 소설이었다. 그 소설 속의 어둡고 우울한 잿빛 도시의 모습이 전염병이 퍼져 나갈 수도 있는 불안 속에서 입을 막고 사는 지금 우리들의 모습과 겹쳐지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코로나바이러스는 우리의 삶을 눈에 띄게 변화시켰다. 입과 입을 통해 바이러스가 전염된다고 우리에게 입을 막고 살라고 한다. 만남을 자제하고 사회적 거리를 두고 살라고 한다. 삶의 거리를 두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라고 한다.      


입을 막으니 비로소 보이고 들리기 시작하는 것들도 있다. 어쩌면 지금까지 살아왔던 일상을 한 번 뒤돌아보고 내 안의 소리에 집중할 수 있는 시기인지도 모른다.



“다음 역은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도착역을 알리는 방송이 나온다. 지하철에서 내려 혼잡한 사거리의 교차로에 서 있다.


흰색, 검정, 회색의 천으로 입을 막은 사람들이 신호등 건널목 앞에 줄지어  있다. 얼떨결에 처음 겪는  바이러스의 세상에 내던져져 눈만 빼꼼하게 내놓은 사람들의 모습을 저만치 거리를 두고 보면서, 내가 살고 있는  소설 같은 현실에 가슴이 서늘해진다.

 

너무 많은 것을 가지려 하고 너무 많은 것을 쫓으며 경쟁하듯 살아온 인간들에게 돌아온 부메랑일까. 삶의 노랑 경고등이 깜박이고 있다.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 끝은 언제일지 모르는 막막함과 외로움을 묵묵히 견디고 있는 입을 막은 사람들이 언제인가는 초록 불이 들어오기를 지켜보며 건너편에 서 있다.


초록불이 들어오자 사람들이 목적지를 향해 길을 건넌다. 답답한 마스크를 벗고 활짝 웃는 그날을 고대하며 소설 같은 세상 속으로 총총히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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