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의 기억
이십 년 만이다. 아버지가 정성을 들여 모으고 가꾸었던 수석 백여 점이 ‘국립 세종수목원'에 영원한 안식처를 마련하게 되었다. 수석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싶어 하시던 아버지의 소망이 이루어진 것 같아 기쁘고 감격스럽다.
내가 살았던 집은 얕은 야산이 멀리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있었다. 우리 집은 동네에서 ’ 돌집‘으로 통했다. 처음 집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이웃이나 주위 상점에 ‘돌집’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금방 우리 집을 가르쳐준다고 했다. 돌을 좋아하던 아버지 덕에 마당은 온갖 돌들이 가득 넘쳤고, 어느새 집 안 거실, 방까지 자리를 차지하더니 사람보다 돌이 주인이 된 듯했다. 돌이 가득한 집 안은 작은 공원처럼 꾸며졌다. 아버지의 돌 사랑에 약간의 질투가 생겼지만 나는 오며 가며 자연스레 돌들과 함께 성장하고 그들의 친구가 되었다.
“우와. 요 녀석은 오늘따라 색이 더 오묘하네, 이 아이는 이끼가 더 촘촘하고 예쁘게 자랐네.”
아버지의 하루는 돌과의 대화로 시작되었다. 우리가 보기에는 그저 비슷비슷하게 생긴 돌멩이일 뿐이었지만, 아버지는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어루만지며 정성으로 가꾸었다. 물을 뿌릴 때마다 돌은 무지개처럼 오묘한 색을 띠기도 하고, 기름 바른 걸레가 지나갈 때마다 반짝반짝 윤이 났다.
주말이면 마음에 드는 돌을 찾아서 강으로 계곡으로 탐석 여행을 떠났던 아버지는 저녁 무렵이면 불룩한 배낭을 메고 집에 오셨다. 돌들을 배낭에서 하나하나 꺼낼 때 표정은 신기한 보물을 발견한 어린아이처럼 해맑고 신나 보였다.
“이 모양을 봐봐. 꼭 금강산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지?”
어느 세월, 어느 장소를 이리저리 떠돌다 우리 집까지 오게 됐을까. 산봉우리, 물결무늬, 거북이, 산봉우리에 걸린 태양등 오랜 수마와 풍화작용으로 이리저리 깎이며 대자연이 빚어낸 솜씨가 놀랍고 신비했다. 붓으로 그려놓은 산수화처럼 부드럽기도 하고 때로는 깎아 놓은 절벽처럼 힘차고 웅장했다. 멋진 수반에 담아 진열해 놓으면 이름 모를 돌도 어느새 예술작품이 되었다.
몇십 년을 우리 가족과 같이 지내며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던 돌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고민거리가 되었다. 돌집을 팔기로 하면서 그 많은 돌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심하다 마당이 있는 서울 근교의 친척 집에 잠시 맡기기로 했다. 언젠가 아버지의 꿈인 자그마한 돌 전시관을 지을 때 다시 찾아오리라는 우리의 희망을 간직한 채 돌들이 떠나갔다.
옛집에서 돌과 함께 보냈던 소소한 기억들이 떠오른다. 온갖 모양의 돌들이 펼치는 자연을 배경으로 돌을 설명하고 자랑하는 아버지, 돌을 구경하는 손님에게 정성으로 차를 대접하며 분주하게 마당을 왔다 갔다 하던 어머니의 모습… 돌집의 기억은 내게는 늘 평화롭고 아름다운 기억을 안겨준 그리움의 장소였다.
이제 그 꿈이 이루어졌다. 먼 길을 떠돌던 아버지의 수석이 아름다운 정원에서 다시 한번 눈부신 순간을 맞이할 생각을 하니 뿌듯하고 가슴이 벅차오른다.
아버지가 무지갯빛 정원에서 환하게 웃고 계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