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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잘린송 Feb 20. 2022

9일째

요즘 나의 일과는 아침 9시에 면회 한 번, 그리고 오후에 의사와의 면담 후 면회 한 번, 그리고 밤 9시에 면회 한 번 이렇게 하루에 세 번 루퍼트를 만난다. 루퍼트는 아직까지도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하기 때문에 나를 볼 수 없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내 냄새가 베인 옷 몇 가지를 챙겨 녀석이 외롭지 않게 해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매일같이 옷을 가져간다. 새 옷을 가져가면 다음 날 루퍼트의 오줌이 뭍은 옷을 집에 다시 가져오는 식이다. 병원 의료진들에게 너무나도 감사한 것은, 바쁜 와중에도 잠깐씩 이렇게 내가 루퍼트에게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할 수 있도록 협조해 주는 태도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루루가 아프고 나서, 입원을 좀 오래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가족들에게 조차 알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금방 좋아질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틀이 지나고, 삼일이 지나고... 삼일 째엔 죽을 고비를 넘기고, 안락사 직전까지 가게 되었는데 나를 보고 기적적으로 강아지가 기운을 차리는 바람에 치료는 중단되지 않았다.

루퍼트가 죽는다, 믿을 수가 없는 현실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실 이때부터 '펫로스'를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 조금씩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루퍼트가 떠나버릴 가능성이 정말로 컸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를 충분히 해 놓는 게 좋겠다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이 아플 때는 일단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서 상태를 알려주고, 동물 자신이 만나본 보호자의 주변 사람들의 사랑과 응원의 말을 듣는 것이 좋다고 한다. 동물들은 관종이라, 누군가가 자신을 신경 쓰면 좋아하고, 그럼으로써 살고자 하는 의욕이 더 생긴다고.

나는 그래서 인스타그램에도 글을 올리고, 일면식 없는 사람들이 있는 단톡방에 '우리 강아지가 아픈데, 응원의 말 부탁한다'는 글도 올렸다. 세상이 그다지 각박하지 않은 것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걱정과 격려를 해 주었고 가장 감동적인 것은 나와 루퍼트를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이것이 기적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루퍼트의 목숨은 수많은 사람들의 응원으로 인해 며칠 더 연장된 기분은 확실히 든다. 기적은 또 다른 기적을 낳은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루퍼트는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고, 나도 마음이 조금씩 편해지기 시작했다. 곧 퇴원이 가능할 것 같다는 말도 나왔고 해서 언제 내가 울고불고 했느냐는 듯 한 기분도 경험했다.

그러나 다음날 바로 루퍼트의 상태가 악화되었고, 나는 또다시 사람들에게 사랑을 동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그게 전혀 비참하지 않았다. 받을 수 있는 사랑의 규모는 잴 수 없기 때문에. 단 한 마디라도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걱정과 사랑의 말을 담는 것은 쉬운 일도 아니므로, 모두가 그것을 해 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꽤 많은 사람들의 응원이 있어서 행복했다. 그 정성이 모여지니 또다시 루퍼트가 죽을 고비를 두 번째 넘기게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동물들은 인간들과는 정말 다른 존재 같다. 일단 우리와 언어도 다르고, 특히 사랑을 하는 방식도 인간들과는 전혀 다르다. 인간끼리의 사랑에는 조건이 있지만 동물은 그런 것이 없다. 전부 주는 것이 사랑이다. 하지만 동물이 인간의 사랑을 필요로 할 때, 자신들이 우리 인간에게 주는 사랑 방식과 같길 바라지 않을까? 혹여나 마지막 순간이라도, 무조건 적인 사랑을 필요로 한다면... 그렇다면 내가 그 사랑을 만들 것이다. 루퍼트가 원하는 사랑, 그 규모가 얼마나 큰 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받게 해 주고 싶었다. 녀석은 평소에도 모르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을 좋아했으니. 이번 일로 덕분에 난, 사랑의 힘을 믿게 되었다. 이것도 또 다른 기적이라면 기적이랄까. 내 안에서의 기적.


오늘 루퍼트의 상태는 이뇨제를 추가하여 폐에 물을 다 빼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고, 어제보다는 편히 숨 쉬고 있고, 어제오늘 계속 잠만 자더라. 하긴 일주일 내내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낯선 곳에서 얼마나 무서웠을지,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쉴 수 있을 때 푹 쉬고, 아픈 것을 이겨내자 강아지야. 호흡수도 조금은 안정적이고, 물론 코에 튜브를 넣어서 식사와 식음을 하고 있지만, 그나마 밥심이 생겼으니 마음도 편해졌을 것이다. 무엇보다 병원에 9일이나 있게 되었으니, 이제 그 환경에서 적응하여 사는 것 같아 보였다. 그게 좀 안심이 되었다.


오늘 오전에 병원에 다녀와서 타로 리딩을 했다. 루퍼트의 검사 결과가 궁금하여 미리 조금 엿보고 싶었다.

사실 이건 감으로 보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내가 이렇게 절실하게 무언가를 생각하면 영적인 연결이 생기는 것 같다. 루퍼트의 검사 결과는 장기적 치료가 될 것이다라고 나왔다. 실제로 오후에 의사와의 면담에서도 그런 결과가 나왔고.


집으로 와서는 루퍼트의 마음이 궁금하여 또 카드를 펼쳤다. 루루의 마음은 이러하다.


"치료는 오래갈 거 같은데 엄마는 걱정이 너무 많아. 슬퍼하고 부정적 생각하면 내가 다 느낀다고. 우리는 연결되어있다는 거 잊지 마. 엄마가 슬프면 나도 슬프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하란 말이야. 엄마의 그 힘은 사실 나를 더 살고 싶게 해. 흔들리지 말고 정신 붙들어 매고 있어. 근데 나 조금 심심해."


참고로 타로 리딩은 지난번 좋아질 거라고 했다가 다시 안 좋아지는 바람에 내가 심장병이 걸릴 것만 같아 조금은 마음의 준비라도 해 두고자 매일같이 보게 되었다.

나도 이상한 경험을 하고는 있다. 루퍼트에 대한 것은 정확도가 꽤 높은 편인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카드를 뽑을 때 마다 심장이 철렁거려서 이제는 내 수명이 짧아지는 것 같다...


내일은 또다시 약물치료를 조금 달리 한다고 한다.  견딜  있을지... 하지만 내가 그저께 들었던 목소리가 신의 목소리라면,  번째부터 실수를 만회한다니까, 영적인 것을 믿어보아야지. 그리고 루퍼트도 내가 무조건 긍정적으로 있길 원하고 있으니까. 내가 행복하면 녀석도 행복하다니까 그렇게 지내보아야지.

아무것도   없다 생각했지만 내가   있는 일이 생긴 , 내가 생각보다 무능하지 않다는 .

이것도 기적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루퍼트를 그리면 왠지 더 곁에 있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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