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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잘린송 Sep 24. 2021

밤이 길어진다

겨울에 대한 단상

연휴 마지막 날이었던 어제는 추분.


밤이 길어지는 첫날이었다.


밤이 길어지는 날이라는 말은 이상하다. 시간은 공간 속에서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주어진다는 말이 왜 생각나는 건진 모르겠다. 여기서 길어진 밤은 시간일까 공간일까 조금 헷갈린다. 어둠이라는 시간이 길어진 거냐, 공간이 길어진 거냐- 결국엔 같은 말인가?


길어지는 밤에 귀뚜라미마저 울지 않는 겨울이 찾아오면  발엔 검정 부츠가 신겨져 있을 것이다. 축축한 가을 낙엽 바스락 거리지도 않을 소리에 어쩐지 눈이   같은 기다림을 가질 것이다-기다란 코트 사이로 파고 들어오는 겨울바람 귀가 떨어져  것만 같은 한파에 견디기 힘들 것이다- 그러다 달력을 보면 오늘이 동지구나, 팥죽이라도 먹어야지 하는 날이  것이다. 가을이 오는  두려운 이유는 겨울이 언제라도 바로 시간의 문턱으로 넘어올 기세를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겨울이 두렵다. 얼어붙을  같은  정신은  바람에 휘청대기 일쑤다. 이건 두려움에 가까운 감정이다. 세상 모든 삭막함이 압축되어 겨울바람 타고 온다는데 내가 바람을 멈출 수도 없는 , 그래서 더 무서운 일.


창문마저 얼어붙는 겨울날엔 장독대에서 막 꺼낸 살얼음 낀 배추김치에 흰쌀밥 한술 떠 돌돌 말아먹어야지, 동치미 국물에 국수 말아먹어야지, 차갑게 식은 찹쌀떡 한 개 집어먹을 거야 그리고 따뜻한 정종 한 모금에 얼굴이 달아오르면 기분이 좋으니까 또 너에게 전화 걸어야지.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네 웃음소리 마음속에 간직하고 예쁜 루퍼트 얼굴 보면서 어제 까놓은 귤껍질 냄새 맡으며 따뜻한 이불속에서 잠들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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