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대한 단상
연휴 마지막 날이었던 어제는 추분.
밤이 길어지는 첫날이었다.
밤이 길어지는 날이라는 말은 이상하다. 시간은 공간 속에서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주어진다는 말이 왜 생각나는 건진 모르겠다. 여기서 길어진 밤은 시간일까 공간일까 조금 헷갈린다. 어둠이라는 시간이 길어진 거냐, 공간이 길어진 거냐- 결국엔 같은 말인가?
길어지는 밤에 귀뚜라미마저 울지 않는 겨울이 찾아오면 내 발엔 검정 부츠가 신겨져 있을 것이다. 축축한 가을 낙엽 바스락 거리지도 않을 소리에 어쩐지 눈이 올 것 같은 기다림을 가질 것이다-기다란 코트 사이로 파고 들어오는 겨울바람 귀가 떨어져 갈 것만 같은 한파에 견디기 힘들 것이다- 그러다 달력을 보면 오늘이 동지구나, 팥죽이라도 먹어야지 하는 날이 올 것이다. 가을이 오는 게 두려운 이유는 겨울이 언제라도 바로 시간의 문턱으로 넘어올 기세를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겨울이 두렵다. 얼어붙을 것 같은 내 정신은 찬 바람에 휘청대기 일쑤다. 이건 두려움에 가까운 감정이다. 세상 모든 삭막함이 압축되어 겨울바람 타고 온다는데 내가 바람을 멈출 수도 없는 일, 그래서 더 무서운 일.
창문마저 얼어붙는 겨울날엔 장독대에서 막 꺼낸 살얼음 낀 배추김치에 흰쌀밥 한술 떠 돌돌 말아먹어야지, 동치미 국물에 국수 말아먹어야지, 차갑게 식은 찹쌀떡 한 개 집어먹을 거야 그리고 따뜻한 정종 한 모금에 얼굴이 달아오르면 기분이 좋으니까 또 너에게 전화 걸어야지.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네 웃음소리 마음속에 간직하고 예쁜 루퍼트 얼굴 보면서 어제 까놓은 귤껍질 냄새 맡으며 따뜻한 이불속에서 잠들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