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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잘린송 Feb 06. 2022

별이 되다

볕이 좋은 아침이다. 아니 이제 곧 정오이다. 창문 유리를 관통하고 내리쬐는 햇빛을 마주한 채 바닥에 앉아있다. 내 발 밑엔 반려견 루퍼트가 앉아있고.

루퍼트는 2008년에 태어났으니 지금이 2022년이니까, 13살이  넘은 노견이다. 늙어서 아픈 곳이 많아 약으로 버티는  치고는  건강한 편이다. 다달이 나가는 병원비가  부담스럽긴 하지만, 돈으로 해결되는 문제라면 차라리 나은 거지.

하지만 지금부터 마음의 준비는 해 놓아야 하겠지. 녀석의 지병은 악화되어가고, 또 나이도 더 들어가니까. 지금의 평화로운 햇빛 아래에 있는 순간도, 차분한 공기도 모두 과거형이 될 테고, 그래서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것은 추억이고... 추억으로 인해 잠시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이 내겐 곧 찾아올 것이니까.


그런 순간을 맞이했던 아침에 며칠 전 친언니가 키우던 고양이가 별나라로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고양이는 18살의 검정 턱시도 고양이었다. 우리는 처음에 친했지만, 노는 과정에서 내가 너무 승부욕을 자극시켜 자존심을 다치게 해 화가 났었나 보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고양이는 나를 보면 하악질을 하고 도망가더라.

우리가 화해하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나를 보고 반갑다고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애교를 부린 것이 불과 몇 년 전이다. 그때부터 이미 녀석은 지병이 있었고 하루에 수액을 두 번이나 맞아야 하는 곤욕을 치렀었다. 등에 꽂히는 바늘이 꽤 두꺼웠는데 매일 두 번씩 찔리고 나니 이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아파하지도 않았었다. 그걸 3년 넘게 해 왔고 아니 4년이었나, 그러다 증세가 악화되어 쓰러졌고 언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녀석을 살리려고 했건만, 한 달 채 버티지 못하고 끝내 별나라라고 떠났다는 이야기.

며칠 전 병문안엘 갔는데, 그 만남이 마지막이었다니. 그래도 가기 전에 인사라도 할 수 있었다.




사랑하는 대상이 사라지지만 그 사랑은 마음에 남아있다. '나는 녀석을 사랑했다...'가 아닌 나는 아직도 그 고양이를 사랑한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실체는 죽어 없어졌다. 손을 뻗어 그 따스함을 느낄 수 없고 심장박동도 숨소리도 들을 수 없다. 이것을 생명이라 한다면- 또 그 생명이 붙어 있는 존재를 우리가 사랑했다면 그것이 사라지는 순간 사랑도 사라져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의 감정은 그대로다. 사랑만큼 모순적인 것은 여태껏 살면서 경험한 적이 없다...


내가 정말 사랑했던 것은 무엇일까? 내가 사랑했던 것, 살면서 수많은 존재를 만나오며 사랑했던 것, 물리적인 거리가 생기면 마음도 자연스럽게 멀어지지만 여전히 그것들을 떠올리면 마른 뿌리에 물이 닿으면 싹을 틔우는 식물처럼 다시 솟아나는 감정, 사랑. 대상이라는 겉껍데기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대상의 마음과 영혼을 사랑한 것일까? 그렇다면 왜 자연은 이토록 모든 것이 가시적인지, 모든 사랑의 대상은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일 텐데.


사랑은 어쩌면 형태를 사랑하는 것이 아닌 그 이면에 숨겨진 나의 무의식이 사랑할 수 있는, 내게 결여된 무언가를 상대에게서 찾아 심리적 보상을 얻는 것일까? 나라는 사람이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고 의지하는 동물들을 보면서 인간으로 태어난 것만으로도 죄의식을 가지게 하지만, 또 그들에게 도움과 보살핌을 줄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들게 하기에 그 죄의식은 덜어지게 된다. 동물을 사랑하는 나의 마음은 이러하다. 적어도 내가 막돼먹은 인간은 아니라는 마음을 가지게 하므로. 내게 있어 사랑이란 이런 감정이다. 나눌 수 있는 것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그런 마음. 내 반려견 루퍼트에게서 받는 것은 무한대지만, 그만큼 나도 돌려줄 수 있다는 것에서 나는 나 자신의 의미를 찾기도 한다. 이런 마음은 우리 언니도 마찬가지로 들었을 것이다. 고양이와 언니의 관계가 그러했을 것이다. 서로 의지하고 줄 수 있는 것들을 공유했을 것이다. 이제 녀석은 지구 상에 없다. 사랑은 언니의 마음 안에만 있다. 내 마음에만 있다. 고양이의 영혼도, 마음도 모두 언니 안에만. 결국 사랑은 서로 사랑하는 존재들 사이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그런 걸까? 사랑은 결국 기억인 걸까? 그렇다면 멀어져 간 사랑에 대한 기억이 내 안에서 지워지지 않는 한 사랑은 영원한 것이다.


사랑이 멀리 떠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 우주 안에 들어와 하나의 빛나는 별이 된 것이다.


나는 오늘 눈물을 흘렸지만 언젠가 루퍼트가 별이 되는 날, 울지 않고 별이 되었음을 축복해 줄 수 있는 강한 사람이 되어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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