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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 Aug 04. 2021

덴마크의 첫인상: 대학, 인권 감수성, 역사적 이해

첫인상: 유학, 인권 감수성, 역사적 이해의 차이


2016년 9월부터 덴마크에서 유학생으로 지낼 때, 나는 이곳을 관찰하는 외국인의 태도였고, 현지인들도 그렇게 나를 대했다. 워낙 영어에 유창한 덴마크인들이기에 덴마크 언어를 당장 배워야 한다는 부담이 없었다. 당시 첫 외국 유학이었던 나는 영어 논문 읽기도 벅찼고 게다가 성서와 코란을 독해하기 위해 그리스어, 아랍어까지 배웠어야 했다. 나를 이곳에 적응/통합 Integration 시킨다는 것을 상상하지도 못 할 때였다. 현지인들로부터 덴마크의 소소한 전통과 사회와 사람들의 특징을 소개받는 정도. 대학은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오고 가는 국제적인 공간이라서 내가 이방인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다른 각도에서 보는 역사


다만 전공과목 시간에, 유럽의 역사에만 집중해서 다룰 때, 거리감이 느껴졌다. 예를 들어 ‘로마의 종교’라는 과목에서는, 세 아브라함의 종교를 비롯하여 파간 적 믿음의 흔적을 찾아 로마 유적지를 고고학자와 함께 돌아다녔다. 한데 로마와 근동지역, 인도 문화와의 교류, 간다라 미술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세 종교와 관련해 근대 국가의 세속화, 사회 내 종교 분쟁에 대해 다룰 때도, 유럽 내의 분쟁 케이스들만 다루었다. 유럽을 벗어난 아시아에 대한 시각을 말할 틈이 없었다.


당시에는 이 석사 과정의 타이틀 자체가 '유럽 종교의 기원'이니까, 아시아와 연결된 사례를 다루지 않음에 비판할 근거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세속 국가 내에서 이슬람 전통의 위기/도전/문제에 대해 다룰 때, 무슬림들이 겪었던 식민주의 시대와 근대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었고, 그때 처음으로 교수에게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서구 열강은 식민주의 시대에 자기네 메트로폴에 있었던 역사는 다루어도, 그들이 식민화시킨 지역의 역사와 그곳 사람들의 경험에 대해서는 깊게 교육하지 않는다는 것을… 예를 들어 학사로 철학을 전공한 베트남-프랑스 출신 친구는 프랑스의 식민지 역사에 대해 전혀 할지 못했다. 영국의 커먼 웰스 정도는 들어봤다고 했다. 이런 무지는 이민자가 늘어나는 다문화 국제화 사회에서 교육의 문제와 개선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비판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 첫 번째 예로 3명의 핀란드 교육학자가 탈식민주의 학자 미뇰로를 집중적으로 인용하며 쓴 논문을 인상 깊게 읽었다. 그들은 다른 종교와 문화를 지닌 이민자에 대한 교육이 '통합 Integration'이 아닌, 서구 현대 공간 안의 식민주의적 타자를 재현하는 또 다른 '길들임 Domestication'이 될 위험성을 지적했다. 유럽의 세속적 교육이 중립적이고 모든 종류의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여겨지지만, 그것은 보편주의의 차별을 기반으로 한 세속적 체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종교 교육을 아예 삭제한 세속적인 프랑스 교육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

그러므로 인식론적 다원주의 Plurality of Epistemologies을 존중하기 위해서, 첫째, 학교는 다양한 인식론을 기반으로 한 세계관들에 대해 아이들이 주의를 기울일 수 있도록 격려하고, 두 번째, 아이들이 '분류, 분리, 종교적 타자성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Poulter, Saila, Riitaoja, Anna-Leena, & Kuusisto, Arniika, 2016, Thinking Multicultural Education "Otherwise"--From a Secularist Construction towards a Plurality of Epistemologies and Worldviews. Globalisation, Societies and Education, 14(1), 68-86.)


위 논문과 같은 맥락에서 인도 출신의 학자, Gokulsing도 인식론적 다원주의 Epistemological Pluralism에 대해 주장한다. 영국의 예를 들면서, 이민자들이 이 나라의 모든 분야에서 기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다른 영국 시민들과 같은 시민으로 평등하게 인식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이민자들의 통합을 위해서는 국가 교육 커리큘럼에서 문화적 다양성이 반영된 이민자들의 신앙에 대한 모듈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세계 2차 대전 이후, 전 커먼 웰스의 시민들의 기여와 참여가 역사 커리큘럼에 포함되어, 문화 간의 대화 및 다양한 문화적 특색 토의하고, 유럽 중심적 담론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Gokulsing, K. Moti, 2006, Without Prejudice )



권위와 서열이 없는 학교


나는 덴마크 복지의 많은 혜택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도 받고 있다.

전공 교수님의 배려로 나를 포함한 외국인 학생들은 우수학생 장학금을 받아서 전 학비를 면제받았다. 학생 비자를 받자 덴마크 공공의료시스템의 수혜자가 되는 이 사회복지 시스템이 고맙고 놀라웠다. ( 3-5년 뒤, 공공의료시스템이 하향 평준화되어 그로 인해 사립병원을 사용하게 되는 자유주의화되는 경향이 보이기 시작한다.)

교수들의 권위의식이 없는 것도 놀라웠다. 교수는 조교가 없이 혼자서 강의, 행정적인 업무 (학생들의 필드 트립 경비 지원과 학생들 입학, 시험, 수업 등록과 취소 등의 관리)를 다 처리했다. 교수와 학생들의 면담 시간에는 교수가 차와 다과를 준비하고, 학생들은 가만히 앉아있는, 한국과 지극히 다른 모습. 수업시간에 교수들은 학생들의 쏟아지는 질문과 비판에 긴장했고, 수업 진도를 나가기 위해, 학생들의 질문을 애써 말려야 했다. 이렇게 학교라는 공간에 서열이 없고, 교수라는 직함에 권위가 없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 이 부분이 한국을 떠나 덴마크에 왔을 때, 가장 만족함을 느꼈고, 다시 한국에 돌아가려고 할 때, 가장 어려움을 겪을 부분일 것이다.  


인권 감수성: 인종차별에 대한 주의


덴마크의 인권 감수성에 대해 이질적으로 느낀 두 사례가 기억에 남는다.

그 첫 번째가 무하마드 드로잉과 관련한 표현의 자유 이슈 관련 논란이었다. (Flemming Rose: The Reluctant Fundamentalist: How the man behind the Danish cartoons crisis thinks about free speech, 10 years on)

이 논란은 그때도 지금도 굉장히 민감한 사항이고, 파트너와 내가 처음으로 정치적 의견에서 크게 부딪힌 이슈기도 했다. 내 파트너는 ‘이민과 이주’ 학부의 학생이 주최한 워크숍에서 이 이슈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주장했다가 한 아프리카 출신 여성 시인과 논쟁을 벌이고 나는 그것을 중재하려다 거의 쫓겨난 적이 있다.

내가 속했던 석사 과정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 또한 무하마드 드로잉과 관련이 있다. 무하마드 드로잉과 테러 등으로 이슬람포비아의 현상이 팽배하면서, 이러한 현상과 이슈를 어떻게 객관적인 사고와 다양한 역사적, 사회적 정황을 이해한 상태로 논의할 수 있는 학생들을 배출하기 위해 북유럽의 여러 대학과 교수들이 뜻을 모아 만들었다고 들었다. (2016년 로마 세미나에서, Anders-Christian Jakobsen)


그 두 번째는 2017년 덴마크 국립 도서관에서 열린 전시, Blid Spots. Images of the Danish West Indies colony에서 본 아프리카 노예선을 테트리스로 만든 게임과 그 개발자의 인터뷰 영상이다. 덴마크 아이들에게 식민지 역사를 교육하기 위해서, 아프리카인들을 노예선 안에 테트리스로 끼워 맞추는 게임을 만든 그 감수성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Is Slave Tetris Educational Or Really Racist?

2020년 한국 고등학생들의 흑인 분장 졸업사진과 그에 샘 오취리가 자신의 지적에 결국 사과하는 사례가 생겼을 때, 나는 내가 설 수 있는 지지대가 더욱 협소해지는 것을 느꼈다. 한국인으로서 유럽인들의 모순에 대해 지적할 나의 자격이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위의 두 이슈를 표현의 자유, 모든 것을 개방하여 말하는 자기네 문화의 일부, 덴마크인 특유의 아이러니식 표현이라고 설명하는 그들에 익숙해지기까지, 또 그에 대해 나는 어떻게 비판해야 하는지 나만의 시선을 만들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잘 훈육된 한국인 고정관념


유럽에서 한국인은 국가들 사이 경제적 서열 순위가 높은 국가 출신이기에 상대적으로 서양인들에 긍정적으로 인식된다. 한국은 삼성이라는 글로벌 기업으로 알려진, 일을 빠르게 잘하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며 급성장한 나라로 그들은 알고 있다. 그 성장에 피와 살을 내준 한국의 노동자들과 성장의 이면은 잘 알지 못했다.


각기 다른 나라가 겪은 근현대화와 그것이 모양 지은 각기 다른 사회의 현 모습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극도로 자기 규율적인 한국 사회는, 서구 사회 보다 더 근대화된,  울트라 모던 사회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코로나에 대한 각기 다른 정부와 사회의 대처방식을 본 이후, 이러한 이야기들이 벌어졌다.)


재벌들의 나라인 한국의 경쟁성장과 이윤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하면서도, 그로 인해 외국에서는 상대적으로 긍정적으로 인식되는 한국 출신인 내 상황이 모순적이라 느꼈다. 한국의 기업들이 내어놓은 성과와, 일본의 심미적인 전통과 문화를 높이 평가하는 반면, 중동 이민자들의 국가와 문화를 저하하며 보는 이들을 보며 씁쓸했고, 역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을 느꼈다.


더군다나 한국과 비교하면 덴마크는 남녀평등에 대한 인식이 높고 평등과 빈부격차 해소에 대한 사회적 제반시설과 제도가 잘 마련되어있다. 모두에게 마련된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이러한 시스템의 이득을 보고 있는데, 또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매일 비인권적 환경에서 일하고 산재사고가 계속 일어나고 있는데, 이곳에서 내가 한국인으로서 살면서 나의 작은 인권이 침해를 받았다고 어떻게 소리 높여 이야기할 수 있겠나.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 미묘한 차별과 모욕에 대해 내가 말을 꺼낼 염치가 있을까?


하지만 이것들에 대해 더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이, 반복되며 경우에 따라 더 증폭될 수 있는 인종차별을 비판하고,  우리의 미래를 함께 그리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소화하며 관련 글을 계속 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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