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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경아 Aug 03. 2015

[노래소설] 리쌍의 "광대"

웃픈 인생의 시작...

>>리쌍의 광대 노래 듣기


나는 4살이다. 그리고 지금 열심히 춤을 추고 있다. 그것도 일가친척들이 모두 모인 공식적인 자리에서 말이다. 물론, 이 춤은 얼마 전 TV에서 보았던 형과 누나들의 춤이다. 내 동작 하나하나에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는 것을 느낀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내가 춤을 즐긴다고 착각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는 춤을 추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저 나는 내 나이에 맞는 광대 짓을 하고 있을 뿐이다. 4살이 된다는 건 그래서 참 어려운 일이다.


나도 원래 이런 사람은 아니었다. 3살 때까지만 해도 남들 앞에 나서는 걸 누구보다 싫어했다. 하지만, 놀이방에 다니면서부터 그렇게 해서는 더 이상 편하게 먹고살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나는 이런 고단한 인생이 벌써부터 숨이 막힌다. 이렇게 몇 년을 더 살아야 하는 걸까? 그때가 되면 또 다른 방식으로 힘들어지겠지? 갑자기 인생 자체가 허무하게 느껴진다. 문득 아기 시절이 그립다. 1~2살 때까지만 해도 울기만 하면 모든 식구들이 어떻게든 내 비위를 맞추려고 애를 썼다. 말을 하게 되면서부터 모든 것이 변했다. 아마도 2살 무렵이었을 거다. 우는 나를 달래며 엄마가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래, 지금 마음껏 울어. 지금이 제일 좋을 때니까. 이제 조금만 더 크면 이런 응석도 아무 소용없을 거야! 알아들어?” 

지금 생각해도 어릴 때 먹었던 우유가 다시 올라올 만큼 끔찍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다. 지금 내가 춤을 추며 사람들에게 재롱 아닌 재롱을 부려야 하는 것도. 


간혹 머리가 나쁜 애들은 내 나이가 되어도 1~2살처럼 무조건 울면서 떼를 쓰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절대 편한 유년시절을 보낼 수 없다. 한두 번 정도는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때뿐이지 점점 더 삶이 힘들어진다. 좀 더 거시적인 안목을 가지고 어른들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알아야 내가 원하는 것을 조금 더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요즘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른들이 가지고 다니는 스마트 폰이다. 스마트 폰 안의 세상은 정말 놀라웠다. 하지만 어른들은 4살 먹은 꼬마에게 그런 스마트 폰을 사주지 않는다. 치사하고 더럽지만, 스마트 폰을 가지기 전까지 나는 이렇게라도 어른들 스마트 폰을 빌려 써야 한다. 특히 오늘은 친척들이 모두 모인 날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기종의 스마트 폰을 골고루 만져볼 수 있는 날이다. 그래서 지금 나는 혼자 고독하게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쉬운 일은 절대 없다. 최선을 다해 공들인 내 작업에 불청객이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내 화려한 무대에 뛰어든 불나방 같은 녀석은 아빠의 동생, 그러니까 고모의 아들이었다. 나이는 한 살 반. 그러니까 20개월도 되지 않은 애송이였다. 이제 걸음마를 막 떼고 세상 무서운 줄도 모른 채, 뛰어다니기만 하는 생각 없는 녀석이다. 그런 녀석이 나의 고귀한 무대에 갑자기 뛰어들더니, 정말 우습지도 않은 동작으로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정말 춤이라고 할 수도 없는 몸부림이었다. 그런데 어른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모든 시선이 그 녀석에게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우습지도 않은 녀석의 몸부림을 보면서 어른들은 박수까지 치며 좋아했다. 그랬다. 이미 나는 그 한 살 반밖에 안 되는 녀석에게 밀려 백댄서가 되어 버린 것이다. 결국 나는 춤을 멈추고 어딘지도 모를 구석을 찾아 주저앉아 버렸다. 여기서 서러운 것은 아무도 내가 춤을 멈췄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심지어 엄마와 아빠조차도. 화가 난다기보다 슬펐다.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뒤덮여 얼굴 주변이 온통 축축해졌다. 그렇게 절망에 빠진 사이, 녀석은 지칠 줄 모르고 연신 몸을 우스꽝스럽게 흔들었다. 설마 저 녀석은 벌써부터 깨달은 걸까? 어쩌면 녀석은 나보다 훨씬 더 세상을 빨리 알아차린지도 모르겠다.


서러움이 복받치던 그때 엄마가 내 곁으로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리고 말없이 나를 꼭 안아 주었다. 역시 엄마밖에 없었다. 그런데 뒤에서 나를 꼭 안았던 엄마가 내 양손을 잡더니 함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저 엉터리 같은 동작에 맞춰 내 손뼉을 치게 만든 것이다. 태어나 이런 굴욕은 처음이었다. 엄마는 나의 이 모멸감을 상상치도 못한 채, 계속 내 손을 잡고 신나게 박수를 쳤다. 내 손은 이제 더 이상 내 의지대로 움직이는 손이 아니었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치욕스러웠다. 어쩌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이런 치욕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방법을 깨닫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으앙!”

멋도 모르고 춤을 추던 그 바보 같은 녀석이 갑자기 넘어졌다. 그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쌤통이었다. 녀석에게 혀를 내밀며 놀려주고 싶었지만, 이 좋은 기회를 날려 버릴 수는 없었다. 망설임 없이 나는 녀석보다 더 큰 목소리로 따라 울었다. 그제야 불공정한 판이 깨지고 공평해졌다. 어른들은 현명하게 녀석과 내 입을 틀어막을 수 있는 각각의 대처 방안을 마련했다. 덕분에 녀석의 손에는 달콤한 요구르트가, 내 손에는 한 번도 만져 본 적 없는 새로운 기종의 스마트 폰이 쥐어졌다. 인생은 또 이런 맛에 사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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