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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경아 Sep 16. 2015

[노래 소설] 양희은의 "산책(with이상순)"

내 눈 가득 담고 싶은 당신의 뒷모습...

저만치 앞서서 성큼성큼 걸어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편은 살이 빠지고 어깨가 조금 굽었지만, 젊은 시절 내가 좋아했던 그 모습 그대로인 것 같다. 나는 그런 남편의 뒷모습을 오늘도 내 눈 속에, 내 기억 속에 가득 담아본다.

 “뭐해? 빨리 안 오고!”

앞서 걸어가던 남편이 뒤돌아보며 뒤쳐진 나를 재촉했다. 남편은 잠시라도 내가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사람이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비교적 사이좋게 꽤 오랜 세월을 살았던 것 같다. 사랑보다는 의리로 살아온 지난 세월이 그리 녹녹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두 사람은 다른 부부들에 비해 각별했고, 또 애틋했다.

  “좀만 천천히 가! 급한 일도 없으면서 뭘 그렇게 빨리 가?”

내가 그렇게 투정을 부리자, 남편이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는 괜히 하늘을 쳐다보는 척하며 나를 기다려준다. 나를 기다리는 남편의 뒤통수를 바라보다가 울컥 울음이 차오른다. 힘겨웠던 지난 몇 년의 시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건강하다고 믿었던 남편이 하루아침에 대장암 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목숨이 위험할 정도의 심각한 상태는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암이란 것은 그리 쉬운 병이 아니었다. 남편은 수술만 받으면 괜찮을 거라고 담담하게 말했지만, 나는 남편처럼 담담할 수가 없었다. 세상의 전부였던 남편이 나를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나를 자꾸만 옥죄어 왔기 때문이다. 마치 엄마 손을 놓쳐 버릴까 두려운 아이처럼 꼭 잡고 있던 남편의 손을 놓치게 될까 봐 나는 두려웠다. 덕분에 위로를 받아야 할 남편은 오히려 나를 위로해줄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되었다.


##


 “아니, 나 없으면 도대체 어떻게 살려고 그래?”

내가 남편에게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다. 그때마다 남편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남편은 내가 없으면 혼자서 라면도 제대로 끓여 먹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친구들은 내가 남편을 그렇게 길들였기 때문이라며 오히려 나를 나무랐다. 그런 친구들의 질책을 부인하고 싶었지만, 부인할 수가 없었다. 아이가 없는 내게 남편은 내 아이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남편에 대한 모든 것을 내 손으로 해주어야 직성이 풀렸던 것이다.


다행히 남편의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1차 항암치료 또한 잘 견뎌냈다. 남편이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하고 나자, 나는 서둘러 남편에게 집안일 이것저것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세탁기 사용법, 전기밥솥 사용법 등등 남편이 쉽게 배울 수 있는 일들부터 시작해 지금은 간단한 빨래와 끼니를 때우는 방법까지 학습의 강도를 점점 높였다. 물론 처음에 남편은 이런 내게 불만이 많았다. 이제 겨우 건강을 회복한 사람에게 왜 이런 일까지 시키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남편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도 이제 혼자 남을 준비를 할 나이가 됐잖아.”

남편은 그날 이후 별 다른 불만을 표현하지 않았다. 남편도 나의 마음을 이해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60대가 되었다. 아이가 없는 우리 두 사람이 함께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니 우리는 서로가 없는 세상을 준비시켜야 하는 것이다.  


##


 “뭘 그렇게 자꾸 쳐다봐?”

나란히 걷던 남편이 무심하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아까부터 남편의 옆얼굴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왜? 좀 쳐다보면 안 돼? 닳는 것도 아닌데.”

 “그러다 당신이 넘어질까 봐 그러지!”

남편의 걱정에 피식 웃음이 났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남편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남편과 나란히 걷는 지금의 행복이, 여유로움이 그 어떤 순간보다 좋았기 때문이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지금 이 순간순간들을 사진 찍듯 모두 담아둘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그렇게 사진을 찍는 것처럼 남편의 모습을, 이 순간의 행복을, 마음속 깊이 담고 또 담았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이별 준비라도 되는 것처럼.

 


                                          -끝-


>>양희은의 산책(with 이상순) 노래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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