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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경아 Mar 31. 2021

[노래 소설] 이승윤의 "달이 참 예쁘다고"

그날 밤처럼 오늘 밤도 달이 참 예뻤다.


친구가 보고 싶었다.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퇴근하던 길에 문득, 내 친구가 보고 싶었다.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휴대폰을 꺼내 문자를 보내려다 멈췄다. 마침, 친구가 머물고 있는 고시원과 가까운 역에 지하철이 멈췄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이번 역에 내려야 했던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지하철에서 내렸다. 내 구두는 무거웠지만, 내  발걸음은 가벼웠다. 텁텁한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니, 매캐한 매연 냄새마저도 왠지 반가웠다.


친구가 잠만 자고 있다는 고시원으로 갈까? 아니면 친구가 다니는 학원 근처로 갈까? 고민도 잠시, 나는 친구와 자주 들러 저녁을 먹었던 편의점으로 발길을 옮겼다. 1년 만이었다. 친구는 아직도 그 편의점에서 저녁을 먹을까? 자신은 없었지만, 왠지 모를 확신이 있었다. 설렘과 미안함이 내 걸음을 조금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편의점은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친구와 함께 다녔던 학원가와는 거리가 꽤 있었지만, 친구와 나는 굳이 여기 편의점까지 걸어와 저녁을 먹곤 했다. 편의점을 가기 위해 외진 골목을 걸어야 했지만, 다른 곳보다 비교적 하늘이 잘 보이는 골목이었다. 빼곡한 빌딩 숲 뒤편이었지만, 우리에겐 하늘을 보며 걸을 수 있는 유일한 산책로이기도 했다. 물론, 학원가 근처보다 사람이 적어 여유롭기도 했지만.


 “어이, 친구 오랜만이야!”

 “어! 언제 왔어?”


1년 만에 연락도 없이 찾아온 나를 친구는 바로 어제 만난 사람처럼 반겼다. 사실 친구가 반겨주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도 했었다. 친구와 함께 고시 준비를 하다가 1년 전 나는 고시를 포기하고 취직을 해버렸다. 친구는 갑작스러운 내 선택을 응원해 주었지만, 생활 자체가 달라진 우리 우정은 예전처럼 일상적인 편안함으로 유지되기 어려웠다. 서로가 서로에게 왠지 모를 미안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의 시간도 고민도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이 우리 관계를 서먹하게 만든 것이다.


 “먹고 싶은 거 다 골라봐. 오늘 내가 쏜다.”

 “진짜? 그럼 우리가 늘 군침만 흘리던 그 도시락 먹어 볼까? 제일 비싼 거.”

 “당연하지. 과일이랑 샐러드도 가져와. 오늘 먹고 죽어 보자.”


편의점 테이블에 음식을 올려놓고 보니 웬만한 한정식 못지않은 메뉴가 완성되었다. 푸짐한 저녁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컵라면을 빠트릴 수 없었다. 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친구와 나는 습관처럼 아직 풀리지 않은 면발을 젓가락으로 괜히 휘휘 저었다. 그래야 컵라면이 더 맛있어진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처럼. 덕분에 우리는 1년 전 어느 날처럼 편의점 저녁식사를 최대한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다.


 “오늘 너무 먹었다. 이따 공부하다 졸 것 같아.”

 “그럼, 커피도 마셔야지”

 “좋지.”


편의점에서 아이스커피 두 잔을 사들고 나오니 친구가 물끄러미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툭툭 어깨를 치며 아이스커피를 내밀었다. 친구가 웃으며 커피를 받았다.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모금으로 우리는 화려했던 저녁 만찬을 마무리 지었다.


 “시험 얼마 안 남았지?”

 “안 그래도 죽겠다. 시험은 코앞인데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내가 그거 무서워서 포기했잖아.”

 “그래서, 너는 지금 괜찮아?”

 “뭐가?”

 “살만하냐고.”

 “뭐 사는 건 다 만만치 않지.”

 “실은 아까 너 편의점 앞에 앉아 있는 거 보고 깜짝 놀랐잖아.”

 “그렇게 반가웠어?”

 “아니, 난 또 네가 회사 때려치우고 다시 고시 공부하러 온 줄 알고.”


친구가 내 어깨를 툭 치며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서로에게 미안하고 서운했던 마음이 그 웃음 하나로 사라진 듯했다. 그러자 갑자기 트림이 올라왔다. 오래 묵었던 소화불량이 이제야 해결된 것처럼. 친구도 마찬가지였는지 나를 따라 트림했다. 서로 얼굴을 찌푸리며 놀려댔지만, 덕분에 우리는 더 크게 웃을 수 있었다. 사실 몇 년 전에도 친구와 나는 이와 비슷한 감정을 공유한 적이 있었다. 친구는 원하던 대학에 합격해 대학생이 되었고, 나는  재수생이 되어 있던 때였다. 그때 나는 바쁜 대학생활을 즐기고 있던 친구에게 서운하면서도 막상 연락이 오면 왠지 모르게 친구가 부담스러웠다. 때문에 내가 대학생이 될 때까지 친구와 나는 서로 서먹한 사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입장이 바뀐 치금처럼.


 “이제 들어가 봐야지?”

 “아쉽지만 그래야겠네.”

 “시험 끝나면 또 보자. 내가 고기 사줄게.”

 “괜찮겠어? 시험 끝나고 너한테 완전 빌붙으면 어쩌려고.”

 “얼마든지.”

 “근데, 오늘 진짜 무슨 일 없는 거지?”

 “없다니까.”

 “나 살아있나 궁금해서 온 거야?”

 “아니.”

 “그럼 뭔데?”

 “그냥, 오늘따라 달이 참 예뻐서.”


친구는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피식 웃었다. 나도 따라 피식 웃었다. 친구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힘겨웠던 재수 시절, 친구는 뜬금없이 우리 집 앞에 찾아와 달처럼 둥근 빵을 내밀며 말했다. 오늘따라 달이 참 예뻤다고. 그래서 내 생각이 났다고. 서로의 마음이 다칠까 조심하느라 서로의 마음을 나눌 수 없다면 그게 어떻게 진짜 우정이겠냐고 나 자신을 탓했던 순간들이 그날 친구의 말 한마디로 모두 용서받는 기분이었다. 그날 밤처럼 오늘 밤도 달이 참 예뻤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친구가 보고 싶었나 보다.



>> 이승윤의 달이 참 예쁘다고 (노래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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