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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경아 Jun 03. 2016

[노래 소설] 타블로의 "집(feat. 이소라)"

나를 보호해주던 갑옷은 이제 내게 감옥이 되어 버렸다.


고민 끝에 성형수술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수술을 하기 전 친절한 의사는 부작용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그냥 형식적인 거라며 계약서에 서명을 해 달라고도 했다. 나는 선생님 말처럼 형식적으로 서명을 했다. 그 형식적인 서명이 주홍글씨처럼 내 얼굴에 남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성형수술은 완전히 실패했고, 눈을 제대로 감을 수조차 없는 흉측한 얼굴이 되었기 때문이다. 실패한 내 얼굴을 바라보며 의사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거라고 말했다. 이상했다. 왜, 있을 수 없는 일은 항상 내게만 일어나는 걸까?


의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재수술을 해 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재수술조차 시도할 수 없었다. 수술 후에는 집 밖에 나설 용기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세상도 그런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스스로 나를 집 안에 가두었다. 다행히 내 집은 나를 보호해주는 단단한 갑옷이 되어 주었다. 사람들의 날카로운 시선과 말들로부터 나 자신을 온전히 지켜주는 단단한 갑옷. 


<택배는 상자에 넣어 주시고, 벨을 한 번만 눌러 주세요!>


우리 집 현관문 바깥에 쓰인 문구였다. 이 문구 덕분에 나는 택배 아저씨들과 눈을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다. 다행히, 택배 아저씨들도 규칙을 잘 따라 주었다. 


##


그날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초인종이 울렸다. 바로 문을 열지 않고 기다렸다. 택배 아저씨가 복도에서 사라지기를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인기척이 사라지고 난 뒤,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었다. 평소대로 팔만 밖으로 내밀어 문 앞에 있는 택배 상자 안을 더듬었다. 택배 상자에서 택배를 꺼내려는 순간, 무언가 물컹한 것이 만져졌다. 깜짝 놀라 뒤로 자빠지면서, 현관문이 활짝 열렸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몰라 멍하니 바닥에 앉아 있는데 상자 속에서 무언가가 계속 부스럭거렸다. 두려운 마음보다 궁금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상자로 다가갔다. 상자 안을 들여다보니, 더러운 바닥 걸레처럼 생긴 강아지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강아지는 택배 상자를 물어뜯고, 그 안에 있던 원두커피봉지를 혀로 핥고 있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러다 문득, 내가 문을 열어 놓고 너무 오래 앉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기한 것은 내가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성형수술에 실패한 후, 극심한 공황장애 증세가 나타났다. 그래서 평소에 현관문을 열기만 해도 심장이 미친년처럼 날뛰고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아마도 저 녀석이 내 혼을 모두 빼놓은 모양이다. 근데, 이제 저 녀석을 어쩌지? 


##


그날 이후 나는 강아지를 “택배”라고 불렀다. 물론, 택배를 집안으로 들여놓고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목욕이었다. 비누질을 두 번쯤 하고 나서야 녀석의 털 색깔이 제 색으로 돌아왔다. 녀석의 원래 털 색깔은 아주 옅은 갈색이었다. 그렇게 택배는 털 색깔을 제대로 찾은 후에야 나와 동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처음에 택배는 나와 내 집을 무척 경계했었다. 하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내 집은 어느새 택배의 집이 되어 버렸다. 마치 처음부터 택배의 집에 내가 얹혀살았다는 것처럼. 

 “택배야! 내가 화장실에서 쉬하라고 했어, 안 했어?”

녀석은 오늘도 현관에 볼일을 보았다. 훈련이 되지 않은 터라 신문지를 깔아주어도, 화장실 문을 열어 두어도, 도무지 나아지질 않았다. 그런 녀석 덕분에 나는 말이 많아졌다. 지난 몇 년 동안 한 말보다 요즘 하루 동안 한말이 더 많을 정도였다. 그만큼 택배는 정신을 쏙 빼놓을 정도로 나를 바쁘게 만들었다. 그런 택배에게 요즘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바로 현관문을 자꾸만 핥은 버릇이었다. 생각해 보니 택배는 처음 만난 날부터 줄곧 현관문을 핥았던 것 같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택배한테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너, 밖에 나가고 싶은 거야?”

택배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며 그르렁거렸다. 그랬다. 택배는 밖에 나가고 싶은 것이다. 갑자기 택배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밖에 나갈 수 없는 내가 원망스러울 정도로. 하지만, 나도 나를 어쩔 수가 없었다. 병원에 갈 수 없어 제대로 진단을 받은 적은 없지만, 인터넷으로 내 증상을 찾아보니 나는 여러 가지 정신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문 밖을 나가려고 여러 번 노력도 했었다. 하지만, 언제나 돌아오는 것은 호흡 곤란과 미친년처럼 날뛰는 심장이었다. 나는 살고 싶어서 내 집에 스스로 갇힌 사람이었다. 그러다 문득 택배를 처음 만났던 그날이 떠올랐다. 한 번 더 시도를 해 볼까? 여전히 자신은 없었다.


날이 갈수록 현관문을 긁고 핥는 택배의 증상은 심해졌다. 그럴수록 나의 고민도 깊어졌다. 문득, 끔찍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택배를 받으러 문을 열었다가 택배가 밖으로 달아나 버리면 어쩌지? 물론, 그것 말고도 택배가 나를 두고 이 집을 떠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많았다. 생각만으로도 나는 호흡이 가빠지고 어지러웠다. 먼 미래에, 아니 가까운 미래에 실제로 그런 일이 반드시 일어날 것만 같았다. 이제 택배가 없는 삶이 바깥세상만큼 힘들어진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이 두려웠다. 나를 보호했다고 믿었던 갑옷이 이제 벗어날 수 없는 감옥이 되어 버린 것이다.


##


결국, 나는 외출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혹시나 하는 걱정에 비상연락 목걸이도 준비해두었다. 모든 준비를 끝냈다. 이제, 저 두려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크게 숨 호흡을 하자, 택배는 신이 난 듯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철컥!”

현관문 자물쇠가 묵직하게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문고리를 돌리고 밀어내면 그만이다. 택배는 기운을 내라는 듯 새로 산 내 운동화를 계속 핥았다. 녀석이 내 운동화를 침으로 다 닦아내기 전에 문을 열어야겠다. 눈을 감고 힘차게 문고리를 돌렸다. 그리고 현관문을 앞으로 밀어냈다. 상쾌한 바깥바람이 콧잔등을 훑고 지나갔다. 덕분에 한결 마음이 놓였다. 이제 눈을 뜨고 앞으로 걸어 나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하지만, 다시 현관문을 닫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용감하게 내 발을 한 발자국 앞에 옮겨 놓았다. 문득, 무거웠던 내 갑옷이 새털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끝.


>>타블로의 집(feat. 이소라) 노래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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