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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경아 Dec 20. 2015

[노래 소설] 패닉의 "달팽이"

아저씨가 내게 주려했던  골뱅이 통조림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럼, 저는 이만 들어가겠습니다!”

내 씩씩한 목소리에 나도 깜짝 놀랐다. 아니나 다를까 쥐 죽은 듯 조용하던 사무실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하지만, 누구도 대답을 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너무 했다 싶었는지 팀장님이 그동안 수고했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감정이 울컥 올라왔다. 이러다간 눈물도 왈칵 쏟아질 것 같아서 나는 화가 난 사람처럼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왔다. 눈물이 자꾸만 흘러내려 엘리베이터를 탈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16층 계단을 차곡차곡 걸어 내려갔다. 덕분에 나는 그 계단에서 담아 두었던 내 눈물을 모두 소진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나의 첫 인턴 생활은 그렇게 끝이 났다. 


 처음부터 정직원이 될 거라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다. 인턴제도로 정규직이 될 수 있는 사람은 낙하산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일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정규직도 계약직도 아르바이트도 아닌 어정쩡한 인턴 나부랭이였지만, 일을 배우는 속도가 남들보다 빨랐던 나는 누구보다 그 일을 잘 해낼 자신이 있었다. 내게 관심이 없던 선배들도 일을 잘한다는 소문을 들었는지 언제부터인가 나를 찾기 시작했고, 꽤 비중 있는 일들을 서슴지 않고 맡기게 되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들은 내가 떠날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나 같은 소모품 인턴들을 수도 없이 만났고, 또 앞으로도 계속 만날 것이기 때문이다. 시한부 인생 같은 인턴 생활이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 선배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다시 침묵했고, 내게 그 어떤 일도 맡기지 않았다. 나는 그런 선배들이, 아니 그런 내 신세가 서러웠다. 하지만, 서러움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서운하지 않은 듯 아주 쿨하게 떠나 주는 일밖엔 없었다. 그래서 환송회를 해주겠다는 팀장님의 제안도 단칼에 거절했다. 다른 회사 면접이 있다는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말이다. 덕분에 떠날 사람도, 남겨진 사람들도 모두 어색해졌다. 3개월 동안 함께 일했던 직원들은 감히 수고했다는 말을 건네지 못했고, 나 또한 고마웠다는 말을 남기지 못했다. 그제야 알았다. 쿨한 이별은 절대 쿨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너무 멀었다. 3개월을 매일 같이 지나던 길이었지만, 그런 생각이 든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겨우 집 근처에 있는 지하철에 내렸다. 하지만, 집으로 바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자주 드나들던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편의점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주류 냉장고 앞으로 향했다. 거침없이 소주를 하나 꺼내 벌컥벌컥 마셨다. 맥주도 아닌 소주를 시원하게 마시고 나니 그제야 멍했던 머리가 뻥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누군가 다가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돌아보니 편의점 주인아저씨가 골뱅이 통조림을 하나 들고 서 있었다. 

 “빈속에 마시지 말고 이거라도 먹으면서 마셔.”

방금 마신 술 때문일까? 아니면, 골뱅이 통조림 때문일까? 나는 엄마 잃은 아이처럼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사실 이 편의점은 내가 인턴을 하기 전에 간간히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던 편의점이었다. 들어오자마자 소주를 마실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편의점 아저씨는 엉엉 우는 내 등을 토닥이더니, 바로 카운터로 달려갔다. 나도 울음을 그쳤다. 손님이 왔기 때문이다. 머쓱해진 마음에 아저씨가 건네줬던 골뱅이 통조림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공교롭게도 통조림의 유통기한이 한눈에 들어왔다. 예상했던 대로 통조림의 유통기한이 하루 지나 있었다. 눈물을 훔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통기한이 지난 통조림을 따서 골뱅이 하나를 꺼내 먹었다, 몰캉몰캉 골뱅이가 씹혔다. 유통기한은 지났지만, 맛은 나쁘지 않았다. 손님이 나가고 편의점 아저씨와 나, 둘만 남았다. 나는 이런 일이 일상인 것처럼 담담하게 물었다. 

 “내일 몇 시부터 나오면 되나요?”

 “오늘 밤부터 해주면 좋겠는데, 괜찮겠어?” 

편의점 주인아저씨의 부탁에 나는 소주를 한 모금 더 마시려다 그만두었다. 대신, 골뱅이 하나를 더 꺼내 먹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오늘은 정말 집으로 가는 길이 너무 멀다고.    


                                                                                        - 끝-


>>패닉의 달팽이 노래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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