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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경아 Aug 18. 2015

[노래소설] 이문세의 "가을이 오면"

서거서걱...가을이 온다...

 

 “축하드립니다. 임신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임신입니다."

순간, 기쁨보다 울컥 눈물이 먼저 눈앞을 가렸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이가 우리에게 찾아온 것이다. 내 오랜 주치의였던 김 박사님의 얼굴에도 함박웃음이 가득했다. 남들보다 조금 늦은 결혼을 하고, 부모님의 걱정 속에 5년을 보냈다. 기쁨의 눈물보다 그간 겪어내야 했던 설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나 자신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너무 울어서 김 박사님과 간호사 선생님들에게 미안할 정도였다.


 병실을 나서자마자 신랑에게 이 감격스러운 소식을 전했다. 전화였지만, 신랑의 목소리는 나처럼 떨리고 있었다. 겨우겨우 마음을 진정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세상은 빨갛고 노란 단풍들이 구석구석을 빈틈없이 아름답게 채우고 있었다. 병원에 오기 전에는 몰랐는데, 임신소식을 듣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모든 게 아름다워 보였다. 그렇게 나는 세상이 주는 모든 기쁨을 만끽하며 동네 마트에 도착했다. 기쁜 소식을 듣고 신나게 일을 하고 있을 남편을 위해 저녁 반찬거리를 사러 온 것이다. 두 손 가득 장을 보고 상가 마트를 나서는데, 상가 끝에 있는 미용실 간판이 보였다. 그 앞을 지나다가 나도 모르게 걸음이 멈췄다. 미용실 유리문에 쓰여 있는 문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새치머리 염색합니다!’

그동안 막연히 걱정만 했던 일이 현실로 다가왔다. 사실 나는 큰 고민거리가 하나 있었다.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머리에 새치가 많다는 것이다. 아니, 많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반백에 가까웠다. 그래서 그동안 줄 곳 새치머리 염색을 해왔다. 결혼 전에는 머리를 밝은 톤으로 염색하는 것만으로 커버가 되었지만, 지금은 부모님들이 사용하는 흰머리 염색약을 써야만 했다. 물론, 그 사실은 그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나의 치부 같은 것이 되었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반백이 된 머리를 염색해야 한다는 것이 그리 큰 상처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 검은 머리는 젊음과 여성성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항상 새치머리 염색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다. 남편에게 청혼을 받자마자, 대답 대신 내 반백 머리에 대한 고백을 먼저 했을 정도였다. 다행히 남편은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웃어넘겼지만, 나는 아직도 내가 염색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결혼을 한 후에도 열심히 염색을 했고, 남편에게 염색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었다. 그게 여자로서 마지막 자존심 같은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때문에 지금 이 상황이 참으로 난감했다. 염색은 화학약품을 머리에 발라야 하기 때문에 임산부에게는 금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어떻게 한 임신인데 고작 머리 염색 때문에 고민을 하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게는 이 일이 무척 중요한 일이었다. 염색을 하지 못해 반백이 된 채, 산발을 하고 다니는 내 모습을 상상하기조차 싫었다. 더구나 염색을 하다가 멈춘 머리는 그 어떤 모습보다 추할 것이다.


 어떻게든 이 난감하고 불편한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임산부에게 완전히 안전한 염색 방법은 없었다. 물론,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했다. 어렵게 찾아온 내 아이에게도 미안했다. 여자로서 가질 수 있는 마지막 자존심을 내려놔야 한다는 것은 그렇게 힘든 일이었다. 무엇보다 내 추한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보게 될 남편의 시선이 두려웠다.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을 얻었지만, 결국, 나는 그 행복을 지키기 위해 정말 지키고 싶었던 내 마지막 자존심을 버려야 하는 것이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가을을 지배하던 단풍이 눈처럼 떨어지던 11월의 어느 날. 나는 미용실 거울 앞에 앉아 있었다. 친절한 미용실 원장님은 내게 다시 한번 물었다. 정말로 머리를 삭발해도 되냐고. 그랬다. 지금 나는 염색을 포기하는 대신 내 머리카락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누군가 이 이야기를 들으면 미친 짓이라 할지도 모르겠지만, 이 방법만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사실 남편은 오늘 아침까지도 내 삭발을 말렸지만, 끝내 나를 설득하지 못했다.  


이제 삭발을 하고 나면, 내 소중한 아가를 만날 때까지 나는 계속 모자를 쓰고 다닐 것이다. 머리카락을 잃겠지만, 그만큼 다양한 모자를 얻게 될 것이다. 미용실 원장님은 이미 배려 가득 담은 가위질을 시작했다. 서걱서걱 잘려 나가는 내 머리카락의 비명이 아득하게 들렸다. 괜찮았다. 정말 괜찮았다. 모자를 쓰고 낙엽이 서걱서걱 밟히는 거리를 걸어도 정말 괜찮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또 1년이 가고, 또 다른 가을이 오면 나는 내 머리카락보다 수만 배는 더 소중한 내 아이의 건강한 미소를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이문세의 가을이 오면 노래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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