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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경아 Mar 21. 2016

[노래 소설] 양희은의 "하얀 목련"

수연은 아이스크림처럼 새하얀 목련을 바라볼 뿐이다.

 겨우내 집안에 틀어박혀 있던 수연은 따스한 봄 햇살 덕분에 외출할 용기를 얻었다. 집밖을 나서자, 향긋한 꽃향기보다 매캐한 먼지 냄새가 먼저 났다. 그럼에도 수연은 뿌연 하늘사이로 쌓이는 봄 햇살을 받기 위해 아주 오랜만에 한참을 걷고 또 걸었다. 얼마를 걸었을까? 수연은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낯선 아파트 단지 내에 자신이 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너무 멀리 왔네. 후회보다 피곤함이 먼저 밀려왔다. 수연은 사방을 둘러보다 가장 가까워 보이는 벤치를 찾아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엄마, 엄마!”

 “왜?”

 “저기 저거 꼭 아이스크림 같다. 그지?”

 “하하하, 그러네. 바닐라 아이스크림.”

5살 정도 되었을까? 꼬마 숙녀가 머리 양쪽에 커다란 알사탕을 달고 엄마와 함께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다. 수연은 그 꼬마 숙녀가 쳐다보고 있던 나무를 함께 쳐다봤다. 하얀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마른 나뭇가지 위에 탐스럽게 핀 목련이 꼬마 숙녀의 말처럼 바닐라 아이스크림처럼 보였다. 수연은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꼬마 숙녀의 상상력이 너무 귀엽고 대견했던 것이다.

 “우리 민정이 아이스크림 먹고 싶구나?”

 “음, 어떻게 알았어?”

 “하하, 엄마는 네 얼굴만 보면 다 알아. 그럼, 우리 마트에 갔다 올까?”

 “이야, 우리 엄마 최고!” 

그렇게 꼬마 숙녀는 엄마의 손을 잡고 동네 마트로 폴짝폴짝 걸어갔다. 꼬마 숙녀의 알사탕처럼 동그란 뒤통수를 바라보며 수연은 생각했다. 

‘소연이가 살아 있다면 지금쯤 저만큼 컸을까?’

소연이를 가슴에 묻고, 집으로 돌아오던 그날도 지금처럼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하지만, 그날의 봄은 수연에게 봄이 아니었다. 아니, 그날 이후 수연에게 봄은 봄일 수 없었다. 그날 이후 수연은 집 안에 틀어박혀 2년을 보냈다. 그리고 오늘 2년 만에 집 밖으로 나와 산책을 했다. 어쩌면 수연은 오늘 봄을 느끼며 살아도 되는지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안타깝게도 꼬마 숙녀의 귀여운 뒤통수를 바라보며 수연은 다시 무너졌다. 감당하기 힘든 상처를 가진 사람에게 아름다운 봄날도, 귀여운 꼬마의 뒤통수도, 잔인한 슬픔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엄마, 엄마!”

 “왜요, 공주님?”

 “너무너무 슬프다.”

 “갑자기 왜?”

 “아이스크림이 자꾸만 녹아서.”

하염없이 울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귀여운 꼬마 숙녀가 다시 놀이터에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수연은 이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 꼬마숙녀의 얼굴을 쳐다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수연은 탐스러운 하얀 목련만 쳐다볼 뿐이다. 흐드러진 하얀 목련은 꼬마 숙녀의 아이스크림처럼 툭툭 하얀 꽃잎을 떨어뜨리며 처참하게 녹아내린다. 수연에게도, 하얀 목련에게도 봄은 그래서 잔인한 계절이었다.

.



끝.


>>양희은의 "하얀 목련" 노래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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