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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경아 Jun 07. 2018

[노래소설]모래시계(Prod.헤이즈) 워너원-더힐

한정된 시간 속에 쌓이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뜨겁게 사랑했던 추억...


역시 오지 말았어야 했다. 동생의 간곡한 부탁으로 집들이에 왔지만, 결국 수연의 발작과도 같은 통증으로 엉망진창이 되었기 때문이다. 진통제가 없으면 몇 시간도 버틸 수 없는 사람을 데리고 집들이를 하자고 했던 동생이 그저 원망스러울 뿐이다.


“미안해. 누나!”

“수연이는?”

“좀 전에 잠들었어. 진통제 놔줬으니 괜찮을 거야. 누나 온다고 수연이가 그렇게 좋아하더니 좀 무리를 했었나 봐.”

“애초에 이런 자리를 만들지 말았어야지.”

“미안해. 근데, 지금 가려고? 내가 데려다줄게.”

“됐어. 나 혼자 갈 수 있어.”

“아냐, 수연이가 잠들면서 누나 집에 꼭 데려다주고 오라고 했어.”




동생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 마치 장례식장을 다녀온 기분이 들었다. 우울한 기분이 들어 운전하는 동생의 얼굴을 힐끗 쳐다봤다. 기분을 알 수 없는 표정이다.


얼마 전 동생은 말기 암 환자인 수연이와 결혼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동생의 폭탄선언에 결국 엄마는 쓰러졌고, 아버지는 입을 닫아버렸다. 동생 때문에 집안이 풍비박산이 된 것이다. 하지만, 엄마의 그 어떤 독설과 협박에도 동생은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저렇게 살림을 차렸고, 집들이에 와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엔 나도 그런 동생이 괘씸해서 부탁을 거절했지만, 그 누구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동생이 안쓰러운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궁금하기도 했다. 동생을 저렇게 단호하고 용감하게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넌, 자신 있는 거야?”

“뭐가?”

“끝이 보이는 사람 부여잡고 사는 거.”


짧지만, 서늘한 침묵이 흘렀다. 괜한 말을 한 것 같아 후회도 되었지만, 동생에게 꼭 물어보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당연히 자신 없지. 어떻게 그런 게 자신 있겠어?”

“그런데 왜 그렇게 무모한 선택을 한 거야?”

“저렇게 예쁜 사람을 두고 내가 어떻게 다른 선택을 해? 나도 방법이 없었어. 그냥 지금 이 순간, 순간을 뜨겁게 사랑할 수밖에.”


동생이 그렇게 말하면서 희미하게 웃었다. 그런 동생이 낯설게 느껴지면서 내속도 뒤집어졌다. 불구덩이 속인 줄 알면서 뛰어 들어가는 동생을 말릴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넌 지금 기적이라도 바라는 거야?”

“간절히 바라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별 수 없잖아.”

“너도 너지만, 수연이도 좀 그래. 어쩜 혼자 남겨질 네 생각은 전혀 안 한다니?”

“누나, 그런 말 하지 마. 수연인 아무 잘못 없어. 나 피한다고 숨어 버린 수연이를 기어코 찾아낸 건 나였으니까.”

“너 진짜 미쳤구나? 가장 힘든 사람은 결국 너라는 거 정말 모르는 거야?”

“알아. 나도.”

“아는 사람이 그래? 너 분명히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할 거야!”


마침 빨간 신호등에 차가 멈춰 섰다. 동생의 눈동자도 그와 비슷하게 붉어졌다. 그런 동생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내 속이 더 상하고 눈물도 핑 돌았다. 결국, 동생과 나는 서로 울음을 참기 위해 침묵을 지켰다.




어느새 집 근처에 도착했다. 동생은 헛기침을 하며 계속 목을 가다듬었다. 진정되지 않는 울음을 참아 넘기고 있는 것이리라. 참고 있던 눈물처럼 한숨이 흘러나왔다. 동생한테 괜한 소리를 한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 동생을 위한 말이 무엇인지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누나!”

“아까 얘긴 너무 신경 쓰지 마. 나도 걱정돼서 그런 거니까. 너 힘들까 봐.”

“알아. 그런데 너무 걱정하지 마. 난 지금 누구보다 행복하니까.”

“그래, 알았어. 근데  엄마 좀 신경 써줘라. 요즘 너 때문에 밥도 잘 못 드셔.”

“응. 노력해볼게. 잘 들어가.

“그래, 너도 운전 조심하고!”

근데, 누나.......”

“응?”

“사실, 나도 엄청 무서웠어. 그 누구보다 더. 내가 선택한 지금 이 순간들을 후회하게 될까 봐.”

알아, 그래서 우리가 걱정했던 거야.”

“근데, 이젠 괜찮아.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거든.”

그게 뭔데?”

“누구에게나 시간은 정해져 있다는 거.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사랑도 영원할 순 없다는 거. 수연이와 내가 남들보다 조금 빨리 헤어진다고 해도 괜찮아.  지금 이순간들은 그래서  소중한 행복이 될테니까.”


동생은 붉어진 눈으로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그리고는 심장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은 엔진 소리를 내며 출발했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좀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동생의 마지막 말이 내 마음을 뻥 뚫어 버렸기 때문이다. 후회하게 될 까 봐, 감당할 수 없을 까 봐 나는 애완견조차 키우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사랑했던 존재를 떠나보낼 자신이 없어서 사랑도 못하는 바보가 바로 나였다. 무모해 보일 정도로 앞만 보고 달려가는 동생을, 나는 나무랄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어차피 모두가 정해진 시간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이다. 흐르는 시간에 잠시 그 사실을 잊고 있을 뿐. 그렇게 한정된 시간은 흐르고, 그 시간 속에 쌓이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뜨겁게 사랑했던 추억인 것을 사랑에 미친 내 동생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끝.


>>모래시계(Prod.헤이즈) - 워너원 더 힐(옹성우*이대휘) 노래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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