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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경아 Dec 28. 2017

[노래소설] 자이언티(Feat. 이문세)의  "눈"

어느새 포르타필터에 눈처럼 소복하게 커피가루가 쌓인다.

“사장님, 오늘 눈이 올까요?”

“글쎄. 나야 모르지.”

“일기예보에 오늘 눈 올 확률이 70% 정도 된다고 했거든요.”

“그럼, 오늘 눈 안 오겠네.”

“왜요?”

“요즘 일기예보 맞는 거 못 봤거든.”

“아....... 그러면 안 되는데.”

“왜?”

“눈 오면, 친구들이랑 야간스키 타러 가기로 했거든요.”

“가게는 어쩌고?”

“지난주 땜빵 때워주면, 야간 근무 한번 빼주신다고 했잖아요?”

“그, 그랬나?”

“네! 그러셨어요.”

“만약에, 눈이 안 내리면?”

“못가는 거죠.”

“눈 안 와도 가면 되잖아. 어차피 스키장엔 눈이 있을 텐데.”

“그게, 진짜 눈이 와야 빙질이 좋아져서 스키 타는 맛이 제대로 나거든요.”

“그럼, 오늘 못 가겠네. 눈 안 올 테니.”

“일기예보야, 오늘은 제발 맞아라!”


두 손을 모으고 나름 진지하게 기도하는 선재를 보며,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좋을 때라고. 

눈이 온다고 좋아하던 시절이 언제였던가? 너무도 까마득해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예전엔 그래도 눈이 오면 제법 쌓여서 동네 아이들끼리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곤 했었는데. 요즘은 거리에 차가 많아서 그런지 눈이 내리면 바로 녹아내려서 거리가 온통 까만색이다. 문득, 처음 사귀었던 여자 친구 민정이 생각도 났다. 강아지처럼 눈을 좋아하던 민정이 때문에 눈만 오면 거리를 싸돌아다니곤 했다. 민정이는 떨어지는 눈을 받아먹는 시늉을 잘했는데, 요즘 같이 미세먼지가 많은 날에는 어림도 없는 얘기다. 그러고 보니, 나도 어렸을 때는 선재처럼 눈을 좋아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메리카노 한 잔, 카푸치노 한 잔이요.”

“가져가실 건가요?”

“네. 캐리어에 담아주세요!”


선재가 능숙하게 커피 그라인더를 작동시킨다. 어느새 포르타필터에 눈처럼 소복하게 커피가루가 쌓인다. 단단한 탬핑을 하느라 선재의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덕분에 선재의 팔뚝에 제법 근사한 핏줄이 선다. 일을 시작한 지 겨우 한 달이 조금 넘었는데, 어느새 선재는 제법 근사한 바리스타가 되어 있다. 달그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에스프레소 머신에 포르타필터를 끼워 넣는다. 에스프레소 머신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두 개의 구멍에서 진득한 커피 진액을 눈물처럼 뽑아낸다. 그러는 사이, 선재는 우유 거품을 만들기 위해 스팀밸브를 잡고 있다. 이젠 소리만 들어도 거품이 제대로 만들어지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어느새 선재의 우유 거품은 하얀 눈보다 더 곱게 부풀어 오른다. 


“아메리카노 한 잔, 카푸치노 한 잔 나왔습니다.”


커피 두 잔을 들고 여자 손님이 가게를 나선다. 선재는 쉴틈도 없이 우유 잔과 에스프레소 잔을 닦고 있다. 이젠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척척 일을 잘하는 선재. 든든하다. 선재에게 잠시 모든 것을 맡기고 가게를 나선다. 은행에 볼일이 있기 때문이다. 




차가운 바람이 콧속으로 들어가자, 코끝이 찡하면서 나도 모르게 하늘을 올려다보게 된다. 일기예보대로 오늘, 정말 눈이 올까? 그때, 왼쪽 하늘 어디선가 하얗고 몽실몽실한 것이 나풀나풀 춤을 추며 떨어진다. 


 “앗, 눈이다!”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러자 지나가던 사람들도 덩달아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처럼 의기양양해져서 하얀 눈송이를 바라보는데, 

조금 이상하다. 

생각보다 눈송이가 크기 때문일까? 

아니다. 

손을 뻗어 눈송이를 받아 본다. 

그리고 깨닫는다. 

이건 눈이 아니다.


 “오리털이예요.”


낯선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옷가게 아주머니가 패딩 잠바를 털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아니, 실제로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팩트 체크할 여유가 없다. 어느새 나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걸음을 걷는 사나이가 되어, 은행으로 질주한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숨이 찬다. 부끄러움 때문인지, 빠른 걸음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일기예보 따위를 잠시라도 믿은 내 잘못이다.


끝.


>>자인언티(feat.이문세)의 "눈" 노래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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