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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경아 Oct 10. 2017

[노래 소설] 신화의 "On The Road"

모든 것이 내 부질없는 욕심일 뿐이라는 것을.

“쾅!”


화가 나서 현관문을 있는 힘껏 닫았다. 하지만, 그 소리에 더 놀란 사람은 나였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남편과의 첫 부부싸움이다. 결혼을 하고 석 달! 친구들은 엊그제만 해도 싸움 한번 하지 않았다는 내 말을 믿지 않았다. 드디어, 나도 그들에게 남편 욕을 할 수 있게 된 건가? 


AM 12시.


심야 영화관에라도 혼자 가볼까? 너무 답답할 거 같다. 문득, 탁 트인 바다가 보고 싶었다. 그럼 서해안? 아니, 바다는 동해지. 그래, 이참에 오랜만에 해가 뜨는 거라도 보고 오자! 그래서 무작정 시동을 걸었다. 무심한 남편이 애타는 꼴을 보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가 불끈 솟았다. 




겨우 화를 가라앉히고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어느새 고속도로위를 달리고 있었다. 문득,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무서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엑셀을 더 세게 밟았다.


결혼을 하고, 한 달 만에 직장을 그만두었다. 처음엔 나도 이제 남편이 벌어다 주는 월급 받고 살면 되는 건가? 하고 기분이 좋았었다. 친구들의 부러움도 샀다. 하지만, 그런 기쁨도 잠시 어느새 내 집은 감옥처럼 여겨졌다. 내 시간이 많아지면, 요리도 배우고, 못했던 여러 가지 공부도 하며 신나게 지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나는 그런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아무 잘못도 없는 남편이 괜히 밉게 느껴졌다. 다른 남편들은 돈 벌어 오라고 등을 떠민다고 하는데, 그런 소리 없이 내 뒷바라지해주겠다는 남편이 고맙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나를 집에 주저앉히고 꼼짝 못 하게 만들려는 꼰대 같이 느껴졌다. 하루 종일 남편만 기다리는 나를 남편은 전혀 배려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나둘씩 남편에 대한 불만이 쌓여가고 있을 무렵, 남편은 내게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러 버렸다. 


시속 140Km.


내비게이션 경고음을 듣고 깜짝 놀라 속도를 줄였다. 그때, 내 차를 추월하면서 빛의 속도로 달려가는 한 자동차가 보였다.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남편이 옆에 있었다면, 대신 욕을 해주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울적해졌다.




사실 나는 지금 누구보다 남편의 관심과 손길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특히, 오늘은 남편 없이 시댁 제사에 참석한 첫날이었다. 누구보다 긴장하고 가슴이 턱 하고 막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시댁으로 갔다. 어색한 시어머니와 잡담을 나누고 음식을 만들었다. 그래도 내가 참을 수 있었던 것은 저녁이면 남편이 나를 구하러 일찍 퇴근하리라는 것을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제사를 마치고 체할 것 같은 저녁식사가 다 끝날 무렵까지 남편은 전화 한 통도 없었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느낌으로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미안해. 회의가 이제 끝났어.”


눈물이 핑 돌았다. 남편이 나를 사지에 몰아넣고 구하러 오지 않은 것과 같은 기분이 들었다. 11시가 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남편은 나보다 먼저 도착해 소파에 누워 TV를 보고 있었다. 남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으며, 저녁은 먹었다고 말했다. 울음이 터져 나오는 걸 꾹 참았다. 하지만, 그런 참을성은 항상 다른 구멍으로 폭발을 하기 마련이다. 와냐면, 내 머리와 다르게 내 손은 남편 얼굴에 쿠션을 던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쿠션은 시작일 뿐이었다. 나는 정말 미친년처럼 남편에게 모든 울분을 쏟아 냈다. 내 말이 총알이었다면, 이미 남편은 산산조각이 났을 것이다. 물론, 남편은 깜짝 놀랐다. 이런 내가 낯설었을 것이다. 영문도 모른 채, 당황해서 표정으로 그저 미안하다고 말하는 남편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절망했다. 내게 얼마나 힘든 하루였는지, 얼마나 서운했는지 아무리 설명해도 남편은 모를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왜 내가 필요할 땐 항상 없는 거냐고, 왜?!”


남편의 대답을 듣는 게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소리침과 동시에 바람처럼 집 밖으로 나와 버렸다. 남편은 지금도 내가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 모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느새, 나는 평창휴게소를 지나고 있었다. 하루 종일 시댁에서 일을 하고 쉬지도 못해서 그런지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하지만, 밤늦은 시간이라 왠지 무서워서 휴게실에서 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쉬어가고 싶었지만,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신호등도 없는 고속도로는 나보고 계속 달리라고 재촉했다. 아니, 내가 여기서 멈추면 잡아먹어 버리겠다고 윽박지르는 것 같기도 했다.


AM 3시 45분.


드디어 강릉에 도착했다. 사방이 어둠이라 여기가 어딘지 구분이 가질 않았지만, 어쨌든 바다 냄새와 파도소리가 났다. 하지만, 여전히 무서웠다. 아직도 해가 뜨려면 두 시간쯤은 남았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화가 나서 이곳에 달려오긴 했지만, 무섭고, 피곤하고, 슬펐다.


그때, 드라마처럼 내 핸드폰이 울렸다. 남편이었다. 아까부터 계속 핸드폰이 진동으로 울렸지만, 나는 받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 무서워서 그런지 망설이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다행히, 남편은 화를 내지 않았다. 그리고 전과 똑같이 영문도 모른 채, 잘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 말을 믿고 싶었다. 그러자 나도 모르게 울음 터져 나왔다. 


훌쩍이며 강릉에 왔다고 말하자, 남편은 펄쩍 뛰었다. 아니, 불같이 화를 냈다. 제정신이냐며 자기가 데리러 오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서 그럴 필요 없다고 말했다. 남편은 이제 몇 시간 후,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울음을 멈추고 지금 바로 돌아갈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조금이라도 잠을 자라고 말했다. 남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알았다고 말했다. 피곤할 테니 휴게실에 자주 들러 쉬면서 오라고 말했다. 정말 미안하다며, 이젠 내가 필요할 때면 언제나 제일 먼저 달려와 주겠노라고 말했다. 나는 마치 그 말을 듣고 싶어서 여기까지 달려온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전화를 끊었다. 아까와는 달리 이제 남편이 보고 싶어 미치겠다는 이유로 나는 다시 시동을 걸었다.


서울로 돌아가는 길.


문득, 작년 가을 남편과 왔던 미시령 고개 너머에 있는 휴게소가 떠올랐다. 잠시 쉴 거라면 그곳에서 쉬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너무 피곤해 이미 다리가 풀린 상황이었지만,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면 씻은 듯 괜찮아질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미시령 고개로 차를 돌렸다.


미시령 고개에 올라서고 나서야 나는 후회를 했다. 끝없이 펼쳐진 꼬부랑길에 다리가 후들거리고 어지러웠기 때문이다. 차도 별로 없는 미시령 고개를 오른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그때였다. 반대편 차선에서 검은 벤이 갑자기 나타났다. 굴곡이 심한 미시령 고개에선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다리가 풀리고 피곤한 상태였다. 갑자기 출현한 그 검은 벤을 피하려다 나도 모르게 핸들을 평소보다 깊게 꺾어 버렸다. 순간, 내 차가 차선을 이탈하는 것이 보였다. 아주 짧은 순간, 나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처럼 수많은 생각들이 오고 가지는 않았다. 그저 살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 의지 때문이었을까? 어느새 내 차는 미시령 고개 오른쪽 절벽에 쳐 박혀 버렸다. 


눈을 떴다. 


눈을 뜰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기뻤다. 하지만, 사물이 눈에 들어오는 시간은 꽤 오래 걸렸다. 절벽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반대편 절벽에 차를 박았다는 사실이 이렇게 기쁠지 몰랐다. 살았다는 안도의 한숨도 잠시, 또 다른 공포가 엄습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 팔다리를 살폈다.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자꾸만 손과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나를 놀래 켰던 검은 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이제 아무도 없는 이 도로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남편에게 전화를 걸면 진짜 놀라 자빠질 텐데. 어떻게 해야 하지?


“똑! 똑! 똑! 괜찮으세요?”


심장이 깨질 것처럼 깜짝 놀랐다. 누군가 차 창문을 두드렸기 때문이다. 두려움에 고개를 돌려 쳐다보기조차 어려웠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궁금했다. 그래서 실눈을 뜨고 겨우 차창 밖을 보았다.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서 있었다. 귀신을 본 것처럼 나는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그 남자는 계속해서 창문을 두드렸다.


“괜찮으신 거죠? 문 좀 열어 보세요. XX 레커차입니다.”


그제야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렸다. 고개를 돌려 차 뒤쪽을 쳐다보니, 크리스마스트리 전등처럼 깜빡이는 전구로 치장한 레커차가 보였다. 정신을 가다듬고 나는 창문을 아주 조금 열었다. 그러자 아저씨가 달려들어 이렇게 말했다.


“피해자도 없으니, 보험회사 부르시면 보험료만 올라갈 거예요. 어때요? 저희가 견인해 드릴까요? 비용은 싸게 해드릴게요.”


레커차 아저씨의 말이 아득하게 들려왔다. 아무도 없을 것 같은 이곳에 사고가 난 지 5분도 되지 않아 달려온 레커차 아저씨를 보고 있으니 한마디로 기가 찼던 것이다. 


문득, 좀 전에 내가 필요할 때면 누구보다 먼저 달려와 주겠다던 남편의 말이 떠올랐다. 남편의 마음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레커차 아저씨가 남편보다 훨씬 더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아니, 앞으로도 수없이 많은 순간 남편은 내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모든 것이 내 부질없는 욕심일 뿐이라는 것을.



>>신화의 "On The Road" 노래 들으러 가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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